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포레스트 힐링 투어 닭실마을

[아트코리아방송=이세은기자]조선시대에 경상도 지역으로 순흥도호부(현재의 풍기)는 가장 큰 행정이었으며 봉화는 봉화현이란 이름의 작은 고을로 아담한 곳이었다.

봉화 닭실마을 고택(이세은 기자)

봉화는 세조 때 금성대군이 유생들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유배를 오게 된 곳이며 결국은 죽게 되었다. 그 이후 순흥도호보가 폐지되고 봉화현으로 귀속된 곳이 봉화이다. 봉화는 1425(세종7)에 발행 된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243가구에 인구 1.160명으로 기록 되어 있는 지금으로 30개 학급의 중학생 학생 수와 비슷한 인구가 살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유종개와 윤흥신 등의 의병이 왜군에 대항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문헌에 의하면 전국에서 가장 작은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고을이었지만 선비는 가장 많은 고을로 기록 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를 품은 봉화 닭실마을을 찾아 가을과 함께 선비들의 기상을 바라보게 된 시간!

봉화닭실마을 전경(이세은 기자)
잘 보존 되어 관리하고 있는 고택 (이세은 기자)

넓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 아기자기한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은 닭실마을의 넉넉한 인심과 역사를 품고도 담대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비쳐 졌습니다.

닭실마을은 내성천변을 두고 있으며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형성 되어 있습니다. 연산군이 기묘사화로 물러나면서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며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안에서 바라 본 고택 담 (이세은 기자)

그 이후 다시 권세를 잡아 벼슬하였지만 을사사화로 파직당하고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영남의 사대길지로 꼽히는 이곳은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과 같아 닭실마을로 정해 졌다고 한다.

봉화 닭실마을 고택(이세은 기자)

고택에는 충재선생이 아끼던 근시록이 보물 262호로 지정되어 보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충재선생의 충재일기등 보물이 5전이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을 지키기 위하여 한국전쟁 시에 항아리에 책을 넣고 당 속에 묻어서 분실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닭실마을에 박물관도 소담하게 마련해 두어서 다녀 가시는 분들이 역사를 인식하고 바라보게 하는 공간이 있다. 옛 조선시대의 고을이 그대로 유지 되고 있는 모습으로 2019년을 살고 있지만 걷고 있는 순간은 타임머신으로 조선시대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아 새롭게 바라보게 된 봉화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닭실마을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세은 기자)

경북에서 진행 하는 포레스트 힐링투어로 닭실마을을 둘러보면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도 보물이 있었으며 간직하고 싶고 공간을 유지 하고 싶은 소중한 마을이 있다는 것에 매우 감동을 받았다.

봉화 닭실마을 고택(이세은 기자)
닭실마을 박물관 앞에 바늘꽃과 담장(이세은 기자)
닭실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전답(이세은 기자)

담장 너머로 바늘꽃이 어서 오라며 인사하고 반기는 닭실 마을은 풍요로운 가을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고즈넉한 기와담장을 옆에 두고 사브작 사브작 걷다 보면 저절로 선비가 되어 글을 품게 되는 닭실 마을의 정겨운 시간이었다.

李白[ 경북포레스트힐링투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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