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놀자, 박물관 놀자, 인사아트옥션 기획을 하며…….

문화자본 옥션(Auction)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문화자본 최상위 프로그램은 문화예술품 경매프로그램입니다.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최상위 브랜드를 창조하는 어나운서이자 시대문화, 문명 시그널 온도계입니다. 주식, 땅 투자문화는 1차원적인 가치를 계량하고 유지합니다. 새장 속에 갇혔던 과거가 될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왜 인사동옥션 프로그램이 중요한가를 우리 모두는 주목해야 합니다.

GNP 30,000불 시대의 진입과 자본시장의 이동은 앞으로 빠른 속도로 진화, 진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경색되어온 우리의 자본문화는 진정한 문화자본 경험이 없습니다. 튼튼한 퇴적층 없기 때문입니다. TV오락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은 진품명품 속에서 옛 물건의 희소성을 읽어낼 뿐입니다. 특별한 계층이나 전문화된 마니아층에서 은밀하고도 기획된 의도에서나 소통되는 자본문화로 도외시되었을 뿐입니다. 문화자본의 폐쇄성입니다.

인사동옥션 경매프로그램의 방향성은 오래된 미래의 철학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5,000년 역사의 지층 속에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보물보다 많은문화자본이 내팽개쳐지고 있다, 라는 지점을 계몽, 캠페인, 학습을 통해 공유합니다. 무수히 많은 문화자본이 유실되거나 배척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도 균형 잡힌 문화자본 운영 마니아층을 구축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것이 자명합니다. 한류영화의 경쟁력은 특별한 마니아층의 사랑에서 싹트고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인사동옥션의 브랜드, 철학을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주식, , 금융투자의 시대는 식상한 차림표입니다. 일부 미술품, 고미술 투자 마니아들의 유입자본, 인구도 제한적입니다. 고미술, 문화예술품 경매는 최소한의 교육과 경험의 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 주식의 투자는 계속된 경험 치에서 문화로 자리매김 된 잉여문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GNP 30,000불 시대와 최고의 교육지수를 함께 한 대한민국은 잠재적이 문화자본 투자자 층이 존재합니다. 마치 금맥이 살아있는 형국입니다. 문화유산, 고미술, 예술품의 투자층은 삶의 풍요로움과 직결되는 투자입니다. 품격 있는 삶의 초대와 같습니다. 투자된 상품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가정의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제강점기는 단절의 시대였습니다. 조선의 유산은 일제근대화 유산보다 못하다는 비교단절의 역사입니다. 유행의 뿌리에는 일제강점기 단절의 문화에서 가속도를 밟게 됩니다. 물론 조선 사대주의는 청나라유산의 비교우위를 선망하며 유지되어 왔지만 일제의 단절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념이 탑재되었습니다.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미개한 문명의 유산이라는 강요와 박탈의 시대를 관통합니다.

단발령으로 시작된 의, , , 전반의 박탈은 암흑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해방, 전쟁, 근대화, 현대화의 계속성은 박탈감에서 시작하여 버려져야하고 버려야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아파트 숲이 말하여 주듯 우리의 문화유산은 우리의 의식주 주변과 단절되었습니다.

박탈과 단절은 단순한 의식주 문화에 국한되었을까를 곰곰이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를 연결할 문화유산은 없을까. 하는 본질의 질문과 답을 찾는 일입니다. 인사동옥션(Auction)의 질문과 대답입니다. 우리가 입던 옷과 입었던 옷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쓰시던 가구와 안경, 만년필은 무엇일까, 물건과 물건으로 이어지는 연결은 무엇일까. 과연 손맛으로 이어지는 어머니, 할머니의 을 무엇으로 담아내야할까.

박탈과 단절을 치유하는 작업을 우리는 시대담론으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오래된 미래 즉, 우리의 미래는 이미 오래전에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 우리의 미래의 풍요로움이 간직되어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박탈과 단절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명제입니다.

인사아트 옥션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우리 청소년과 청소년의 가정을 연결하는 문화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듯, 유력한 선진국의 문화유산 유통, 투자에 대하여 차근히 학습하고, 문화자본에 대한 공유를 함께 합니다.

 

부첩

창문

그대는 창문이 있는가. 나에게는
창문이 사라진 것을 잊은 지 오래지.
어찌된 일인지 창문의 필요성을 몰랐네.
아파트, 베란다, 큰 창틀 문 여는 소리가
익숙해져서인가.
창문 여는 소리마저 아득해졌네.

그대
오늘 창문 열어보세.
늘 바람소리 들렸던
상쾌함 같이 맞이해보세.

