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 이칠용 기자
  • 승인 2019.03.23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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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코리아방송 = 이칠용 기자] 청계천에 봄날이 드리우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아 마치 전태일의 꿈이 보이는 듯 한날, 321일 점심때쯤 사무실 인근에 들어선 전태일 열사의 꿈이 흐르는 기념관을 찾았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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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태어날 때부터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남의 집 식모살이를 전전하는 어머니를 따라 대구, 부산, 서울을 떠돌며 무려 12군데 정도를 옮겨 다니며 보냈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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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열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평화시장 소재 봉제공장에 다녔고, 당시 봉제, 요꼬 공방 등의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조악한 작업장 특히 미니 2층은 아무리 키가 작아도 일어나 허리조차 펼 수 없을 정도로 낮아 늘 구부리고 작업을 해야 했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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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의 노동, 열악한 환경, 질병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삼동친목회를 만들었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결심했다.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이 숨을 거두기 전 한 말을 이루고져 1984년 노조를 새롭게 탄생시켰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합법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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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태일은 박정희, 전두환의 산업화, 공업화로 국가발전을 꾀한다는 정책의 희생자로 암울한 삶을 살다 갔지만, 49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 각지의 재벌급, 대기업들에서조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지고 있어 이곳은 이후 이들 근로자, 노동자들의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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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개관한다. 서울시에서 리모델링한 건물이고 전태일 기념재단에서 운영하는데 2층은 공연장으로 활용할 예정으로 가족과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특히 청소년들이 와서 보았으면 싶다.

전태일기념관, 청계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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