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혈증

인사동 문화학교를 시작하다.

들어가는 말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의 보물은 무엇일까! 즉답은 없다. 물론 국보도 존재하고 보물도 버젓이 있지만 그것은 유리관이나 책 속에 숨어 있거나 몇 번이나 반복되는 반복어다. 말하자면 보물이기에 보물이고 국보이기에 국보일 따름 도제식 담론에 묶여 있다. 어리숙하기 그지없었던 조선말 개화사상이라는 것이 무참히 짓밟히며 신음소리 조차 흉내 내기에 버거웠던 우리였다. 장구한 시절을 관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담론은 철저하게 유린된 이념덩어리에 오염되었다. 분단과 서로 칼질하는 전화 속에 보물은 오히려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배고픔, 설움 그리고 무참하게 훼손된 허상의 토대 위에 생존만이 전부였다. 극도의 공포와 와해를 경험한 사람은 온정어린 심정을 위로받기에 두세 배의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가 그렇다. 각각의 한 존재가 아닌 우리 전부의 갈레, 민족, 국가의 차원이다.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숭례문, 흥인지문일까, 과연 그럴까. 왠지 살갑지 않은 것은 문화유산 등급일 따름 별개의 별칭으로 삼으려 한다.

 

대한민국의 보물은, 이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하고 개념화함을 선언한다.

패혈증

식민지패혈증 같은 신음소리를 듣고 학창시절을 관통했다. 어줍지 않게 교수, 선생의 자질을 논하며 일종의 우상찾기놀이였지만 이지메놀이처럼 학풍은 자기폄하의 지대를 관통하여야 했다. 근대 커리큘럼의 틀 거리는 악명 높기로 유명한 일본식민지 틀 거리일뿐더러 오염됐다. 패혈증 세균이다. 패혈증 세균은 이 간극에서 충분히 배양된다. 메이지유신과 우리의 근현대화의 학풍또한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요즘 누가 일본 유학을 도모하려고 하는가. 이따금 특별한 학과에 따라 취사선택은 이루어져도 우리는 이미 유럽 또는 미국유학길에서 21C 학문의 방향타를 설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식민지 패혈증논쟁은 유효하다. 식민지 패혈증은 사회전반의 건강지수를 유린하며 좀비찾기로 변종되었다. 이른바 친일파색출이다.

식민지, 근현대화, 해방공간의 사유는 큰 틀 거리에서 패혈증지대에 대한 정화냐, 직시냐 라는 대척점을 요구한다. 청산논리의 비약을 무작정 설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패혈증은 수술대에 올려놓아야 하고 왁진은 개발되어야 한다. 그런 몰두 중에, 우리의 커리큘럼을 새롭게 제안하는 열정이 불쑥 찾아왔다.

도제식 또는 장인정신의 융합은 일본학풍의 리얼리티를 체감하는 준비다. 사무라이 정신과 국화처럼 양립성을 내재한 일본근대화 학풍의 정립은 명제되어 있다. 그러나 훈육과 식민의 도그마 속에서는 그 효율이 극대화될 수 없다. 오히려 처절한 부작용과 맞서야 한다. 박재의 양변현상이다.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 조선인의 학풍과 철저히 배치된 도그마가 식민지 멍에를 떠안고 반세기를 옥죄였으니 말이다.

식민지 패혈증의 중심에는 역사의 명령어가 탑재되어 있다. AIDSADHD와 같은 난이도 깊은 성질의 바이러스가 출몰한다. 두계 이병도학자의 얼개다. 물론 갑신정변의 옹아리는 유치한 준비와 해프닝이었다. 그럼에도 우정총국 길머리의 성성한 애국심은 애틋하다. 두계 이병도의 학풍은 패혈증 중심에 서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 허울 가지고는 뼈아픈 내상이다. 이들의 허접은 우리의 명문대를 설립하는 기초석이다. 또한 식민지 수단의 하나로 치부된 십자군깃발은 윤색되어 오늘의 우리 교육철학의 머릿돌이다. 어찌되었든 스스로 근현대화의 깃발을 치올리지 못한 질병은 21C 오늘까지도 치열한 발열증에 신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외의 장에서 멋진 실험물이 예시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다. K-Pop DNA의 단백질구조다. 글로벌작곡, 멜로디, 장르의 융합실험이 우리의 정체성을 쌓아가고 잇다. 오히려 주도적이며 창조적이다. 온 인류의 실험 성과물보다 실험적인 ART DNA.패혈증-왁진실험물질 아닐까라는 설레임이다. 그러나 K-Pop 열풍마저도 일본열도의 영향력을 흔쾌히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다. 물론 충분하고도 월등하게 뛰어넘은 것은 사실이지만 패혈증은 완치되었음을 선언할 수 없다. 욘사마와 같은 시작점을 우리 모두는 간과할 수 없다.

