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인사동에 위치한 갤러리라메르 1층에서는 2019522~528일까지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이 전시되고 있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3의 공간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
열림과 닫힘이 함께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
나의 헤테로토피아(Helerotopia)는 그림을 그리는 이 작업실이다.

현실적 공간에 민화 속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림)
꿈을 담아 서로 양립 불가능한 복수의 공간,
복수의 배치를 하나의 실제 공간에
나란히 구현해 현실화 된 유토피아를 탄생시키면
뒤죽박죽 속에서도 사랑이, 장수가, 성공이
정오의 목단처럼 피어오른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이곳 제3의 공간에선,
흘린 땀방울만큼의 열매는 반드시 열린다.
가장 아름답고 튼실하게.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라일락 향기

꽃피는 봄날
창밖은 아찔한 향기로 가득한데
내 작업실 물감들은 씨름 중이다.
물질성을 위한 덧칠은 계속되고
시간성 위에 적절한 레이어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아직 끝은 보이지 않는다.
잘하고 있긴 하는 걸까?
많이 고단하고 외로운 오후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외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에 갇힌 듯......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미술관으로 산책을 나선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그곳에서 본
막히면 돌아가라는 물의 융통성은 참으로 위대했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충분한 자극은

내 용기를 부추긴다.

색색이 펄럭이는

그림의 숲을 향해

힘은 내어 걸어 보라······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다독다독

 

물 적신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작업실에 왔다.

, 덥다.

어제 뿌려 놓은 캔버스 위 물감들도 아우성이다.

목마른 듯 꽃처럼 입을 벌린다.

물 주고 다독이며

손을 내밀었다.

비록 땀 범벅이는 칠월이지만

세상 가장 멋진 정원을 꿈꾸며

걸어 보자, 우리.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치열한 작업실

 

내 눈엔 너만 보여.’

보이지 않는 꼭지점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기웃기웃 기회를 넘보는 온갖 병마들을 무시하고

보란 듯이 오늘도

너를 향해 달린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위로 받고 싶은 날

 

흐린 토요일.

하루를 꼬박 매달린 작업

욕심만큼 나오지 않은 결과,

마음과 손은 따로 놀고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쯤 마음 먹은대로 될까?

온전치 못한 결과는

더욱 더 큰 피곤함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한 모금의 산소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다.

질식할 것 같은 안개 속 깃발이

또 펄럭인다.

그림 속 꽃밭으로 숨어 보지만

그곳에도 아직 산소는 부족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직 너!

한 모금의 산소.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행복한 휴식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 정원의 꽃들도

촉촉이 젖는다.

고양이가 비를 피해

~ 하고 가을과 함께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그래,

잠시 쉬자.

휴식!!!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버리고 주워오다

 

참을 수 없는 모든 가벼움으로부터

한 걸을 비켜 서 있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되풀이되는 부끄러움

비틀거리며 흘러간다.

작업을 마친 오후, 광교 호숫가를 찾았다.

건너편 무심함을 바라보며

내 부끄러움을 그곳에 버리고

물결 위에서 반짝이던

햇빛 알갱이들만 주머니에 담아왔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바람이 주고 간 선물

 

먼지 하나 없는 하늘

그 아래 가을과 나는

나란히 앉아 바람을 느꼈다.

차갑긴 해도

가슴을 열고 그 청량함을

가득 담아 일상으로 복귀한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에너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자.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시월의 마지막 날

 

누눕시게 아름다운 가을 산 속에서

단풍과 함께 빨갛게 물든

친구의 사진이 도착했다.

 

마저 가버리기 전에

손 한 번 잡아줘야 할 텐데,

아쉬움은

비 내리는 출근길을

조바심 지게 한다.

 

아직 가지마!

내 그리움은 그곳에 있어,

우리 아직 만나지 못했잖아.

 

안녕하며 슬그머니

뒤돌아 가려 하는

가을을 향해 소리쳤다.

··~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친구의 전화

 

창밖 목련이 폈다.

남쪽은 이미 꽃대궐이란다.

~

가고 싶다. 그곳에,

이 작업이 끝나면

떠날 수 있을까?

누가 잡고 있지도 않은데

발목은 여전히 묶여 있다.

그림 속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

그곳 남쪽으로······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아직 겨울

 

꽃잎이 휘날린다.

시리도록 화사한 봄빛이

가슴으로 들어오 눈물이 된다.

봄볕은 더 화사해지고

외로움은 더욱 더 파래진다.

