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인사로에 위치한 갤러리 H(GALLERY H)에서는  2019. 10. 02 ~ 2019. 10. 07까지 작은풀 - 성민우展이 열릴 예정이다.

작은풀 - 성민우展
작은풀 - 성민우展

바닥에서 빛나는 풀, 그리고 삶
허나영(미술평론)

길가 아스팔트를 뚫고 연석 사이를 비집고 나와 존재를 드러내는 풀, 소위 잡초라 불리는 이 풀들은 일상에서는 우리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간혹 민들레가 홀씨를 머금을 때 궁금증이 잠시 스칠까? 이 내세울 만한 꽃도 향기도 없는 이 풀들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누구도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움터 싹으로 줄기로 잎으로 자라난다. 그저 자신에게 간간히 주어지는 빗방울과 흙의 온기만으로 말이다. 그리곤 일 년도 채 나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돕는 이 없어도 스스로 생명을 움트는 풀의 자생력. 그러한 풀의 생태를 성민우는 화폭에 담는다.

작은풀 - 성민우展
작은풀 - 성민우展

성민우는 이를 초상(草像)이라 이름 짓는다. 어떤 사람의 인물형상을 말하는 초상(肖像)이 아닌, 풀의 형상인 것이다. ‘초상’이라는 동음이의어에서도 그러하듯, 성민우가 그린 초상은 인간의 모습이면서도 풀의 모습이기도 하다. 풀잎과 줄기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 그 모습은 사랑을 하기도 하고 한없이 외로워하기도 한다.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 개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작은풀 - 성민우展

마치 차가운 땅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싹을 틔운 풀이 우연히 만난 근방의 풀들과 어울려 살아가듯이 말이다. 이를 자연의 관점에서는 생태학(ecology)이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민우의 풀그림은 이 둘의 관점을 회화로 관통하고 있다. 지구상의 생명들이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인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근본 개념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를 성민우는 최근 작품에서 오이코스(Oikos)로 풀어낸다.

작은풀 - 성민우展

풀더미들이 이룬 오이코스는 더 이상 우리 발밑의 풀들이 아니다. 우리가 밟을 수 있는 미물이 아니다. 오이코스를 이룬 풀더미는 오히려 우리를 집어 삼킬 듯 군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각자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화폭 속에서 저마다 앞으로 나오겠다며 아우성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어우러지고 있다. 오이코스는 생물학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 영역인 폴리스와 구분되는 사적인 집단을 일컫는 이 말은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기본단위인 가족을 포함한 정서적 그룹이기도 하다. 풀더미를 인간관계의 반영으로 표현한 성민우는 바로 이러한 풀의 오이코스를 그려내고 있다.

작은풀 - 성민우展

풀과 인간, 이는 성민우의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두 가지 코드이다. 이는 하나로 결합되기도 하고 또 따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치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처럼 우리에게 오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이는 성민우가 첫 개인전에서 비단에 나뭇가지를 그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린 나무가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른 나무가 그려진 반투명한 비단을 통해 사람이 보이길 바랐다.

작은풀 - 성민우展

성민우에게 있어 나무와 풀은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생태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몸이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성민우는 우리 주위를 감싸는 반짝이는 생명을 보았다.

작은풀 - 성민우展

그리고 그 생명의 그물 속에 작가 자신이 속해있음을 표현한다. 무수한 금빛 점으로, 풀잎 끝의 금빛 선으로 그리고 금빛 풀벌레로 말이다. 언젠가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가벼운 반짝임, 움직임을 가진 것들이지만 이는 길가의 풀도, 인간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성민우는 “풀과 벌레의 삶이 가볍다고 여겨진다면 ... 나의 삶이 풀과 벌레 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비단에 금분으로 풀을 그리는 한국화가 성민우’의 작품에서 우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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