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훈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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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정 기자
  • 승인 2019.09.1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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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미술세계 제1전시장에서는 2019. 9. 18(수) ~ 2019. 9. 23(월)까지 소훈 작가의 갤러리 미술세계 기획 초대전이 열릴 예정이다.

소훈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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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소훈,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하여

평생을 그림 그리며 살아온 작가가 있다. 그를 소개하는 데에는 ‘작가’라는 넓은 표현보다도 ‘화가’라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이 더욱 알맞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뜻하는 화가만큼 소훈 작가를 명료하게 소개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세계 초대로 갤러리 미 술세계(9.18~9.23)와 교동미술관(10.15~10.21)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17번째 개인전 《소훈》은 전시의 제목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 ‘소훈’의 작업세계 전반을 선보이는 전시다. 재료에 있어서는 유화, 수채화, 아크릴, 파스텔, 목탄, 연필, 소재에 있어서는 풍경, 인물, 정물 등이 펼쳐진다. 이러한 재료와 소재는 그림이라 하면 떠오르는 지극히 전통적인 선택인 동시에, 전통 안에서도 특정 소재에 함몰되지 않는 폭넓은 선택이다. 소훈 작가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묶어줄 한 단어가 존재한다. 바로 ‘구상회화’다. 긴 화업 동안 여러 변화가 찾아왔지만, 큰 틀에서 보자 면 그가 구상회화를 떠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에게 회화란 이론이나 사고 실험의 도구가 아닌 삶에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하나 의 실천이었고, 그 표현에는 대상이 필요했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과 엄지 안쪽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의 노력 끝에 자신이 그리고자 하 는 대상을 원하는 재료로 그릴 수 있는 섬세한 기법들을 익힐 수 있었다. 현대미술의 수많은 실험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것이다. 그의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누군가 따라 하고자 해도, 따라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낸 단단함이 자리하고 있다. 구도, 터 치, 색상 등 그림을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들은 부족하거나 모난 데 없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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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훈 작가는 이러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을 투한 그림들을 그려왔다.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자신에게 감동 을 준 대상을 가장 적합한 재료를 사용해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40여 년간 이어왔다. “예술은 그저 삶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은 작업과 삶 을 태하는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삶을 담은 작품들은 감상자에게 작가 특유의 감성을 전한다. 격정적이기보다는 잔잔하고, 가볍기보다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화면은 다양한 작품들에서 공통되는 특징이다. 구상회화인 만큼 그려진 대상이 그림의 감상에 미치는 향이 작지 않음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정서는 대상을 담아내고 소화해낸 소훈 작가의 시각과 감성이 짙게 배 있다. 그리고 그 감성은 어딘지 쓸쓸하다. 소훈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한 신현식 비평가는 「의지로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 – 소훈의 작품세계」에서 그를 “더욱 철저하게 고독한 화가이다.”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이 고독함이 그의 작품에 스며든 것 아닐까. 그는 “변화를 추구하며 고독해 하는 예술가들의 흐름 에서 벗어나 홀로 고독하다.”라고 덧붙다. 이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가 고집하고 있는 전통적인 회화기법은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곤 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회화에서는 수많은 거장들이 걸작 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들과 경쟁하며 그들의 성과를 뛰어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거장들과 같은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작품 을 이룩했다 하더라도 그 선례가 있는 상태에서 이룩한 성취의 의미가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즉, 더 나아가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의 양은 많아졌고, 그 노력이 새로운 역을 개척할 확률은 줄어든 것이다. 비평가들도, 작가들도 새로운 역을 찾아 떠나고, 구상회화에 천착하는 이들은 어느새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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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미술 활동이 기존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러한 강박에 노출되었을까.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을 꾸준히 끌고 나가 설득력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가 소훈 작가와 같이 자신의 내면에 담긴 풍경을 화폭으로 제대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여전히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술은 역시 구상회화일 것이다. 비평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구상회화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평가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새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그림을 접한 후 가장 기본적으로 내리는 판단인 ‘잘 그렸네’, ‘못 그렸네’와 같은 기초적인 판단마저 이뤄지지 않거나, 때로는 그러한 판단이 시대에 맞지 않는 사라져야 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의 흐름과 별개로 현실에서는 그리는 이에게도 감상하는 이에게도 잘 그린다는 것은 중대 사안이다. 물론 전통 회 화의 역사에도 다양한 화풍이 존재하는 만큼 잘 그린다는 것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말 한대로 자신이 추구한 바를 감상자에게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완성도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잘 그리는 것’은 다른 예술 장르에서 ‘잘 연주하는 것’, ‘잘 부르는 것’, ‘잘 쓰는 것’, ‘잘 촬하는 것’이 그러하듯, 회화란 장르의 뼈대가 되는 것이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미술에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미술에 대한 오해 때문인가. 널리 알려졌다시피 예술을 뜻하는 단어 ‘art’는 라틴어 ‘ars’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그리스어 ‘techn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예술과 기술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고, 실제로 수많은 창작에서 기예는 그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이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 위에 쌓아올린 기본기의 결과이듯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기는 눈에 띄는 기교들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회화 창작을 위해 사용하는 안료들의 특성은 어떠한지, 어떤 물감 이 먼저 마르고, 물감의 성분에 따라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와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의 전수와 공부가 소홀히 여 겨지면서 일어난 ‘재료학’의 부재는 이미 많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장애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훈 작가가 작가로 서 개인 작업에 열정을 쏟는 만큼이나 교육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이 모토로 삼고 있는 레의 말 “땀 흘리지 않은 것엔 아무런 가치도 들 수 없다.”를 몸소 실천하며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기본기는 땀 흘리지 않고 체득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리지 못하는 화가의 ‘무능’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하지 않은 미술가를 응원할 수는 있어도 안주해도 된다고 칭찬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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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훈 작가의 작품세계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는 항상 부끄럽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그림은 단단하고 이 단단함은 앞으로도 허물어질 일이 없어 보인다. 잘 그리 기 위한 그의 노력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인물화를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 레핀미술대학을 찾아 개인 강습을 듣고 온 것은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 는 감성을 상당 부분 화폭에 옮기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결국엔 취향 문제다. 누군가는 현대미술의 최전선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전통 회 화를 지루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소훈 작가의 섬세한 터치보다 인상주의의 거친 터치, 야수주의의 강한 색채대비 등을 선호할 수도 있다. 이는 잘잘못의 역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면 하나의 비평적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약 간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듯한 그의 그림과, 그 그림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모습이 좋다. 그가 찾은 풍경의 모습과, 풍경을 받아들인 그의 충만한 감정을 한 폭의 캔버스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전통 회화의 매력 중 하나이지 않은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백지홍 |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의지로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 -소훈(蘇勳)의 작품세계

