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평창 11길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퀄리아에서는 2019. 02. 21 ~ 2019. 02. 27까지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카나展 이 열린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빛나는, 살아 숨쉬는, 그렇게 자유로운.
민병직(독립기획, 비평)

자유(自由), 카나 작가의 작업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느낌들이다. 눈에 보이는 바대로의 선과 색이 빚어내는 비정형, 불규칙의 자유로움만이 아니라 그러한 유형의 것들을 넘어선 보이지 않은 것들마저 쌓고 쌓아 화면 가득 어떤 기운과 리듬들을 펼치고 접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업 속에서 스스로마저 자유로워지려 했던 것이고 단순히 자유로운 어떤 시도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본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기에 우연하고 낯설어 보이는 저 숱한 작업들, 그 편린들조차 온전히 스스로 자재(自在)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가지며 서로서로를 관계하고 연결되듯 눈에 보이는 유한함의 관계는 물론 그 이면의 무한한 것들마저 접속시키면서 말이다. 작가가 유념한 바 있는 나비효과도 단순히 물리적인 어떤 현상만이 아니라 나비처럼 자유롭게,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서로를 꼬리 물면서 길고도 질긴, 인연(, karma)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변화무쌍한 세상의 속내에 담겨있는 변치 않는 본질적인 것들을, 유한한 속에서 무한한 것들을 애써, 그리고 기꺼이 찾아간다. 이 힘겨운 궤적 속에 작가 자신의 삶마저 엮어내고 있기에 작가의 작업은 수행처럼 근원을 탐구하는 사유이자 감각실천이며 스스로를 추스르는 행위들과도 연동된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connections),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작가는 최소한의 것들로 역동적인 형태와 디테일한 움직임을 실험한다. 작가에게 있어 선은 사유의 바탕이며 근원이며 본원적인 자유로움을 향한 기본적인 몸짓들이다. 수없이 반복, 실험되는 선, 드로잉을 통해 작가는 작업에 대한 부단한 사유를 이어간다. 움직임을 담아냄으로써 기운마저 축적, 응집하려 하고 인위적인 것들조차 넘어서는 자연스러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기적인 생의 활력처럼 말이다. 이러한 자유분방함은 다시, 동중정(動中靜),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넘어서려했기에 차분한 기운마저 느껴지고, 정중동(靜中動), 그러한 기운들을 응집시키려했기에 다시 어떤 움직임마저 전해온다. 화면 가득, 어떤 세()를 형성하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요함 속의 긴장감이고 이들 서로 다른 움직임들, 그 힘과 기운을 연결시키는 리듬과도 같은 흐름들인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선 작업은 작업의 기본적인 바탕일 수밖에 없는 가시적이고 조형적인 것에 관한 작가 사유의 어떤 흔적들이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도들이기에 현재이자 미래이며, 작가로서의 지난한 기록들이란 점에서 다시 과거마저 연결된 아카이빙, 역사이기도 하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conjunctions), 겹겹이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기를 반복하는 면 작업은 외형적으로는 질료들의 축적이고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이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힘과 기, 혹은 에너지의 응집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이접(離接)이자 그러한 연결들마저 다시 새롭게 통합하고 생성시킨다는 면에서 통접(統接)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비워내고 채우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면들이 쌓고 쌓인다. 때로는 점진적인 느낌들로 때로는 비약적인 변화로 가득 찬 것들이 화면 속에서 확산, 응집해가면서 유기적인 리듬마저 생성시킨다. 감정마저 몰입해가면 직관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러한 과정은 작가의 어떤 상태마저 그대로 묻어나오는 수행성의 차원이 결합된 행위이며 무수한 시도들을 분류하고 정리함으로써 스스로 종합해가는 작가 고유의 질서, 개념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스스로의 행위마저 그림과 하나가 되고자 부단한 몸짓을 반복한다. 가시적이고 촉각적인 실체들을 쌓아가며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인데 여기에 스스로의 감각적 사유, 몸짓마저 더하고 있으니 작가 역시도 그림과 함께 자라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 ), 그저 눈에 보이는 단순한 선과 형, 면만이 아니었기에 작가의 작업은 결국 색마저 비워내게 된다. 작가의 작업이 보다 근원적인 것을 향한 것임을 분명히 알게 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가시적인 어떤 형상이 아니라 그 내면의 기운, 에너지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결, 생명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인 것들에 미혹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색으로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드러내려 한 작가는 하나의 색이되,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고 또 스스로 빛을 발산하면서 고귀함과 영원함을 의미할 수 있는 금색을 선택한다. 세속의 현란함과 성스러운 가치를 동시에 공존하는 금빛은 존재의 풍요로움을 뜻하며 그런 면에서 단순한 색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귀한 존재, 생명의 맥락으로 연동된다. 작가가 배경 색으로 검은 색을 선택한 것도 이들 생명이 결국은 암흑과도 같은 혼돈으로부터 비롯됨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싶다. 그렇게 금빛, 금색은 현란하고 화려한 가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쉽게 범접되어 미혹되지 않은 오묘함과 성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정성이자 뜻이고, 넘치는 기운과 차분한 힘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들 금빛은 존재 자체와 생명의 경이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자 태도이기도 하다. 