이 좋은 봄날,

아직 한기가 사라지지 않은 작업실에는

언제쯤이면 활짝 핀 봄날이 찾아올까?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5월 장미

 

매혹적인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수요일 그리고 빨간 장미,

손바닥 위에 꽃을 올려 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 은재,

그녀의 얼굴 위로 시간이 겹쳐 온다.

많은 것들이 가버린 지금,

무엇이 젊음만 하랴.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데······

잠시 쓸쓸한 미소를 나눴지만

우린 다시 깔깔대며 웃어보며

추억의 청춘열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종일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얘기했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빈수레

 

달그락거리며

요란한 빈 수레가 굴러가고 있다.

텅 빈 가슴속으로 스치는

달콤한 오월의 장미향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대지는

푸르러 가고 향기로워지는데······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RED

 

붉은 석양을 캔버스에 뿌리며

하루를 마감했다.

황홀한 그 빛깔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길.

내일은 맑음이다.

붉고 노란 색들이

밤새 부풀어 오르고

남겨두고 온 캔버스 위론

생각들이 떠다닌다.

날마다 이렇게 두근거리며

행복한 내일을 기다린다.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작은 들꽃

 

아무도 보지 않는 들꽃이라도

어여삐 피어 있을 수 있음은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햇빛에게

바람에게

이슬비에게······

 

화실 속 친구들과

(, 나비, 고양이, , 물고기)

오늘도 나는 사랑을 나눈다.

아름답게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하며······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나쁜 엄마

 

우리 예쁜 민영이가

꽃 같은 딸을 출산했다.

그림에 빠져 바쁘다 핑계를 대며 돌보지도 못했지만

용케도 잘 이겨내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혼자서라도 잘 꾸려 나가는 걸 보면 대견스럽다.

마음과는 달리

오늘도 몸은 천근만근,

이래저래

난 나쁜 엄마다.

하지만

사랑한다.

네 가정의 행복을 기도하마······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처서

 

창을 타고 내려오는 빗방을이

가슴속까지 스며든다.

마주 앉아 마시던

그 고혹적인 붉은 빛의

히비스커스 차 한 잔이 그립다.

어지러움증으로

보름째 고생 중이다.

작업 중이던 캔버스 속 꽃들이

시들까바 걱정이다.

조바심은 이내 나를 일으켜

그림 앞에 앉게 하고

창밖 가을비는

고요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사랑을 충전받다

 

오랜만에 동혁이와 현서를 만나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귀염둥이들!

티 없이 맑은 눈동자!

꽃처럼 어여쁜 웃음들!

가슴 한가득 사랑을 충전 받고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 속으로 합류했다.

금쪽같은 시간 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따뜻한 위로

 

도대체

멈추지 않는 어지러움,

울적하다.

예쁜이 현서가 그려 놓고 간

그림 속 붉은 점이

노란 집 꼭대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그림 속 나비들도 아름다운 비상을 재촉하며

축 처진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괜찮다, 괜찮아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쇠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에서

 

흔들리지 말고 존재감을 찾자.

강릉 보헤미안에서 구해온 파나마산 게이샤 품종의 원두로 커피를 내렸다.

호박빛의 화사함은 눈으로 즐기고 새콤한 맛은 혀로,

알 듯 모를 듯한 단맛은 흐르는 음악과 함께 가슴으로 느끼며

오늘도 나는 나를 위로한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새로운 작업

 

해맑은 가을 아침,

어질러진 작업실 청소,

모처럼 상쾌,

어제 시작한 작품 때문일까.

의욕이 샘솟는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좋은 결과를 위한 실험은

항상 두근거린다.

비록 힘든 과정의 연속이지만

될 때까지 매달린다.

파이팅!!!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가을 속으로

 

불쑥 찾아온 쌀쌀함.

가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바람 부는 스산한 갈대숲도,

붉게 물든 단풍숲도,

노란 은행잎 내려앉은

태원사 앞뜰 작은 나무의자도

그립고 그리운 풍경들이다.

이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가을바람

 

창밖에선 낙엽 구르는 소리,

안에선 하프시코드의 아리아 소리,

묘하게 어울리는 바람부는 아침,

햇빛은 투명하고

바람은 불어도 기온은 따스하다.

작업실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행복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을아!

조금만 더 머물러다오.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너와 같이 더 느끼고 실으니까.

이재애 그림에세이 ‘엄마의 정원’

때론 외롭고 지쳐 힘들 때

말없이 다독여주며

위로의 손길을 건네던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리고 묵묵히 지켜봐 주던 가족들!

미흡하나마 이 작품으로 고마움을 대신하려 한다.

 

이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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