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성북구 보국문로에 위치한 갤러리 아트세빈(gallery Art Sebin)에서는 2019. 03. 01 ~ 2019. 03. 24까지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박정용이 열린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풀밭 위의 점심, Natural Union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풀밭 위의 점심>(1863)에서 모티브를 따온 박정용 작가는 관객들을 자극한 여인의 누드 대신 사실적 필치가 녹아든 ‘Stone People’을 선보임으로써 현실을 고전으로 만들 것을 주장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이론을 영리하게 재현해 냈다. 19세기 파리의 아카데미즘에 돌을 던진 최악(?)의 작품들은 모두 마네의 것이라고 평가받던 시대, 고상한 주제를 가장한 비너스의 에로티시즘에서 벗어나 살롱의 권위에 최초로 도전한 화가가 바로 마네였다. 당시 아카데미가 권장하는 기법은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물감 칠을 매끄럽게 하여 표현의 세밀함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명망 있는 화가일수록 커다란 규모의 대형 그림을 출품하여 경제적 여유를 누리던 부르주아지의 눈을 잡아끄는 것이 목적이었다. 마네가 이 작품으로 파리의 유명인사가 된 것처럼, 박정용은 고전 방식을 차용한 대형그림 위에 자신만의 아방가르드를 올려내어 지금까지 이어온 자연과의 물화(物化)’ 속에서 자신을 미술사 상에 위치시킬 결정적 계기를 도모한 것이다. 완벽한 데생과 색의 재현에 충실하면서도 명암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안정적 구도와 빛을 오늘의 인식 속에 위치시키려 한 것이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재미있는 사실은 등장인물들의 포즈와 구성이 다른 대가들과의 콜라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마티스의 <>에서 모티브를 딴 작품은 오마쥬(hommage, 경의의 표시)라기 보다 작품의 현실해석에 충실한 변형과 재()조직화의 과정을 따른다. 피카소가 말년에 거장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변조하는데 집중한 것처럼,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에 매달려 150개의 드로잉과 27개의 회화습작을 남긴 것처럼, 박정용 작가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실험하기 위해 다양한 형식실험을 감행했다. 작품 속 이야기들은 종교적 시선이나 전통적 모티브 등의 규율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명작을 어떻게 오늘에 살게 할 것인가?”라는 은유적 결합(Union)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물로 대체된 인체들은 외설논란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누드의 외연을 보여준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마티스의 댄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Stone People덩실~’ 포즈를 살펴보면, 인체의 성기를 그대로 노출시킨(naked) 듯한 시대의 파격을 보여준다. ()을 지워버린 대상들, 그 안에서 휴식과 춤으로 삶을 대체한 작품들, 초월적 로맨스를 야기시키는 일상화된 행복의 향연은 마네가 오늘을 살았다면 그렸을 파격이 예술이 된 현실그 자체를 표현해내고 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자신을 극복하고 타인과 교감한 긍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박정용은 댄스라는 작품에서 희망과 공존의 스토리텔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동료작가와의 결혼을 통해 행복을 위치시키려는 작가의 내적 동기와도 연결된다. 자연물을 통한 질서와 조화(Universe), 행복한 삶을 향한 자기투사(自己透寫, Self-Reflection)와 같이 초기부터 천착해왔던 진지한 형식실험들이 삶의 유희로까지 이어져 삶의 행복을 스토리텔링하는 여러 요소들과 결합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고민은 지금-여기(只今-, here and now)’ 속에 녹아 있다. 그가 그려낸 풀밭 위의 점심은 행복한 일상을 향한 솔직 담백한 자기고백인 셈이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Stone People, 몰입(沒入)에 관한 스토리텔링

그렇다면 박정용 작가는 왜 작업의 주요 대상을 Stone People에 담아냈을까. 섬세한 묘사와 탁월한 색채표현이 강점인 초창기 작업들에는 러브스토리, 삶의 행복, 고통의 층차 등 여러 단면이 존재한다. 작가는 죽어있는 자연 속에서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연물이 주는 감수성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시각, 자기 중심화 된 어린 시절의 재조명을 의미한다. 어느덧 어른이 돼 버린 사회 속 존재들은 더 이상 특별하지도 원초적이지도 않은 채 하루하루를 같은 날처럼 살아낸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특별한 나를, 꿈이 많던 우리 자신의 원형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원초성을 지닌 변하지 않는 대상, 그것은 도시와 어우러진 채 누워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북한산의 삼각바위를 머리로, 도심과 어우러진 하나의 산을 인체로 표현한 산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자연을 의인화한 시도들은 바다위에 떠있는 섬 자체가 자신일 수 있다는 기본에 충실한 자기해석의 결과였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이러한 형식실험은 개울에서 만난 조약돌 하나의 깨달음에서 일단락되었다. 손안에 담긴 작은 돌 안에도 거대한 자연의 이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2012년 아시아프(ASYAAF)에서 산시리즈가 모두 판매 되었을 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위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우연히 방문한 고향마을의 개울가에서 발견한 작은 조약돌은 바위산의 전체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바위산은 멀리 있는 풍경으로만 존재했지만, 작지만 소박한 조약돌의 속에는 거대한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던 것이다. 이러한 몰입())의 과정 이후 Stone People은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만나게 되었다. 2013~2014년의 작품에서는 매끈하게 정돈된 돌의 외연을, 2014년 이후부터는 돌의 여러 질감 속에서 내연-인간의 여러 감정(喜怒哀樂愛惡慾)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깨진 돌에서 조차 고통을 이겨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의인화된 돌의 다면성은 섬세하게 배려하는 작가 자신을 둘러싼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Natural Union-풀밭위의 점심 – 박정용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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