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泉)을 말하다. 1
용비어천(泉)을 말하다. 1
  • 박동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15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제의 길을 열다.

축제의 길을 열다.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짓밟혀도 이렇게까지 짓밟혀야할까. 노여움마저 들지만 보리 싹 밟듯 지근지근 밟아야 철모르게 돋는 보리 싹을 누그리듯이, 섭리로 삼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지. 비원으로 읊조리던 창덕궁을 오늘은 조용히 감상하다가 정궁 머리 켠에 뜬금없이 벚꽃일까 매화일까 하는 물체를 보게 되었지. 분명 저 용마루 위에 올려진 형상은 뜬금없어 보이지만 설치작품인 것은 분명한데, 자연스럽지 않아서 쉽게 감상 율이 작동되지 않았지. 우격다짐으로 대한제국이 탄생되었을 창덕궁의 아스라한 그때를 음미하는 단면이지만 비원으로 불리게 된 어설픈 과거를 돌이켜보는 상징 아닐까.

비원에서 창덕궁으로 자리매김 되는 해방공간 근대 속에 이곳은 조선의 정원으로 불렸고 인정을 받았지. 마치 불국사의 찬란한 예술미만큼이나 비원의 정원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성지 같은 곳이었을 테지. 우리선배들이 숨 쉬던 명예였지. 문화독립운동의 성지 아니었던가. 이따금씩 이곳에서 국빈행사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지존의 맥이 불쑥불쑥 치미는 자긍심으로 읽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몇 해 전 로마를 방문했을 때 비원이라는 우리 전통음식점 이름을 발견하곤 일본식 이름이라고 따끔하게 말해주지 못한 것을 아직도 서글프게 하고 있지. 우리 모두 짓밟힘에 대한 내상이라고 하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정중하게 우리의 진면모를 직시하기로 함이 마땅한 것 아닐까.

창덕궁, 창경궁, 종묘, 성균관의 터전은 용비어천의 형세이자 브랜드(Brand)로 형성되어야 하네. 세종로, 국악로의 길은 수도 서울의 뿌리라고 하여도 되지. 말하자면 뼈대가 되어야 하네. 그사이 인사로, 대학로, 정동길, 얼개로 문화길이 꾸려진 것으로 삼으면 틀림이 없네. 서울의 길머리 사유지. 종로, 청계로, 을지로, 퇴계로의 지층은 이 길목에서 자연스럽게 융해되고 꽃피는 것으로 삼으면 되네.

짓밟히면 그냥 사그라진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음미해보세. 백악, 낙산의 움터를 와룡동으로 읽으면 그 자체가 고려의 하늘과 조선의 하늘이 만나는 지층으로 보면 합당하지. 참으로 멋진 문화의 지층이 살아 숨 쉬지.물길, 사람길, 문화의 결을 정의하는 사유지. 요즘 유행어로 Story, Dream, Brand .

어떠한가. 용비어천의 가회동 브랜드를 고려의 하늘로 삼고, 창덕궁대문을 나와 남산한옥마을까지를 걸어보게나. 일명 국악로가로수를 맞이해보세. 이상하리만큼 훌쩍 커버린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걸작이 되었네. 해방, 근현대화의 치열함 속에서도 가로수명품으로 탄생되었음을 알 수 있네. 아니, 이렇게 멋진 가로수가 존재한다니, 경탄이 절로 나네. 사실 종로, 대학로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명품일세. 그 중심에 창덕궁대문을 나와 남산을 향하는 길목에서 맞이하는 경외심을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맞이할 창문의 서장일세. 그 짓밟힘에 대한 치유의 창문이지.

창덕궁 가로수길 에서 남산한옥마을까지는 30여 분이 소요되네. 목멱산 봉황의 꿈을 연결하는 길목이지. 세운상가 프로젝트가 따라붙고 있네. 어떤가, 이 무슨 섭리일까 싶어 차근히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뜻 없는 소요는 없네. 어찌되었든 세운상가 건축물은 근대유산의 상징 아닌가.

우리의 신화를 떠안은 옹아리처럼 받아들이기로 하였지. 범바위 봉우리에서 차달은 기운은 국사당 봉우리에서 솟아나는 기운과 소통하는 길목이 이 길이지. 봉황의 꿈-고려의 하늘을 연결하는 국악로에 대한 심미안일세. 이 길은 와룡동의 용비어천을 꿈꾸는 축제가 시작될 것이 자명하지. 격조 있는 문화거리축제가 꿈틀 살아 날걸세.

아마도 짓밟혔던 시절의 치받음의 섭리일걸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