그대의 대문은 철 대문이겠지.
콘크리트 성벽을 쌓아놓고
금고문 열듯이 보금자리로 들어서면
오히려 감옥살이 아닌가.
자네, 보금자리 창문 찾아보게.
쌓아온 아파트는 구멍하나
변변히 뚫어놓을 생각 없었나.
내가 보기엔 창문은 없네.
그저 철 대문 같아서……. 말이네.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어찌나
아련한가.
문풍지 사르르 떠는 한 겨울 체온이
시리던가.
강아지 컹컹거리는 사리문 사이의
뜨락은 전 우주의 넓이였지.
창문 너머 펼쳐지는 대우주였네.
아득하지만, 창문은 숨 막히도록
사라진 것을 오늘에서야 직감했네.

그대,
그대의 창문은 혹시 은밀하게
감춰놓았을지도 모르겠네.
아직도 직녀성을 찾아 열어둔
그대의 여정은
꿈결에서라도 계속되고 있는가.
혹시나 해서지만
아마 자네의 창문도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부여했다고 보네.
그놈의 컴퓨터세계 말일세.

그대
요즘 얼마나 나들이를 하는가.
무심코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마실 여행 즐기고 있나.
가다보면 옆 마을 언덕에 자리한
신화를 듣곤 하든가. 그때는
그런 노인네들 늘 계셨지.
이미 사라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 놈의 골목이, 창문 같아서
말이야.

 

오솔길

온전함으로 완성되기를 소망하기에
우리는 성찰이라는 치열함을 받아들인다.
물론 성찰의 관문은 설정단계로부터
우리사회로부터 격리된다.
뜨겁게 분노했으며 편 가르기를 쫓는
시대의식에 결코 편승할 수 없기에
따르는 외길이다.

온전함은 오솔길에 적합해 보인다.
자라투스트라 가 이렇게 말하였음을
대내이며 새벽을 맞이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시위 팽팽함으로 견줄
치열함은 늘 유지되었다.
이율배반이다.

시는 정수다.
문학 장르의 꽃임을 이해하는 우리로서는
시세계를 차용하기로 하였다.
시를 쓴다는 것은
노자의 독백처럼 화사함으로
결정되어야 온당해 보인다.
깨들음이다.

예컨대
우리는 숭례문참사에서 애써
우리가 겪은 갈증의 단면을 인식했다.
오천만 모두가 직시한 사건을 통하여
발췌된 이미지다.
과연 문화는 무엇이며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대답이다.
결코
온유함이 아니었다.
마녀사냥으로 끝판 막장드라마로
시나리오는 쓰여져야 했다.
허구로 가득한 외침이다.

이를테면
광화문 현판은 갈라져야 옳다.
나뭇결의 미학일뿐더러
사라진 숭례문 단청 빛 염료의 세계는
우리 모두가 잦아들
오솔길임을 깨닫고 있었기에
마녀사냥은 온당치 않았음을
우리 모두는 깨닫고 있어야 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치유를 위해서다.

인사동 전통문화거리의 얼개는
시다.
포도알 보랏빛으로 영근 드라마가
포송포송하게 향긋한 미소를 머금는다.
물론 아스라한 혈침 대못을
부등켜안고 절명했을
도도한 역사테제다.
그러기에
이 길은 오솔길이자 목단이다.

언뜻 언뜻 보이는 북촌, 서촌의
여명은 한양도성 신화와 만나고 있다.
삼각산이 마주하는
세찬 맞바람 모두가 소설처럼
맛깔스러운 새벽이다.
마치
백악, 인왕, 낙산, 목멱의 뿌리는
청계천 시원지가 만나고 있을
뚝섬은, 일만 이천 봉우리
금강 뫼의 정수와 아우라지를
이루고 있다.
물론 태백, 오대산과 함께다.
교향곡 악보처럼
펼쳐짐이 우리의 고요함을
요구한다.
원대함을 받아들일 준비다.

순정효황후 생가에 이르면 서울의
아스라함을 위하여
에세이가 한계가 이른 것을
이해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기천석 그 자리에서 머무는
시간만큼 쌓이는 삼청동은
아마 북촌의 미학을 위하여
오롯한 침묵을 맞이한다.
숭례문 뒷골목 나무전봇대만큼
성성한 낙산 나무전봇대의 미소는
인왕산 자락 그곳의 나무전봇대
소요만큼 뒷걸음치며
인사동 자락의 나무전봇대가
문화 등대 빛처럼 아른 하기를
소망한다.

순정효황후 생가 이야기는
경희궁 돌담, 중학천, 소격소,
복정우물, 삼청동문, 탑골공원,
몽유도원도 길에 이르는 사금파리의
이야기를 꾸리며 정도전길
수진궁, 공평 뮤지엄 자락에서
짙은 커피 향으로
오히려 가다듬어 본다.

겸재의 불꽃처럼
온전함을 설계한다.

손님이 미래다.
오래된 미래.
문화가 답이다.
ART가 부자다.
신화를 찾다.
만화가 답이다.
그리고 시를 쓰게 되었다.
온전함으로 완성되기를 소망하기에
오솔길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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