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57gallery에서는 2019. 10. 30(수) ~ 2019. 11 .4(월)까지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하나의 빛, 천개의 색

허윤민은 광물을 그린다. 광물은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운 여러 종류의 돌들 그것이다. 작가는 수많은 그림의 소재 중에서 왜 돌을 택했을까. 그녀가 그린 돌들은 우리가 흔히 길에서 보는 것들은 아니다. 형형색색 빛나는 아름다운 광석이다. 작가는 빛을 반사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광석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투명 아크릴상자들 속으로 희미하게 광석이 보인다. 선명한 것도 있고 어렴풋이 보이는 것도 있다. 실험실 표본 같기도 하고, 신생아를 보호하는 인큐베이터 같기도 하다. 광석들은 이 무균실 안에서 외부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원형의 상태로 있다. 초자연적 힘을 부여했던 예전의 선돌이나 고인돌처럼 신성함까지 느껴진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광석의 아름다움과 견고함은 아크릴박스 안에 놓이는 순간, 쉽게 깨지고 금이 갈 것 같은 연약함과 공존하게 된다. 작가는 보석세공 하듯이 투명상자 위에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 긁어내고 칠하고 닦아낸 아크릴 표면은 관람객이 아름다운 광석을 제대로 관찰하는 것을 방해한다. 관람자는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해 더 가까이 다양한 각도에서 작업을 관찰하게 된다. 가까운 거리는 그제서야 하나의 돌에 집중하게 한다. 수많은 돌 중의 하나가 아닌, 바로 거기 있는 돌이다.

유기물의 작용으로 특정 원자 배열을 갖게 된 이 덩어리는 옆에 놓인 돌과는 다른, 하나의 독립적 개체이다. 이 하나의 돌은 잊혀지고 묻힐 수도 있는 길 위의 돌이기도 하고, 가공과 연마를 통해 다른 모습의 돌이 될 수도 있다. 원석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정체성에 작가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견고함과 연약함, 영원과 순간을 줄타기하며 숨어있는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The unknown’ 이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은 아크릴박스 작업인 ‘내재적 가치’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작가의 첨예한 예술적 고민을 보여준다. 상자 밖으로 나온 원석은 철저하게 해부 당한다. 파편화된 형태들은 차갑고 공격적이며, 빛을 여러 각도로 반사하며 굴절된 이미지들을 생산한다. 하나의 면은 다른 한 면과 만나 날카로운 선을 만들어내고, 이 선은 면들과 접하며 다른 선들과 연결된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파편의 예리한 선들은 질 들뢰즈의 리좀(Rhyzome)을 연상시킨다. 이질적인 것, 다양한 것들이 서로 이어지고 충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생성해낸다. 엉키고 확장되고 또 단절되며 안과 밖, 한 면과 또 다른 면이 만난다. 허윤민의 말처럼, 광물을 연마 가공하는 일, 즉 그림 그리는 일은 그녀에게 즐거운 노동이자 놀이이다. 그러나 모든 창작이 그러하듯이 작업은 수많은 자기 의심과 번민도 동반한다.

작업 중에 느꼈을 초조함과 예민함, 무수한 선택의 번복… 물론 작가는 그 속에서 창작의 희열도 분명히 맛보았을 것이다. 고뇌와 기쁨의 무한반복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은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 익숙하다. 이러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작업과정이 날카롭게 연마된 보석의 파편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허윤민 展 '이름없는 광물들'

작가는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자꾸만 무디어지는 정체성의 각을 세우기 위해, 쉼 없이 닦고 깎고 칠해본다. 긴 시간 화가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끊임없이 노력해온 시간들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그녀를 여러 개의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해를 더할수록 그녀가 만들어낼 새로운 형상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홍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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