우리의 모든 사유와 행위가 전통이나 그 시대의 흐름에 맞닿아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정체성(正體性)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액면 그대로의 복귀나 정체(停滯)가 아니라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변화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안정감과 평온함을 보장해 주며 예측 가능한 연속성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편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변화는 곧 생명이다. 예술가는 결국 일상이라는 단순성으로부터 벗어나려 는 사람이고, 일상 속에서 포함되어 있는 각종 모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중이 일상을 통해 정의된다면, 작가는 그 일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규정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라는 직업은 고독하다. 예술이든 철학이든 일상이 차원을 넘어 다른 차원을 추구해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소훈은 더욱 철저하게 고독한 화가이다. 그는 변화를 추구하며 고독해하는 예술가들의 흐름에서 벗어나 홀로 고독하다. 그는 현대 미술가들의 ‘새로운’매체주의나 소재주의만을 추구하는 경향은 창작의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변화를 지상명제(至上命題)로 여기는 그들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훈은 진솔한 체험이 결여된 채 선정적인 외관만을 중시하는 것은 표피적이고 인위적일 뿐 진정한 작가정신이 결여된, 작가로서의 정 체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직 소화되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채 걷잡을 수 없이 빨리 흘러가는 현대의 사조(思潮)를 버거워 하고, 그것을 따라잡거나 오히려 더 빨리 가려만 하는 현대미술의 조급함을 못 견뎌한다. 덮어 놓고 ‘새로운’것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자칫 선정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염려한다. 과거와 단절된 현대는 어떤 방향도 목적도 가치도 없는 맹목적 몸짓에 불과하며, 그럴 경 우 계속적인 대체만 있을 뿐 연속성이나 성숙은 없다는 것이다.

소훈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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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훈은 전라북도 전주를 무대로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역량있는 중견 화가이다. 그는 유화를 비롯하여 수채화, 아크릴화, 파스텔화 등 모든 매체를 두루 사용하여 풍경, 인물, 정물, 크로키 등 거의 모든 회화장르에 걸쳐 완숙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처 럼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게 된 것은 전통적으로 화가라면 모름지기 재료와 기법을 막론하고 모든 장르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 야 한다는 우리 근대화단의 오랜 관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리라. 소훈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화가로 활동하던 부친의 명함아래 자연스럽게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왔다. 그의 형이 화가요. 아내도 화가 인데다가 아들과 조카까지도 미술공부를 하고 있어서 가히 미술가 집안인 셈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그가 화가로서의 입지를 세우고 예술가적 태도와 예술적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상당한 향을 주었을 것이다. 소훈의 그림들은 전혀 어렵지 않다. 사시사철 변해가는 자연의 다양한 양태들을 그저 담담하고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할뿐 우리가 살아가는 번잡한 도시의 모습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인위성으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보다는 순수한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신의 내면적 성찰을 투명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어떤 초월적 존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작가적 조형의식을 투하여 대상을 단순화시키거나 기하학적으로 추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자연을 감각적으로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의 풍경들은 자연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해버린다. 그리하여 화면에 등장하는 물상 들을 고즈넉하게 하며 심지어 단순 명려하기조차 하다. 화면에는 단순한 몇 가지 물상들만 존재한다. 하늘과 들판, 그리고 나무 한두 그루, 혹은 배 한 척.

