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에 위치한 OCI미술관(OCI Museum of Art)에서는 2019. 09. 05 ~ 2019. 10. 26까지 족쇄와 코뚜레 전이 열리고 있다.

족쇄와 코뚜레

“흰 커튼을 헤치고 들어가니 길쭉하게 네모진 방바닥에 커다란 하얀 원반이 놓여 있다. 하얀 벽면이며 높다란 천장할 것 없이, 방 안은 온통 어떤 글씨들로 가득 차 있다. 안내문에 따라 조심스레 원반 위에 발을 디뎠다. 순간, 반대쪽으로 기우뚱! 숨을 크게 들이키고 다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찰나, 방 안을 채우던 휘황한 글씨는 사라지고 온통 암흑천지가 되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친구의 얼굴마저 찾을 수 없을 만치.”

족쇄와 코뚜레

누구나 꿈과 이상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무언가가 늘 발목 잡는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항상 다르기만 하다. 예외 없이 모두 당사자일 것만 같은 이 고민들을, 다양한 시각과 체험으로 풀어보는 ‘가을 필관(필수 관람) 전시’가 열렸다.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9월 5일 개막한, 가을 기획전 《족쇄와 코뚜레》.

족쇄와 코뚜레

전시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족쇄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나를 ‘발목 잡는 것들’, 코뚜레는 그 비용으로 ‘코 꿰어 있는 생업’을 말한다. 미술 작가들의 꿈은 무엇일까? ‘걱정 없이 마음껏 작업하면서, 그것만으로도 능히 먹고살기’가 우선일 것이다. 물감 사기에도 빠듯한 주머니 사정은, 마음 놓고 작품에 매진할 수 없게 훼방 놓는 일종의 족쇄이다. 작업 비용을 대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일에 코 꿰어 어느새 초심을 잃곤 한다. 작가들의 이야기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당사자이자 주인공이다. 이 ‘만인의 딜레마’를 헤쳐 나아가는 작가들의 비결과 비법, 자세, 다짐을 다양한 각도로 선보이는 전시이다.

족쇄와 코뚜레

전시는 1층 로비에서부터 3층 전시장까지 네 가지 섹션에 걸쳐 전개된다.

족쇄와 코뚜레

불투명한 앞날을 대하는 첫 번째 비법은 ‘모르겠으면 일단 견디고, 버티고, 전진하기'이다. 그래서 첫 번째 섹션은 '묵묵꿋꿋'이다. 전시장 1층 메인 로비엔 문어 혹은 해파리를 닮은 거대한 기계 생명체가 자리 잡았다. 앞에 놓인 나무 보드에 관객이 직접 올라 움직이면, 비로소 괴생명체의 팔다리가 꿈틀거리며 여러 가지 소리가 빛과 함께 흘러나온다. 안쪽 홀로 돌아가면 ‘버티기 수련원’이 한바탕 펼쳐진다. 나란히 앉아, 줄지어, 엎드려뻗쳐, 벽에 기대어 버티는 조각상들의 기괴한 미소가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족쇄와 코뚜레

작업과 생업 사이에서 균형잡기, 기왕이면 둘 다 잘하는 것만큼 큰 미덕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섹션은 '공수겸장'이다. 2층 안쪽 홀에 전시장 속의 가상 전시장 'Jang's Museum'이 개관했다. 관장은 전시는 뒷전이고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인맥 과시에 여념이 없다. ‘한국의 칸딘스키’를 표방하는 ‘연예인 작가’는 고기 자르듯 자신의 표절 그림을 잘라 파는 요절복통 개인전 현장이다. 맞은편 벽면 전체엔 주먹만 한 작은 남색 상자를 가지런히 진열했다. 상자 속엔 ‘15분’이 포장되어 있고, 현장에서 ‘실제로 구매’할 수 있다.

족쇄와 코뚜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일치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세 번째 섹션은 ‘덕업일치’이다. 2층 도입부를 차지한 거대한 300호 캔버스엔 오렌지색 철골이 돋보이는 동호대교 위 익숙한 교통체증이 실감 나게 펼쳐진다. 꿈을 짊어지고 오늘도 생업에 바쁜 사람들로 가득 찬 동네 곳곳의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맞은편에는 약 10m에 달하는 선명한 벽화를 배경 삼아 크고 작은 조각과 형형색색의 표지판들로 한 편의 무대를 꾸몄다. 행복과 의욕의 호르몬 ‘도파민’을 형상화한 캐릭터들이 뛰어다니고 공중에 매달리며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족쇄와 코뚜레

생업에 치어 바삐 살다 보면 어느새 꿈은 증발하고 변질하기 십상이다. 마지막 섹션 ‘퇴색금지’가 전시를 마무리한다. 나무 바닥과 차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전시장 3층 입구, 격자로 짠 나무 선반에 수백 개의 비석을 하나씩 모셨다. 수십 권 책의 매 페이지 글자 중 ‘나’자만 긁어내어 말 그대로 나를 찾아 모으고, 종이 죽을 쑤어 벽돌 모양으로 빚었다. 홀에는 수백 송이 장미와 수백 마리 통닭을 일일이 그린 벽지를 바르고, 자화상, 그림 잘 그리는 비법을 담은 가훈, 삽질로 간신히 버티는 식탁을 놓아 스스로를 잃지 않고 작업해 나갈 굳은 결심을 한 칸 방으로 형상화한다.

족쇄와 코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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