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산업 환경과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는 디자인 중심의 사고방식과 디자인 경영, 그리고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에는 뛰어난 디자인 실력과 새로운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생산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신진 디자이너가 있다. 이 둘이 스스로 서로를 찾아 좋은 결과물을 만들면 좋겠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 산업을 진흥시켜야 하는 여러 기관의 소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하나뿐인 디자인 전문 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최경란)은 매년 연말 ‘영 디자이너 챌린지’ 행사를 진행하는 등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이를 현업과 연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젊은 디자인 감성을 만나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작년 9월 서울 디자인위크 기간에 진행된 ‘서울디자인브랜드_소통의 도구’ 전시다. 신진 디자이너와 소상공인이 함께 만든 새로운 디자인의 문구류를 선보인 이 전시에서 인정받은 협업 사례는 중국 쑤저우 디자인위크에 공식 초청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이자 디자인 산업 활성화 기여 모델로 인정받았다. 서울디자인재단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기록관(배움터 3층)에서 현재 열리고 있는 ‘서울디자인브랜드 기획전’에서 이 ‘서울디자인브랜드_소통의 도구’를 다시 한번 전시하며 신진 디자이너-소상공인 협업 모델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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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가면 신진 디자이너와 소상공인이 함께 제작한 핸드폰 케이스, 메신저 백, 노트, 자, 문진, 마스킹 테이프 등 43가지 ‘소통의 도구’를 만나게 된다. 전시된 제품 위에는 그 제품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감각적인 정물 사진이 걸려 있어 제품의 가치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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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구르메그라프’와 디자인 스튜디오 ‘보이어’ 그리고 ‘스튜디오 더블디’는 디자인 문구와 리빙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7321’과 함께 각종 문구류를 만들었다. 이화영과 황상준이 운영하는 보이어는 노트와 핸드폰 케이스 등에 단순한 직선으로 사군자를 그려 넣은 ‘Hawk, Egg, Soup and Broth’를 선보였다. ‘디지털 시대에도 역시 문방사우에는 사군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아날로그 감성은 신구 세대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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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제조사 ‘프롬’은 그래픽 디자이너 강주현,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 ‘팡팡팡 그래픽 실험실’과 협력했다.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양장점은 과거 ‘모양자’라고 부르던 ‘Lettering Ruler ABC’를 디자인했다. 보통의 모양자는 동그라미, 네모, 마름모 등 익숙한 형태만 그릴 수 있지만 알파벳 같기도 하고 한글 같기도 한 낯선 형태들이 새겨진 Lettering Ruler ABC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를 그리게 해 사용자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준다.

국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공예가 등의 상품을 유통하는 독립상점인 ‘키오스크키오스크’는 시각디자이너 박신우, 최현호 그리고 예술공동체 ‘진달래&박우혁’과 협업했다. 최현호는 일상에서 찢거나 뜯어 사용하는 것들의 형태를 수집하고 찢는 행위나 손의 즉흥적인 움직임처럼 우연히 그려진 형태들로 표정을 만들어 자, 마스킹 테이프, 노트, 스티커를 제작하고 ‘Collected Faces’라 이름 붙였다. 제작 과정을 알고 나면 더 흥미로운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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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서정화는 브랜드가 아니라 제주도의 석공 장인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문구류인 Basalt Series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석공 장인들은 석공 작업의 부산물인 현무암을 이용해 서정화가 오름, 주상절리, 정낭의 형태를 응용해 디자인한 명함 트레이를 만들었다. 트레이 하부에는 황동과 월넛을 덧대 현무암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소재는 지역적, 미감은 국제적이고 합리적, 형태는 기능적. 디자이너와 장인의 훌륭한 협업 제품으로 칭송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번 서울디자인브랜드 기획전은 서울디자인브랜드_소통의 도구 전의 앙코르 전시와 함께 DDP 스토어에 입점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테스트 마켓으로 구성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주로 로비에 전시와 관련한 각종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있다. 요즘은 ‘기념품’보다 ‘굿즈’라고 불리는 이 상품들은 관람객에게 전시를 오래 추억할 수 있는 즐거움을 선물할 뿐만 아니라 그 기관의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DDP에는 살림터 1층에 50평 규모, 배움터 지하 2층에 21평 규모로 상설 운영되는 ‘DDP 스토어’가 있다. 다른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다른 점이라면 DDP 스토어는 단순히 전시 관련 상품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 디자인·공예 상품 편집숍이라는 점이다.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은 올해 DDP 탄생 5주년을 맞아 공간 디자인, VMD, 디자인 학계, 공예, 상품 개발, 유통 등 다양한 전문가와 협력해 DDP 스토어를 리뉴얼했다. 소비자가 편리하게 디자인 제품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자 서울 디자인의 현재를 제시하는 유통 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번 서울디자인브랜드 기획전의 테스트 마켓에 선보인 24개 브랜드 110여 개 제품은 만 39세 이하, 사업자로 등록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것들이다. DDP 스토어 입점선정위원회의 결정을 통과한 이 신진 디자이너들은 주로 식기, 문구, 생활용품, 인테리어 소품, 액세서리 등을 출품하고 판매하고 있다. 신진 디자이너의 다양한 제품 중에서도 괄호 프로젝트의 ‘조약돌 화투’와 한글도깨비 두두리의 ‘리소그래피 엽서 세트’ 등 한국적인 느낌이 담긴 제품에 관람객들이 흥미를 보이는 모습을 통해 한국 디자인 제품의 앞날을 밝힐 해시태그에 ‘#한국적’이 빠질 수 없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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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반가웠던 건 신진 도자기 브랜드들이 선보인 식기였다. 음식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이며 음식 문화에서 식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한국 브랜드의 식기를 ‘디자인이 뛰어난 식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추앙받고 있는 유럽, 일본, 미국 브랜드의 식기에 비해 한국 브랜드의 식기는 눈에 덜 띄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의 식탁에서 일본 식기가 한국 식기를 밀어내고 있는 양상은 낯이 뜨거워지거나 울화가 치밀 정도로 심하다. 이미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필자도 일제 밥 그릇과 반찬 그릇으로 식사를 하곤 한다. 그래서 본리빙, 제이보울스, 아리아워크룸, 오브유, 소일베이커 등의 신진 도자기 브랜드가 선보인 한국적인 느낌의 식기가 더욱 반가웠다. 담담한 형태에 유난스러운 장식이나 광택이 없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한국적인 미감을 가진 신진 디자이너의 식기 제품에서 한국 식기의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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