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중구 필동의 세컨드에비뉴갤러리에서는 을 표현 소재로 사용해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가 진행 중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회화 전통이자 현실풍경을 담아낸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를 새롭게 해석해 놓았다. 또한 작가의 사회적 관심사가 투영된 현실 비판적 작업들이 진경정신의 맥락 속에서 펼쳐진다.

화면을 뚫고 나온 ‘못’이 회화가 되는 세계,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

이돈순은 일명 못 회화’, 철정회화(鐵釘繪畵)의 작가로 통한다. ‘종이, , (지필묵紙筆墨)’합판, 망치, (판추정板錘釘)’으로 대체하여 전통미술의 관습과 가치체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제시한다.

화면을 뚫고 나온 ‘못’이 회화가 되는 세계,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

못의 높낮이와 배열을 조절하여 시선과 음양의 변화를 주는 방식에 더하여, 근래에는 목판의 뒷면에서 못을 박아 앞면으로 돌출시켜 판재가 지닌 속살의 흔적과 깊은 그림자를 동반하는 입체 형상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미술 형식을 개척해가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못의 밀도, 방향, 부서진 화판의 우연적 효과 등이 더해져 독특한 디테일을 빚어내며, 빛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렌티큘러같은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화면을 뚫고 나온 ‘못’이 회화가 되는 세계,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

이처럼 이돈순 작가만의 붓인 망치는 기존의 미술 개념을 전복시켜 우리가 생각하는 회화에 대한 통념을 돌아보게 할뿐 아니라, 자연, 전통, 마을, 이주, 분단, 난민 등 작가가 표현의 주제로 삼아온 사회적 관심사를 두드리고 관통하는 강력한 비판적 도구로 작동한다.

화면을 뚫고 나온 ‘못’이 회화가 되는 세계,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

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망치로 못을 칩니다. 망치와 못과 나무판(합판)은 물감()을 먹인 붓과 캔버스(화선지)가 조응하여 만들어내는 녹녹한 형상의 세계에서보다는 왠지 공사 현장에나 어울릴 법한 거칠고 단단한 사물들의 조합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화폭 위에 못들의 공동체로 남게 되는 사물들과의 만남은 서로 부딪쳐 박고 박히며 때로는 감당할 수 없어 부서져 버리거나 날카롭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세상의 관계성이 빚어내는 포용과 상처의 양면을 함축합니다.

화면을 뚫고 나온 ‘못’이 회화가 되는 세계, 이돈순 작가의 개인전 ‘망치로 미술하기’

거기엔 난을 치는기품 속에서는 거세되기 쉬운 원형적 행위로서의 노동, 땀내 나는 몸의 언어가 스며들곤 합니다. 이때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은 쉬이 극한까지 치달아 어느새 못을 치는 반복적 행위는 현실 속에서 나를 치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망치로 미술하기는 결국 형상을 더듬어 나를 다스리는 수행과 관계됩니다. 학창 시절 이후, 문방사우를 통하여 그토록 채워지지 않던 결핍의 가능성은 이제 노동과 새로운 조형의 언어를 빌어 물질과 형상과 우주를 거슬러 잠재된 관계성으로 나아갑니다.”

(2019 이돈순 작업노트)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