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로열아치 정상에서 찍으신 하프 돔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며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사진을 산부인과 병동에 걸어놓으셨던 것이죠. 세상에 나올 적부터 저에겐 클라이머와 사진작가의 피가 흐르고 있던 것입니다.


저희 집은 중산층이었고, 지금까지 저희 부모님은 돈보다는 삶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십니다. 반대로 할아버지는 직장을 두 개나 다니시며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고급 승용차를 사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께서 차를 산지 한 달이 채 안돼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셨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이 말이야.”라며 종종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클라이밍이나 스키와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활동에 가치를 두게 됐고, 저는 자연스럽게 관련 서적이나 영화 같은 환경에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등반 사진작가_팀 켐블' 기가 막힌 세계의 산들

요즘 세대에게 인스타그램이 있다면, 저에게는 피프티 클래식 클라임즈 오브 노스 아메리카, 더 하드 이어스 그리고 마스터즈 오브 스톤 시리즈 같은 클라이밍 잡지가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새로운 클라이밍 잡지나 블랙 다이아몬드 카탈로그를 훑어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취나드, 톰프킨즈, 브리드웰 같이 유명하진 않았지만, 등반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들에 못지않았습니다.
북미에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등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창한 가을날에 가장 좋은 볼더링 지역으로는 뉴잉글랜드가 있으며, 럼니 마을의 리드 클라이밍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트래드와 아이스 클라이밍으로 유명한 노스 콘웨이 마을과 워새치산맥 또한 빼놓을 수 없죠.
주변에 없는 게 없었습니다. 타워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가이드북에서 찾은 가장 인상 깊었던 바위 형태인 타워는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는 양초처럼 우뚝 솟은 바위입니다. 저에게 타워란 어릴 적 꼭 갖고 싶었던 장난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저는 세계의 타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종종 타워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돌기둥을 발견하긴 했지만, 타워를 향한 욕망을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CATHEDRAL PEAK AND MATHIS CREST ( 커씨드럴 피크와 마티스 크레스트 )

네바다 주 토너파에 있는 차를 캠프 4 주차장으로, 다시 캠프 4 주차장에서 베이 에어리어로 견인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19살이 되던 해 여름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에서 경험했던 일이죠. 저는 친구인 피터 빈토니프, 토니 벨트리와 함께 볼보를 이끌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전국을 떠돌고 마침내 마지막 목적지인 요세미티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피터와 함께 클라이밍의 전설인 양 등반에 열중했고, 한 손에 비싼 디지털카메라를 쥔 토니는 차세대 짐 손 버그인 양 저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프돔 자유등반에 성공했고, 로열 아치를 솔로잉하다 딘 포터 선수를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요세미티 공원의 투올럼니 거목으로 가는 길의 쓰레기를 수거한 일과 하루 만에 커시드럴 피크와 마티스 크레스트의 정상을 올랐던 것입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감상한 아름다운 경치는 곧 다가오는 다음 학기를 견뎌낼 에너지를 주는듯했습니다.

 UTAH DESERT( 유타 사막 )

매년 아버지와 함께 유명한 루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써크 오브 디 언클라이머블즈, 더 헐크, 더 밸리, 엘도, 더 블랙 캐니언같이 고전적인 루트들이 저희의 타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타 사막에서의 등반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기도 힘들 만큼 여러 번 찾아간 유타 사막의 상징 노스 식스 슈터의 라이트닝 볼트 크랙을 완등 했을 때는 정말 짜릿했죠. 어려운 루트는 주로 아버지가 선등을 맡았습니다. 창창한 하늘에 중지처럼 우뚝 솟아있는 노스 식스 슈터는 사막을 대표하는 바위라 할 수 있습니다.

THE ALASKA RANGE ( 알래스카 산맥 )

초능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나요?
최악의 날씨에도 베이스캠프에서 며칠이고 앉아서 견디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활기차게 밖으로 나가 바로 프로젝트를 완등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멋질까요?
알래스카는 미국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대자연 중의 하나입니다.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만년설 산맥의 규모는 클라이머가 아니어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창밖에 어렴풋이 비친 알래스카 산봉우리 하나만 보게 되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풍경일 것입니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뾰족하게 높이 솟은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등반하려면 평생이 걸려도 모자를 테지만, 도전해 보는 것도 즐거울 거 같지 않나요?

PATAGONIA ( 파타고니아 )

상어 이빨처럼 솟아 있는 세로토레와 피츠로이 산 밑을 처음에 지나갔을 때는 50킬로가 넘는 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딘 걸음으로 하루 종일 걸어야 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통에 일주일간 등반하지 못했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 개의 루트만 등반할 수 있었습니다. 예견된 날씨였지만 제가 아버지를 보채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3주 동안 이빨처럼 가지런한 파타고니아 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죠.
약 보름 동안 우리는 숙소 안에서 하늘이 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비가 그친 후, 삐죽한 산봉우리 정상에 올라서서 바라본 광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하산했고, 다음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DOLOMITES ( 돌로미테 )

어느 화창한 날 낮 12시쯤이었을 까요, 제가 먼저 트레 치메로 나가 등반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예전에 헤이즐 핀들레이 선수가 제게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렇게 대낮부터 등반하는 거 아니야.”라며 특유의 영국식 악센트가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죠.
네, 그 말이 맞았습니다. 예보되었던 번개는 제가 등반하고자 했던 석회암 기둥을 피뢰침 마냥 좋아했죠.
트레 치메에 있었던 2주 동안, 해를 본건 15분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산의 높이와 아찔한 경사는 잊지 못할 인상을 제게 심어 주었죠.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

(블랙다이아몬드 뉴스레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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