진보와 보수개념은 민주와 반민주 도그마를 뛰어넘는 설정이다. 오히려 진보의 요구는 오래전의 보수의 염원이자 실천과제다. 아이러니한 우리의 성장 모형은 논리모순이 답보되어 있다. 역시 극심했던 식민지 해방공간의 씻김굿 같은 여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연아의 오마쥬 to Korea의 향기로움은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에너지다. 비할 바 없는 열정의 미학을 안내한다. 사회과학은 인문과학의 서자일 뿐임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기를 염원한다. 진보와 보수 논쟁에 뜬금없는 연아의 오마쥬 to Korea의 선택 자체를 받아들이라는 강권이다.

살펴보면 일본의 메이지유신, 즉 그들의 근대화 여정의 신념은 옳았다. 또한 경이적인 열매를 맺었다. 궁극의 목표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혹독한 패배의 늪도 용해할 만큼 강건한 민족성도 보유했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우리는 어찌하여야 할까, 라는 서두는 식민지 패혈증으로 시작하든 말든 그들은 그들의 생명력에서 왁진을 재창조한다. 섭리다.

패혈증은 치료와 진단이 선행됨이 마땅하다. 지극히 섬세한 처방과 준비다. 그럼에도 민족사관의 도그마에 빠지는 오류를 경계한다. 오늘날 중동사태는 별나라전쟁만큼 처절한 괴리감을 갖는다. 인류마당의 재앙이다. 두건 두른 회교원리주의자들을 우선 경계한다. 본말이 철저하게 뒤바뀐 내상이다. 민족사관의 도그마에 빠졌다. 패혈증은 환각을 유도한다. 반민족적 복수심과 열등감을 위장한 독선주의다. 피해의식 또한 정당한 우리의 존재감을 허물고야 만다. 향기로운 우리문화 존재다.

인사동 문화학교 텍스트는 청소년과 에세이 프로그램을 5,6년 치열한 과정을 관통하고서다. 청소년-인사동 프로그램은 안전거리를 유지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투망한 영혼의 만남을 꾸려주면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통렬한 직관세계를 전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청소년 프로그램 바통을 받아 쥔 과정은 문화정책을 일갈하려는 인문학이었다. 신통치 안았으나 나름 청소년을 위하여 마련한 8, 5강의 얼개는 보물지도-신화를 찾는 사람들의 바탕이 되었다. 물론 패혈증을 치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문득 차곡이 비가 나리는 어느 날 인사동 문화학교의 질문과 대답이 시작되었다. 패혈증 왁진개발 프로그램이다.

뉴 패턴 또는 새로움과 자기계급 얼개로 치닫는 사이클은 분명 유아기 때다. 무엇이든 호기심 가득한 영혼이 취하여야 할 생명 성이다. 우리는 그러나 이들의 선택과 행동에 오히려 찬사를 보내며 독려한다. 천재성에 대한 기대다. 이러한 관점은 별다른 추론 없이 교육학에 채택되었으며 육아전선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 장난감 구매의지의 끝없음이다. 우리 모두는 팽팽하고도 당연한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였다. 그러기에 풍요로운 사랑을 담고 장난감 선물시장은 불경기가 없다. 오히려 멋진 유행기호를 설계하며 대박시장을 장악한다. 한발 더 나가 문화지층의 균형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몰한다. 토네이도, 허리케인 태풍 따위의 잉태다. 캐릭터의 은유화이자 확장성 에너지다. 여기서부터 육아교육 범주를 넘어 조심스러워진다. 산업지대의 균형을 깨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허리우드 산업 역시 디즈니랜드 미키마우스의 육아일기에서 출발했다. 망가왕국, 게임 전자왕국의 신화 일본 역시도 심상치 않은 지층을 창조하였다. 인류마당에 육아일기를 문화산업으로 환원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관점으로부터 우리의 초상을 곰곰이 살펴볼 때다. 인사동 문화학교의 질문과 대답이다. 뉴 패턴의 생태계는 유아기에만 특출나게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어는 순간 하늘나라 산타는 아버님, 어머님 이벤트 사랑이었음을 깨달으며 소멸된다. 아니 성장궤도에 승선하는 과정이다. 이때부터 뉴 패턴의 사이클은 오묘한 변화를 초례한다. 먼 풍경과 가까운 풍경을 동시에 감상하는 정신의 조리개를 탑재한다. 성숙이자 성찰의 단계다. 울긋불긋 과장된 행동, 몸짓이 육화되었거나 희화화된 그것이 지배하던 뉴 패턴 사이클은 오히려 단정해진다. 과연 우리의 모습이 그럴까. 패혈증 진단서.

