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동마루 갤러리에서는 2019. 08. 07 ~ 2019. 08. 12까지 이도展이 열리고 있다.

이도展

서사를 만드는 정물들
강선학(미술평론가)


이도 작품을 일견하면서 받은 단색의 선조와 색상감, 아마 이것은 주 소재를 그리는 검은 선과 색상 때문이지만 배경에 깔린 색상들 역시 그리 다양하지 않은 데서 온 인상일 것이다. 그리고 단호하게 선 안에 갇힌 형상들. 정면에서 보이는 눈의 형태와 정면을 바라보기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가는 어긋남, 눈동자가 좌우 상하로 다른 곳을 보는, 다른 곳을 엿보는, 여기저기 다른 꿈을 꾸는, 그리고 식물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선들의 교합이 단숨에 읽게 되는 화면의 특징이다.

이도展

풀과 채소, 꽃, 피망과 당근, 오이, 무, 배추 따위가 어울린듯한 형상은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화면을 구축하는 계기이자 연유로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확과 파종, 가꾸기의 시간으로 대체된다. 그 시간의 주체인 인물은 주로 등장하는 건장한 한 남자다. 그 남자는 그가 가꾼 것들을 안고, 끼고, 쥐고, 머리 위에 올리면서 어딘가를 흘깃거린다.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도 정면시의 시선이 없지 않지만 다들 어딘가를 흘겨본다. 그리고 남자의 손과 발, 손가락과 발가락이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대지를 밟고 선 강인함을 준다.

이도展

굵은 팔과 다리, 과시하듯 불거진 손가락과 발가락, 정면시의 눈,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와 개, 새들이 장식음처럼 화면을 다사롭게 만든다. 그 소재들 밑으로 설핏설핏 보이는 엷은 색과 선의 움직임, 흘러내린 흔적과 파선의 인상은 숫자, 글자, 덧칠, 검은 면이 서로 호응하면서 선 안에 형태를 감싸면서 움직이고 때로 움직임을 멈추고 들여다보게 한다.

이도展

화면을 나누는 듯한 인위적인 구조로서 직선을 제외하고는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화면. 직선조차 곡선화하거나 애당초 직선이 없는 선들의 배치와 교합. 그래서일까. 무엇보다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선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 인상이 그의 작품을 보는 내내 형식과 내용의 처음과 끝을 이끈다. 단조로운 색상과 견고하고 완강한 선으로 드러나는 형상들, 그게 그다음 만남이다. 이어서 거침없이 화면을 구성하는 태도를 보게 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표면의 선 밑으로 중첩된 선이나 색상 역시 머뭇거림 없이 단숨에 처리한 운동감으로 드러난다.

 

이도展

그러나 일차적인 선 밑으로, 표층의 색상 아래로 몇 개의 선과 색이 중첩되어 있고, 그 중첩이 표면의 단호한 형태와 색, 구성의 완강함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한다. 한꺼번에 보아버리지 못하게 견제하고 시선을 붙든다. 그 머뭇거림에서 선이 내재하고 있는 진동, 울림 따위를 느끼게 된다. 형태와 색상들의 미세한 분열과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단순한 선이 아니라 잠세적인 힘으로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는 순간의 머뭇거림이 현재로 드러나는 것이다. 심리적 원근이 만들어내는 조망의 효과다. 조망의 효과는 시간에 대한, 선행작업이 개입하는 현재의 형상을 읽게 한다. 현재는 시간적인 지금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물려서 현상화 된다. 현재의 형상은 그렇게 현시화 되고 도형화된 인물들이 선조로 구성된 함축적인 의미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사가 된다. 평면을 초월한 구체, 현실을 드러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분방한 화면 구성의 즉발성과 임의성, 도상화된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오는 친근감을 확보하는 힘일 것이다.

이도展

이번 작업은 도식화된 구성과 해체의 논법 아래 우리가 목격하는 친근함이 조형적 특징을 이룬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서사를 만드는 정물들, 도상 밑에 깔린 잠재적인 운동의 세계다. 우리에게 보는 것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힘이다. 도상의 상투성이 거북하지 않은 것은 작가로서의 세계의 변화를 읽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보이는 것들이 가진 도상을 이루고 있는 잠재적인 운동성 때문이다. 굳이 그의 작품 전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변화를 읽고 그런 변화 지형 안에서 지금 작품을 읽지 않아도 무관하다는 말이다. 도상은 추상적 형식이다. 추상은 단순히 관념적이거나 개념적 이해가 아니다. 추상은 이미 사유된 것이자 정서적 이해로 느낌을 배제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인 것이다. 그의 도상은 관념이 아니라 정서적 운동감으로 우리를 움직이는 직접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유-느낌’이다.

이도展

검은 선, 흰 바탕, 연두와 파랑, 분홍과 초록이 드문드문 보이는 배경 위로 아이, 개, 여인, 꽃, 집, 계단이 가족 이미지나 연인의 이미지로, 식물적인 도상과 이미지가 선으로 연결되면서 인물과 혼융을 보이고 그사이 틈을 만들어 보인다. 그 틈이 단조로운 도식화된 화면을 다층적인 깊이와 색상의 다양성을 확보하게 하고, 견고한 형상의 외형에도 불구하고 선의 섬세한 촉감을 일깨워준다.

이도展

그런데도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함으로 낯선 감각적 지대를 상투적 이미지로 바꾸어버리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완만한 선, 직선이 최소화된 배분의 화면은 구성과 해체라는 자신의 어법을 보여주고, 머뭇거림 없는 단호한 선들과 색상들, 흔적은 최소의 색, 도식화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표정과 관계, 의외로 서사가 이루어지는 정물적 시선으로 인물을 구축하는 독특한 조형성 태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도展

선이 보이는 형태의 단호한 결정, 그러나 그 단호함 밑으로 보이는 중첩된 선들의 민감한 배치, 선의 다의성이 주는 잠세적인 운동감, 대지를 밟고 선 강인함의 현재화야말로 작품을 이해하는 기항지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도展
이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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