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윤보선길에 위치한  Able Fine Art NY Gallery 서울관에서는 2019년 6월 26일 - 7월 9일까지 김혜진 작가의 '인연'展이 열릴 예정이다.

김혜진 '인연'展

김혜진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순수 미술을 추구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하던 차 우연한 기회에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배우 생활 10년차에 미술을 향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의 작품은 아크릴 물감과 돌가루를 사용하여 반짝거리며 특이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작품은 강렬하지만 밝지 않은 색상을 사용하여 은은한 빛을 띄며, 어딘지 모르게 고독해보였다. 하지만 이번 ‘인연展’의 신작들은 여리고 밝은 색상의 작업들로 추상적으로 하여 꿈속에 있는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이번 전시 역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와 영화 제목을 작품 제목으로 이어나가 영화 속 명대사를 통해 관람객의 작품 감상을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아이덴티티 시리즈, 사모곡 잇는 내면적 자아에 대한 관조
글_김윤섭(미술평론가,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혜진의 최근 작품은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2013년 첫 개인전 이후엔 줄곧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기억과 사랑’을 주제로 삼은 일명 ‘사모곡(思母曲) 시리즈’였다. 너무 일찍 헤어져 어머니와의 구체적인 기억이나 체험도 남지 않은, 어린 아이의 가슴에 사무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모티브로 삼았다. 짧은 시간에 ‘배우 김혜진’에서 ‘작가 김혜진’으로 재인식 되는데, 그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삼은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면서,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작품으로 승화시킨 진정성에 대해 박수를 보낸 것이다.

김혜진은 2013년 이후 불과 6년 여 남짓에 개인전 13회와 아트페어 및 그룹전 100회 이상을 치렀다. 그것도 작은 부스 개인전 형식에서 100여점을 선보인 대형 개인전까지 쉼 없이 달렸다. 작품의 조형기법 역시 평면회화에서 사진ㆍ조각ㆍ설치 등 다양한 제작방식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김혜진은 평면 회화작품의 시각적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듯하다. 단순히 유화나 아크릴 물감에 만족하기 보다는, 유리판에 실크스크린 기법이나, 돌가루 혹은 유리 알갱이를 활용한 바탕처리 등 흥미롭고 창의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기법이나 표현 장르적인 영역들을 넘나들 수 있는 원동력은 일관된 주제의식 덕분이다.

김혜진 '인연'展

이번 김혜진의 개인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온 작품의 주제에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을 주요 모티브로 한 ‘사모곡 시리즈’에서 성장한 나의 일상에 주목한 ‘정체성 시리즈’로 옮아 온 것이다. 흔히 예술가에게 가장 큰 부담감을 꼽으라면, 인기를 얻고 있는 익숙한 기법이나 주제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귀와 몸에 밴 레퍼토리를 과감하게 탈피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매너리즘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 예술가적 숙명이다. 김혜진 역시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감하게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위한 ‘작가적 성장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혜진이 새로운 작품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선보이는 개인전의 제목을 “순수한 욕망展-Who am I”로 삼았다. 과연 나는 누구이고, 내가 좇았던 욕망은 무엇이며, 결국 나에게 인생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지나온 대부분의 세월은 유년기의 기억에 멈췄던 어머니의 기억 혹은 추억으로 연민했다면, 드디어 ‘바로 이 순간과 그 너머의 다가올 시간’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을 곧게 세워주고,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으로 안내해줄 주체적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는 일관된 작품의 제목인 ‘Identity Series works’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혜진 '인연'展

“아이덴티티(identity)는 라틴어 ‘identitas’, ‘identicus’를 변형한 형태로 ‘동일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전적으로 아이덴티티는 ‘본래의 성질’ 또는 ‘본래의 가치’를 의미한다. 아이덴티티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반면 이미지와 평판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게 아이덴티티를 정의해 보면 ‘내가 정의하는 나 자신’이다. 즉, ‘Who am I?’라는 질문에 스스로 만든 답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의 의지나 시선에서 자유롭게 온전히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김혜진 작가 역시 내면적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그 누구보다도 깊은 속앓이를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겪으면서, 스스로를 방어하며 단단해진 나이테는 어느덧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지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형상이나 포즈들은 남다른 인상을 자아낸다. 마치 장편의 대서사시를 옮긴 연극의 단락들을 보는 것 같다. 다분히 극적인 요소로써 인물들을 표현한 것은 배우생활을 해온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새로운 주제로 변화를 꾀한 김혜진의 신작들이 전하는 일관된 인상 중 하나는 ‘관조적 시선’이다. 관조(觀照)는 말 그대로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시선’을 일컫는다. 아마도 모든 사물의 참모습이나 아름다움의 진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혜진 작가의 그림 역시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보도록 권하는 듯하다.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은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압축해놓은 포스터처럼, 장면마다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배역에 감정 이입되어 갖가지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모노드라마 못지않은 감동이 전해진다.

김혜진 '인연'展

김혜진의 아이덴티티 시리즈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드라마(drama)적 요소’ 덕분이다. 다소 난해한 연극이라도 연출가의 유연한 독백(獨白)과 방백(傍白)의 활용이 있다면 극의 이해와 몰입에 큰 도움을 받게 된다. 김혜진의 그림 속 주인공들 역시 관객을 위해 ―독백이나 방백을 통한―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유려한 선묘 곡선의 흐름이나 세련된 색채들은 주인공 내면의 감정선(感情線)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 그 안에선 남녀의 열정, 삶의 환희, 애잔한 가족애 등 인생 파노라마의 애환이 묻어난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다시 면이 되듯, 김혜진이 연출해낸 장면들은 ‘숙명적 우리 삶의 관계성’에 대한 투영이 아닐까.

김혜진은 홍익대학교 제품디자인과를 졸업 후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현재 작가, 배우, AgathaGallery 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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