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피카디리 아트프라이즈는 피카디리 국제미술관이 주최, 주관하는 멋진 프로그램이다. 과연 멋지다, 라고 극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담고 있는 철학이요 태제다. 피카디리 국제미술관은 「앙데팡당 2019 KOREA」를 통하여 뿌리내린 문화사적인 기념비를 축제로 연결하고 있다. 환경과 자연, 역사의 궤적을 예술로 연결하는 「앙데팡당 2020 KOREA」 프로그램이다. 그 여울목에 파카디리 아트프라이즈 개념을 설계하고 작동시킨다.

우리 문화사에는 치명적 결함지대가 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없는 승자의 독식문화다. 본질을 꿰뚫어 보면 승자독식은 허구이며 남을 위한 배려가 없는 문화는 병자일 것이다. 허겁지겁 걸어온 우리의 문화사는 어떠한가, 우리의 그림자와 역사를 곰곰이 돌아보며 채워 나가는 시작점을 마련하고자 본 기획이 준비되었다. 참으로 멋진 기획이자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조력자를 찾기에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모품처럼 당연시 여겼다. 마치 알사탕 포장지처럼  버려진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선진문화에서는 위대함을 위한 조력자는 마치 고호의 동생처럼 존중받는다. 형을 사랑하고 기억하며 헌증한 테호의 보살핌과 노력이 그 예이다.

피카디리 아트프라이즈의 개념은 똘레랑스, 오마쥬, 그리고 알레고리이다. 예술의 형식을 개념화하여 도구화할 수는 없다. 예술작품이 전시장에 전시된다하여 전시회 자체가 도구화되거나 차용 될 수 없다. 단지 과정을 통하여 오마쥬하는 관점만을 유지한다. 기획팀의 의도 자체가 알레고리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오스카상이 오스카상 자체가 아니라 부여된 예술혼의 정수가 아티스트라는 개념이다. 즉, 예술의 조력자를 위한 알레고리가 피카디리 아트프라이즈다. 명제된 영혼에 헌증하고자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관용의 미학으로 일컬어지는 똘레랑스의 부재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관용의 미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까닭은 식민지와 분단, 6.25와 근현대화의 파고에서 빚어진 우리시대의 결함이자 상처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크레용그림으로 그림을 만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크레용회사도 수많은 극복의 역사를 관통하여야 했다. 크레용회사가 전문가 물감을 생산하기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힘겨운 자산이자 토대이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이랴. 액자틀거리 하나마저도 평생을 부여잡고 장인의 길을 걸어온 분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작품은 전시장에 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사업, 특히 화랑사업은 물먹는 하마처럼 수익이 좀처럼 나지 않음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천직처럼 화랑공간을 부여잡고 문화마당을 지켜온 분들이 우리 곁에 존재함에 감사한 마음이다. 전시 당일 작품을 배송하는 하찮은 짐꾼들이 없었다면 전시회는 가능했을까. 전시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조력자의 가치를 모르는 일이다. 소소한 것 같지만 위대함으로 가득한 가치가 연결되어 있다.

피카디리 아트프라이즈의 마당은 똘레랑스와 오마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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