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용산구 소월로에 위치한 보혜미안 갤러리에서는 2019. 5. 2() ~ 2019. 5. 30()까지 박동진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가 전시된다.

박동진 展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

그림에는 나의 잠재의식이나 또는 억제되어 있는 무의식의 무엇인가가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인지보다는 주로 감정의 단계에서 나온 것들로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자세히 알 수 없는, 마치 타자와도 같은 불안 · 당황 · 우연 · 기대 · 열광 · 무지 등이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인 것들로 때때로 작품 속에서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수반하는 원인이 된다. 불일치는 작품 속, 그리고 작품 밖 각각의 세계에서 조정과정 없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불가피한 불일치는 그림을 구성하는 여러 세계들 사이의 간극에서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두 세계 - 혼성화

내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배경, 사물, 말과 같은 일련의 오브제들은 단순히 현실의 재현이라는 사실 속에 갇혀 있지 않다. 그리고 배경들은 일상적이며 친숙한 형태와 소재의 연속임에도 이상적이고 몽환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이런 상반되고 모순된 세계는 내 그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일련의 혼성화된 공간이다. 혼성화의 특징은 다층적 레이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레이어의 설정은 재현미술이 가지는 일루전의 조건을 버림으로써 도입된 조형요소가 서로 독립적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모방적 재현의 조화의 가능성은 완전히 무너지고 재해석에 의해서 그림이 읽혀지는 이른바 시각적 그림에서 시지각적 그림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혼성표현 레이어는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상생의 결합을 도출한다.”

박동진 展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

혼성화 된 레이어는 화면 속 시간성과 공간성의 두 가지 잣대를 모두 만족시킨다. 마치 사진처럼 하나의 레이어는 존재론적으로 그 시간 그 장소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은 필수불가결하게도 과거와의 괴리, 장소의 변화, 심지어 그 자체로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금은 사리진 사진 속 그 골목길이나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 찰나의 레이어에 담겨 있는 시간과 공간의 박제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다. 한 층의 레이어 안에서 형태와 색 등이 모두 개별 오브제로써 원형을 유지하며 두 겹, 세 겹 겹쳐가면서 공간의 층위를 만들고 다채로운 실루엣, 흐릿해진 개별 그림이 또 다시 하나의 망이 되어 층위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때때로 각 레이어 속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생득적 형태가 해체되고 무수한 파편들로 배치됨으로써 더 많은 형상들이 연성된다. 레이어의 중첩은 화면 바깥을 향하는 경우도 있어 다분히 확산적이며 입체적이다.

이런 저런 것들이 연속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일 때 형성되는 흔적은 사물의 부재와 존재를 함께 보여준다. 시간과 함께 사라져간 공간 속의 부재를 보여주면서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부재와 존재 사이, 그리고 중첩된 시간 사이에 나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전의 작업들이 주로 철학, 존재, 혁명과 같은 제명이 이야기하듯 화면 위 거친 터치와 색감, 분절된 신체들로 대표되는 작업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는 각 레이어가 만드는 복층의 구조, 중첩 효과, 시야의 가림에 의한 한정의 효과를 내는 독특함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레이어의 흔적을 노출시킴으로써 나타나는 시간 경과의 흔적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요약하자면 개별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존재들이 여러 겹으로 중첩된 혼성효과로, 각 존재(레이어)들은 개별성을 유지한 채 그림에서는 종합된 하나로 나타나는 구조를 보이는 것이다.

박동진 展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

중첩된 레이어는 마치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형식에서 뿐만 아니라 그 의미에서도 입체적인 효과를 노린다. 여러 세계의 층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각 이미지들은 각 층의 의미를 보다 개방적인 상태로 간주하게 한다. 그리고 다층적 레이어로 이루어진 화면구성은 공간과 시간이 일상에 남긴 흔적들을 다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형식과 의미의 다중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끌어 준다. 내 작품 속의 나무(사물)와 말, 그리고 비정형의 공간은 각자의 영역을 설정하며 개별 레이어를 이루면서 동시에 여러 타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형식과 구조는 물론 의미까지도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박동진 展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

이전의 표현들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오는 불안함과 퇴행적 분위기, 그리고 변화를 위한 싸움들. 그 잔혹한 동화 속에서 꺼내든 내 그림 속 다층적 레이어, 공간의 탐구, 말과 사물 그리고 몽환적으로 재현된 형상들…… 나는 작업 정체성의 균열을 위해 사이 공간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새로움을 위해 의미 없는 것들의 집합을 찾아 헤매고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그 근거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인 성과와 가시적인 업적에 한숨 돌린다. 다층적 레이어 사용을 통한 혼성화 된 화면 실험은, 조형적 필요성의 인식과 표현의 한계에 닿은 현실적 연유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재치와 본능적인 감각 그리고 비난과 새로운 과제로의 떠밀림이 달라진 그림을 통해 절충적인 효과로 나타난다.

작가 박동진

박동진 展 ‘푸르른 이성, 찬란한 자아’

박동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후 개인전 46, 단체전 200여 회를 치렀으며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교수 역임, 현재 앙가주망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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