그리하여 소훈의 풍경화들은 어딘지 황량해 보이거나 소신한 정감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그가 자연이미지에 작가의 내면풍경을 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름으로 변화무쌍한 하늘과 풍요롭기 보다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대지, 그리고 한두 그루의 나무나 배 한 척은 고독한 예술가의 메타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예술은 우리의 일상 일뿐이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 기쁨, 고독 등을 캔버스에 투하는 것이 화가”라는 그의 언급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정감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소훈은 화면의 도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주로 P형이나 M형 캔버스형 가로로 길게 뉘 어서 대지의 넓은 수평성을 강조한다. 기나긴 지평선을 화면의 1/4이나 혹은 4/5정도로 배치하여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을 강조하거나 혹은 대지의 헐벗음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풍요로운 계절의 화려함을 피해 주로 늦가을이나 겨울 혹은, 이른 봄까지를 주로 묘사하는 그의 작품들에서는 스산함이 더해진다. 이에 더하여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붓놀림을 구사한다. 그의 스트로크는 화면 전체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 편이다. 자신이 강조하고 자 하는 부분에는 날카롭게 명도대비 효과를 사용하거나 선적(線的)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어 윤곽을 강조한다면, 나머지 부분은 재빠른 붓질로서 회화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중심화면에 감상자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와 같은 조형적 안배를 등해서 그는 전체적으로 미학적인 즐거움을 신사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적 요소는 특히 풍경수채화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물과 안료의 적절한 배합으로 응축시키는 부분과 충분할 수분을 기미하여 선염의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확산시키는 방식 등 한국화적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화가로서 소훈의 예술과 삶에 관한 태도는 쇼펜 하우어적 사유에 상당 부분 다가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정신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감성에 따라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육체적 존재로 이해한다. 신체의 의지가 재배하는 욕망이 인간적 삶의 본질적 모습이며, 따라서 그 일시적 충족은 가능하나 원한 충족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맹목적 의지에 따라 살아가 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고통과 고뇌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대상에 몰입하여 아름다움을 직관하는 화가는 스스로 대체임을 잊고 의지로 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을 체험한다. 그에게 자연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우연적이고 순간적이어서 자신의 작품 속에 변하지 않는 원한 것으로 붙잡아 둔다. 이 순간이야말로, 의지와 인식과 자기분열로부터 초래하는 욕망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인 것이다.

소훈 展
소훈 展

화가는 일반인들이 잘 보지 못하는 존재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화가의 눈을 통해 존재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범주로 충실하게 수용한다. 화가는 우는 바람과 부는 바람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바람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 차이는 기존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람이라는 이미지를, 범주를 깨버리는 그런 지적 창조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차이이다. 그것은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세 계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것이다. 소훈은 굳고 곧은 예술 세계를 흔들림 없이 걸어온 화가이다. 화가로서 소훈에게 아주 존경할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을 향 한 그의 진솔한 애정이다. 예술론을 펼칠 때면 그는 늘 열정이란 어투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를 넘어선 숭고한 사랑의 길을 말한다. 예술의 길을 걸으면서 서로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비아냥거리고 투덜대는 그런 판단은 언제나 헛된 일이며, 또 진정한 화가의 길은 언제나 어떤 결과보다는 끊임없이 매진하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어떤 대상을 길없이 사랑하는 만큼 자신도 똑같은 사랑 을 돌려받는 법이라고 소훈에게 말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허허롭게 웃으며 계면쩍은 얼굴을 할 것이다. 꾀부리지 않는 정직한 농부처럼 그 는 오늘도 긴 고랑을 따라 묵묵히 쟁기질을 한다.

신현식 철학박사·미학미술사


소훈 작가는 전북대학교 동 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후 개인전 | 17회, 500여 회의 단체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전북미술대전, 한국 목우회 수채화분과위원장, 한국수채화협회 수석 부이사장, 전북인물작가회 회원 전북대평생교육원 미술 전담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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