속됨과 성스러운 사이에서 이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순적으로 담고 있는 긴장감, 혹은 힘과 기운, 에너지마저 포괄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동적인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작가적인 지향과 닮아 있는 것이다. 동시에, 빛으로 출렁이며 발산하는 이들 금빛은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뜻,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 금빛, 금색은 귀하고 소중한 세상의 존재들에 대한 경외감이자 작업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부활하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과 소망을 담아내는 것으로 읽혀진다. 세상살이가 비록 힘들지언정 스스로 빛나면서 그렇게 대지 위에 오롯이 존재하면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 말이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부활(resurrection), 삶과 분리되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작가의 작업은 고단한 작가로서의 삶을 치유하는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방편이기도 하다. 고된 삶을 이겨내고 다시 거듭나는 부활처럼 죽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초월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는 작가의 개인적인 속사정도 있었겠지만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작업이 갖는 각별한 의미, 곧 작품의 완성, 실현을 향한 작가 특유의 믿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루한 세속의 삶 속에서도 금빛처럼 번쩍이는 미와 숭고의 성취를 위한, 어떤 소망이나 다짐처럼 작가에게 있어 작업은 매 순간을 도약함으로써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성스러운 과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개별적이고 유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죽음과 삶을 반복하고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발하면서 끊임없이 순환되는 무한한 생성임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 작가로서의 삶마저 새롭게 거듭나는 것임을 깨달았기에 작가는 매순간 작업하며 매순간 부활을 꿈꿔왔던 것이다. 그렇게 작업으로 새롭게 거듭나려 한 것이다. 이에 더해 개인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도 무시 못했을 것이기에 이러한 고민과 상념들을 계속되는 작업들로 극복하고, 승화시키려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가의 자유분방한 선들이 무수한 고민들과 의미들이 축적된 면들로 거듭나고, 스스로 빛나는 금빛처럼 살아있는 존재들로 화면가득 출렁이게 된다. 그렇게 작가로서의 자유로운 기운과 힘들이, 그 유기적인 에너지들이 화면 속에 점진적인 흐름들로 축적됨으로써 생성에 다름 아닐 존재의 어떤 변화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다시(, , ), 돌고 돌아 다시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작업은 부단한 순환 속에서 결국은 작가로서의 삶마저 끊임없이 작업의 흐름 속에 일치시켜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순환의 과정은 그저 흐르는 물처럼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작가이자 한 개인으로서의 숱한 고민과 사유들을 통해 부단히 이어간 것들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불규칙하고 비정형의 무수한 붓질로 화면을 비우고 채우면서 오묘한 금빛으로 그 존재감을 발하게 한 작가의 작업 역시 단순히 밝은 의미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묵직한 존재의 어두움마저 내포하고 이를 극복한 밝음이라는 측면에서 숭고한 빛에 가깝고, 음양(陰陽)이나 율려(律呂)처럼 극과 극이 서로 힘겨운 순환을 거듭하면서 이루어낸 역동적인 삶의 리듬들로 충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작업은 어두우면서도 밝은 느낌이 들고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그 이면의 유기적인 논리마저 찾을 수 있으며 모호한 추상처럼 보이면서도 구상의 그것처럼 생생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와 닿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들 서로 이항대립적인 것들이 단순히 둘로만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처럼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이(不二)인 것이다. 산이 하늘처럼 보이고 다시 바람이나 파도처럼 전혀 지기도 하면서 그런 식으로 여러 연작들이 한 몸처럼 작동하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원형의 프레임도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고 세상의 기운들을 응축하고 펼쳐내고 다시 다른 것들로 잇는 자유로운 형식들로 다가왔던 것 같다. 옛 선인들이 둥글고 신령스러운 것을 하늘(), 네모지고 지혜로운 것을 땅()으로 본 것처럼 하늘의 원리와 통하는 원형 프레임은 세상을 닫힌 채로 구획하는 사각 프레임을 넘어서는 형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조차 드로잉이나 평면작업의 자연스러운 연결, 확장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 그 서로 다른 형상들과 기운들마저 서로 연결되는 흐름인 것처럼 작가의 작업 역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면서 서로를 관계지우고 연결된다. 그렇게 쉼 없는 연동과 변화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작업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 변화를 추동케 하는 작가의 세상과 작업에 대한 사유, 감각조차 자라나고 있어 그 의미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점차 완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화면 가득 메운 선과 형, 면과 색의 자유로운 흐름들의 완급들을 조절하고 이를 스스로의 삶에 다름 아닐 작업에 일치시켜가면서 힘과 기운들을 모아내고 너른 생의 리듬과 깊이 있는 자연의 울림마저 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빛나며 살아 숨 쉬는 것들, 그렇게 자유롭게 자재(自在)하는, 세상과 우리 내면의 어떤 성찰들을 향해 말이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고요한 심연 속 빛나는 힘의 유기성
박미연(전시 기획자)

