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밈에서는 2019. 07. 24 ~ 2019. 08. 18까지 사물 나 - 백연수展일 열리고 있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우리의 일상을 익숙하게 채우는 사물들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단절과 연속의 리듬 속에 있다. 그들은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지속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짧은 주기로 소진되고 다시 채워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물이 ‘그(the)’ 사물로서 유일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체될 수 있는 ‘하나(a/an)’의 품목으로서 지금 여기에 자리한다. 그래서 사물들은 고정된 물체로서 명확하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진된 사물의 잔상으로서, 앞으로 그 자리를 채울 동일한 사물의 투영으로서 모호하게 존재한다. 산업 사회의 일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고정적인 것을 찾을 수 없는 오늘날의 삶에서 “사물들이란 없고, 느리거나 빠른 매우 다양한 리듬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단언하였다. 실제로 우리 일상의 사물들은 찬찬히 관찰하였을 때, 물리적인 대상이라기보다는 점멸하는 전등처럼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일종의 부호에 가깝다.

사물 나 - 백연수展

르페브르는 일상의 리듬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면서 사람도 “육체를 가진 거의 사물에 가까운 존재로서 다양한 리듬들을 숨기고 있다”고 말한다. 즉, 명멸하는 사물들의 리듬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사람의 몸도 하나의 대상으로 고착된 것이 아니라, 무형의 리듬으로서 용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나타나는 몸의 리듬은 사물의 리듬과 사뭇 다른 것이 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하나의 품목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유일한 ‘그’ 몸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의 몸에서 비롯되는 리듬은 유기적인 지속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는 기계적으로 단속(斷續)하는 사물들의 리듬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 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리듬이 실제의 일상에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미묘하게 뒤섞인다는 것이다. 이때, 하나의 품목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기계적인 리듬은 인체 속에 침투하고,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인체의 리듬은 사물에게 스며든다. 그 결과 사물은 온전히 추상적인 하나의 품목일 수 없게 되고, 인체 또한 온전히 고유한 ‘그’ 몸이 될 수 없게 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백연수의 작업은 이질적인 두 리듬이 삼투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녀는 서로 다른 층위에 놓인 두 리듬을 자신의 작업 속에 섬세하게 포개어 놓는다. 우선 그녀는 나무를 깎는 행위를 통해 유기적인 인체의 리듬을 끌어들인다. 나무를 깎는 일은 온몸을 써서 오랫동안 지속하는 행위이다. 나무의 표면에 누적되는 톱질과 끌질 자국은 그 자체로 고유한 인체의 자취가 된다. 그녀는 나무를 깎는 행위를 통해 ‘그’ 몸의 리듬을 자신이 드러내는 형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하지만 나무를 깎는 행위를 통해 인체의 리듬을 이끌어오는 백연수의 손길은 무척 절제되어 있다. 그녀는 형태에 스며드는 그 몸을 익명적인 무엇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그녀는 나무를 깎는 자신의 손길을 제시할 때도 ‘백연수’라는 특정인의 자취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사람’의 자취 정도로 익명화시킨다. 이는 자신이 깎아 놓은 유기적인 형태 위에 기계적인 사물의 리듬을 포개어 놓기 위한 예비적인 과정이기도 한데, 백연수는 이와 같은 거리두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실제로 그녀는 나무를 깎을 때 체인 톱을 많이 써서 끌질의 손맛을 억제하고자 하고, 형태를 선택할 때에도 개인적인 선호와 무관하게 ‘그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상의 사물을 고른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이러한 바탕 위에 사물의 리듬을 포개어 놓는 작업이 실행된다. 그것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실크스크린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심한 채색의 행위이다. 그것은 마치 별도로 촬영한 사물의 이미지를 사물의 형태에 투영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무의 표면에 옅게 스며든 이미지는 흩날리는 잔상과 같아서, 나무라는 물체가 지니고 있는 무게, 부피, 질감을 순간적으로 잊게 만든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채색 작업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효과는 하나의 품목으로 존재하는 일상 사물의 추상적인 모호함을 나타내는데 적합하다. 단속하는 사물의 리듬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녀가 준비해 놓은 나무 형태 위에 조용히 내려앉고, 형태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몸의 리듬에 닿게 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신발, 바나나, 책, 김밥, 음료수 통, 설거지 수세미, 그리고 발가락 … 이번 전시에서 백연수가 형상으로 나타낸 사물의 목록이다. 공통된 코드를 찾기가 쉽지 않은 이 사물들을 묶어 주는 범주는 ‘무심한 공존’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 항상 존재하지만 적극적으로 인지되지는 않는 사물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우리가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그래서 우리 몸의 일부이기도 한 사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일상의 리듬은 여과 없이 적용되어, 이들은 ‘그’ 몸의 고유성과 함께 하나의 품목으로서 추상성도 동시에 품고 있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이제까지 사물의 형태를 깎는 작업에서 백연수는 구체성을 띠지 않은 밑그림과 같은 상태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표면에 채색을 할 때에도 이미지가 지나친 사실성을 띠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나타난 형태와 색채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띤다. 나무를 깎은 형태는 사물과 일치할 정도로 정밀한 구체성을 띠고, 표면의 색채는 사물의 디테일을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사물 나 - 백연수展

일상에서 봤던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 구현된 신발, 바나나, 책, 김밥, 음료수 통, 설거지 수세미, 그리고 발가락은 오히려 그 구체성과 사실성 때문에 무덤덤한 일상의 리듬을 더욱 자연스럽게 자아내는 것 같다. 나무의 형상에 깃들어 있는 ‘그’ 몸의 리듬도, 채색된 이미지가 상기시키는 하나의 품목의 리듬도, 사물의 형상이 자아내는 무심한 공존의 분위기 속에서는 이질감 없이 뒤섞인다. 사물과 육체가 자신의 대상성을 잃고 무형의 리듬 속에 스며드는 장소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무의식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기 마련이다. 백연수의 전시는 우리가 항시 맞이하면서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는 일상의 어떤 차원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사물인 동시에 ‘그’ 몸이며, 그 모든 것이 용해되는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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