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치」

참 뜻은 잘 모르겠지만 갈치의 치와 가파치의 치가 왠지 동질적인 의미 같다. 가파치는 오히려 양아 의 치처럼 비아냥스럽지만 장사치로 떠넘기기에는 품격이 있다. 갈치는 칼치로서 바다의 사무라이이자 은빛제왕의 예술가다. 흔하디흔한 칼치의 참모습 속에는 마돈나의 춤가락보다 우월한 우아함이 깃든 명사다. 바다의 판타지다. 오히려 칼춤의 대명사라 일컬을 만큼 멋진 영혼이다. 상어 따위의 우작스러운 공포영화 삐에로가 아니다. 문어의 변신술 속에 황홀경이 보이듯 칼춤의 칼치는, 「치」다.

가파치는 국내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흥인지문 밖, 가파치는 양아치 우두머리이자 은자의 자객이었으며 묵자의 도를 일찍이 설파한 신비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임꺽정 이야기는 시대담론의 형국이다. 벽초 문학의 금자탑이거니와 그 시절 홍등가 흉내 내기의 야설이었던 임꺽정 신화를 담보한 주역은 아무래도 가파치 라는 인물이다. 가파치의 친구이자 스승인 토정 이지함의 행각은 모악산 금산사 미륵불, 솥에 깃들고 있지만 그것을 직시하고 통찰하기에는「치」의 열쇠가 요구된다. 「치」의 이미지다. 가죽 잘 만드는 장인쯤으로 보여지는 가파치는 장사치, 양아치, 칼치의 칼춤을 읽어 내리는 풍자가 요구된다. 「도치」는 그야말로 경지에 이른 자의 별명이다. 개금, 탱, 단청 얼개를 두루 섭렵하였다, 라고 일컫는 금어의 경지를 오히려 뛰어넘어야 할 세계다. 요즘 마이스터, 장인에게 부여하는 신성함의 추임이다. 도치와 칼치의 아스라한 연결은 풍자이자 해학이다.

몇 가지 개념을 글 읽듯 연결하고자할 때 불현듯 「치」에 대한 암담한 암실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혹시 이 암실의 정체가 「치」의 서장 같은 음울한 직감이다. 문화치의 질문이다. 우연히 전기에너지를 빛과 소리에너지로 변환하는 발명 시도를 한 자의 「치」가 문화 분자식의 첫 관문이다. 이를테면 웹툰의 기호를 갈파하는 리듬감을 번잡하게 요구한다. 그 모든 브랜드의 잉태과정의 성형이다. 길을 걷다 사유하기를, 디지털을 집적하여 「I」로 등가 한 사실이 르네상스의 「I」와 직면하게 되는 「치」의 연결 음을 독파하는 직관세계다.

나름 인사동플랫폼, 문화학교, 프렌차이즈, 브랜드, 팬시-부속품이 텍스트로 개요 되는 시름이 어느덧 십여 년 도과하였을 때 마주하는 몇몇 군상을 다잡기 위해 발주나 동맹 에너지를 차용할 만큼 그 얼개는 깊고 넓으며 전우주적인 소요를 담고 있다. 손가락 세듯 몇몇 동지와 벗, 동행자들을 좁혀보며 치닫는 조바심이 어느새 몇 해를 거듭했다. 혹시「치」의 길이 아닐까 해서- 문화치 라고 규정해본다.

만화가 답이다, ART가 부자다, 문화가 주인이다, 라고 인왕사 벽화에 기호를 남기던, 훌쩍거릴 만큼의 몸부림은 냉혹해 보였다. 문화-장사치는 걸맞다. 요즘 이야기로 흥행이요, 마케팅이겠지만 장자의 백정편이 어찌 희화할 수 있나싶다.

요즘 그렇다. 문화치의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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