카나 작가의 예술 에너지는 특정 방향이 설정되지 않은 채 무작위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무작위적 방향성은 360도 전 방위적인 것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벡터를 설정할 지에 대한 결정되지 않음이었다.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도 젊음의 선택이기도 하다. 작가로서의 이력은 아직 젊기 때문에,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가능성을 믿으면서 방임하지 않은 작가의 그 에너지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작가로서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큰 줄기를 설정한 듯 하다.

대부분의 작가에게 그렇듯이 작품은 자신이자 분신이며, 작업의 과정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자 자기 치유의 반복된 과정이다. 카나 작가 역시 작업을 통해 울부 짓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면서, 마치 수만 번의 드로잉을 하다 보면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기듯이, 순탄치 많은 않았던 개인사의 날카로운 모서리들을 다듬었다. 이 과정을 통해 작업은 자연스럽게 방향성이 설정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작가로서의 플랜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과 함께 선보이게 된 점이 작가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듯하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신작에서 작가는 집중적으로 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시작은 색을 뺀다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금색, 청색,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다양하고 화려한 색들을 덜어내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색은 무엇인지, 모든 색을 담을 수 있는 색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금색을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종교적인 색채로 유년기 때부터 금색에 익숙했던 작가에게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금은 역사적으로 힘, 권력, 화려함, 성스러움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남성적인 에너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금이 지니는 세속적인 성격으로 인해 성과 속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모순성이 있다. 표면의 반짝거림은 표피적이기도 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성을 지니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오행을 색으로 표현하면 동서남북은 각각 청색, 백색, 적색, 흑색으로 상징하는데, 금색은 중심을 의미한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지금까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인지하지 못한 채 여러 길을 돌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재발견한 금색의 의미는 작가에게 남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빛의 각도와 사용하는 안료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금색은 하나이자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색이다. 작가에게 금색은 관계의 중심이자 연결고리가 되어 빛나는 유기성의 개념을 작업에 녹여낼 수 있는 최적의 색으로 여겨진다.

작가는 모두를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색, 금색을 선택하였지만, 단조로움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듯이 동서양의 여러 안료를 섞어 만들어낸 다채로운 금색을 사용한다. 원형의 화면 위에 다채로운 금색을 겹겹이 쌓으면서 화면의 밀도를 높여 부조의 입체감을 더한 지점에서는 조각 작업을 병행해 오고 있는 작업의 방식이 엿보인다. 그의 금빛 찬연한 화면은 추상의 패턴과 반복적인 도형을 통해 속도감이 더해지면서 예술적 에너지가 점점 증폭되는 느낌이다. 수만 번의 드로잉을 통해 수련한 무의식적인 붓질로 드러나는 폭발하는 응축된 에너지는, 고요 속에서 요동치는 바로크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우주를 가로질러 ACROSS THE UNIVERSE – 카나展

카나 작가는 에너지를 통해 나와 너 우리를 모두 연결하려 한다. 유기적 에너지라는 다소 모호한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넘어 모든 것을 아우르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거나 작가적 욕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체계적인 도안 드로잉, 금색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실험을 통해 그의 예술적 집념이 가져올 빛나는 결실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느새 작가의 열정적인 에너지에 빠져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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