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인사동길에 위치한 인사아트프라자(회장 박복신) 갤러리 3층 특별관에서는 2019. 4. 17() ~ 2019. 4. 22()까지 이병국 이 열릴 예정이다.

이병국 전

이병국, 야경의 詩情
서성록(미술평론가)

이병국의 근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야경이 주를 이룬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도시가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실개천을 끼고 있는 밭이라든가 흰 눈이 덮인 개울,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들풀들, 포구의 정박한 배 등 아늑한 풍경을 선보여온 그로서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사회학적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을 도시화율이라고 부르는데 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1955년에 24.5%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 79.7%에 이른다고 한다. 사상 유래 없는 고속성장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마저 바꾸게 한 셈이다. 도시화율이 거의 80%을 육박한 것으로 볼때 대다수 국민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때 이병국이 일상이 된 도시풍경을 소재로 삼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병국 전

그의 도시는 깊은 어둠속에 들어갔으나 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각종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서울은 잠을 자지 않는 도시예요. 잠들지 않는 도시라기보다는 잠을 자지 않는 도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뭔가 때문에 잠들지 않는 게 아니라 -- 스스로 잠을 자지 않지요.” 퍼니 밸런타인의 소설쇼콜라 드 파리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대도시는 밤이 되어도 대낮처럼 밝고 쉴새없이 움직인다.

이병국 전

이병국의 작품에선 나무 대신 가로등이, 숲 대신 빌딩이, 오솔길 대신 차로가, 따사로운 햇빛 대신 자동차 행렬의 라이트가 화면을 메운다. 화면에는 검고 칙칙한 건물 사이로 희고 노랗고 붉은 불빛을 현란하게 쏟아낸다. 그 불빛은 광고 전광판, 거리의 간판, 자동차 라이트, 가로등이 내뿜는 도시의 위용과 자태를 웅변한다. 눈부신 라이트가 반짝이는 화면에서 짧은 터치로 점철된 형형한 색점들은 서로 중첩되면서 그 효과를 배가시킨다. 스타카토 식으로 리드미컬하게 찍은 그 색점들은 정적의 밤을 형형함으로 장식한다.

이병국 전

작가의 도시그림은 세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첫 단계에는 고상한 중간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도시에 드리운 어둠을 잔잔한 터치로 그려냈다. 오랜 기간 풍경화로 다져온 그답게 대상묘출의 능숙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대상묘출은 두 번째 단계에 오면서 서서히 매스와 터치로 바뀐다. 건물은 덩어리로서 바탕에 자리잡고 현란한 불빛은 오렌지와 붉은색, 분홍 등의 색점과 같은 것으로 대체된다. 이점은 그가 원거리에서 도시를 포착함으로써 전체적인 윤곽과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되지만 점점 더 대상을 자기화시켜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최근에 제작된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단순과 복잡의 교차가 두드러진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공간을 여백의 부분과 덩어리로 분할된 부분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데 여백의 부분은 블랙 내지 코발트로 채색되고 매스의 부분은 빌딩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여백과 매스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밤하늘의 큰 공간 밑에 도시가 조촐하게 포즈를 취함으로써 두 공간의 콘트라스트에서 오는 묘한 긴장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여기서는 화면이 반추상으로 기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추상화 경향은 그림의 테마를 중시하면서도 도시가 풍기는 여운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화의가 반영되어 있다.

이병국 전

흥미롭게도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삭막하거나 건조한 도시의 모습은 아니다. 작품 전반에 어떤 서정성이 흐르며 그것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만일 작가가 도시의 부정성을 표상하려고 했다면 건조하거나 냉랭한 이미지나 암담한 색조를 구사했을 것이나 우리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작가가 도시를 담담히 바라보고 도시를 제2의 자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도시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지내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꿈과 소망을 키워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이병국 전

비록 우리가 사는 공간이 우리가 기대해왔던 도시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곳을 활보하는 가운데 펼쳐진다. 빛바랜 것은 사라지고 새롭고 낯선 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찾아든다. 과거의 사라짐은 비정하게도 기억의 사라짐을 재촉한다. 시란 고요한 가운데 회상되는 감정에서 솟아난다”(윌리엄 워즈워스)고 했던가, 그림 역시 밤의 고요한 가운데 찾아오는 감정과 함께 솟아난다.

이병국 전

그에게 밤은 고요한 시간을, 도시의 불빛은 추억을 일으키는 촉매제같은 것이다. 즉 그는 도시의 불빛을 통해 아련한 추억의 불씨를 지펴주고 아득히 먼 추억들을 불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고유한 향기를 지닌다. 그래서 어떤 향기를 맡게 되면 예전에 우리를 깊이 감동시켰던 어떤 것을 회상하게 된다. 작가에겐 아마도 도시의 불빛이 추억을 일으키는 이미지가 되지 않나 싶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서정적 몽환을 안겨주고 밤의 도시에서 스며나오는 불빛들로 도시의 밤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지나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추억들....

이병국 전

그의 근작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풍경화를 그릴 때처럼 대상을 대하는 관조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아스라한 달빛에 주목하거나 도시야경을 운치있게 풀어내는 모습이 그러하다. 대상세계를 분석적이거나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 대신 그가 지금까지 살고 지내온, 어쩌면 자신을 길어낸 곳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입각해 정감(情感)을 투영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도시를 바라보며 잊혔던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특히 침묵의 밤하늘과 은은한 달빛은 각종 소음과 강렬한 인공 빛으로 시달리는 도시와 대조되어 한층 그 의미가 부각되는데 그가 도시를 그리고 있지만 그의 심중에는 여전히 신화화된 자연이 관통하고 있으며 그것이 도시의 대안이요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병국 전

이병국은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과 수상 경력으로 현재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이사 | 경상북도 문화예술 진흥위원회 위원 | 경상북도 문화융성 위원회 위원 | 경상북도 미래전락 위원회(문화관광체육분과) 위원장 | 경상북도 문화콘텐츠 진흥원 운영자문위원 | 경상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 삼성현 미술대전 초대작가 |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초대작가 | 한국미 협회 문화예술 상임자문 위원장 | 한국예총 경상북도 연합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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