프로이드, 융의 심리설계도를 도상하지 않음에도 미성숙함은 오히려 탄미스럽다 할 것이지만 백년의 도정을 데카르트의 X, Y 구도에서는 얼마나 비행한 것인가. 함축하여 살펴보면 우리 모두는 지극히 미성숙한 우리의 모습을 공유함이 마땅해 보인다. 마치 유아기적 뉴 패턴 생태계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비행하였을까.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선언한 철인 데카르트의 열정은 별자리개념을 X, Y축에 함축시켰다. 모든 존재의 기호를 3차원 도상에 구현했다. 심상의 세계를 여행한 프로이드는 유아기의 생태계를 조용히 경고했다. 초자아 신성의 발견이다. 슈퍼에고의 정립은 생존을 위한 유아존재의 투쟁성을 거듭 경고했다. 이른바 콤플렉스증후군의 설계다. 여하튼 인사동 패혈증의 진단은 유효하다.

인사동은 연결과 단절의 정반합 논리가 지속적이다. 도대체 이 기괴한 지층을 위하여 관점이 요구되었다. 물론 허줍지 않은 짓거리는 무수히 많다. 적당히 타협하고 치장하면 그뿐이다. 그것 또한 유효한 방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혈증 진단과 치유는 피해갈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분노하여야 할 주제어는 무수히 많다. 착시에 의한 분노다. 또는 미성숙의 투정이 오히려 분노조절기능을 정지시킨다. 치료제로 확신하는 전통, 역사 얼개의 관점투시경의 미성숙은 분노조절기능을 오작동 시키고야 만다. 오히려 큰 틀의 성장통, 치유과정으로 정립한다.

앞서 문화학교의 설립 동기를 시작하며 아득함을 맞이했다. 돌파구는 패혈증 이미지다.

패혈증

발로차지 마라 너는 언제 한번이라도

남을 위해 따뜻한 체온 나누어 본적이라도

있었는가.

골목 구퉁이에 버려진 연탄재에 대한

연민 시구가 가슴 저리다.

또한 그립다 말이다.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보다

어둡지 않다, 라는 결진 시인의 절명도 또한

만나는 골목에서 말일세.

 

발로차지마라.

온몸의 체온을 훨훨 나누어진

퇴적층은 지금 호주머니에

자주 만나고 있는 것이지.

강의 머리는 강의 꼬리이며

강의 하구뚝은 뫼 뿌리 기둥과 같은 것.

감히 발로 찰 수 있는가.

 

은나라, 금나라, 달나라, 해나라,

싸움질로 얼룩진 금도둑 깃발은

양은나라를 온통 도배시켰지.

그놈의 함석장, 캐비넷으로 둔갑 질하더니

어떠한가.

티크장으로 장미목으로 이제는

빈티지 삐에로를 안방에 모시는 꼴이란.

우리의 은나라 자개장 옻칠은

골목에 버려지더군.

분칠 꽃단장한 골동의 이름으로

도시의 골목, 섬처럼 유유한

이곳에 꼭 모셔야 하는가.

 

여보게,

발로 차지마세.

한때는 온 마음의 정수로서

우리의 도도함을 빛내던

백자요, 청자요, 사기요, 받아주던

경대요, 장롱이었으니, 구둘장 드러내어

시궁창 신세를 만물상처럼

꾸역꾸역 어릿광대 줄서듯

잡동사니 이루었어도

이곳, 바다와 만나는 하구 뚝 일세.

그려.

 

닥터 지바고의 라스트신처럼

네 심장은 심근경색을 일으키더라도

우리가 발로 차버린

발자욱만큼은

이미 흰눈의 발자욱만큼

아스라한 일백년의 추억으로

담아보기로 하였네.

패혈증과 문화학교이야기일세.

 

인사동 문화학교와 패혈증이야기는

나무전봇대부터 시작하기로 하였지.

아시는가.

실패한 고종의 개혁은 종로 신시가지를

설계하였고 아시아 최초의 전차를

완공 운행하였다는 기록 말일세.

그 추동력은 나무전봇대가 켜켜이

인사동 골목을 지키고 있지.

 

누군가가 경도, 위도, 나침판을 놓고

지구를 설계, 기획하였어도

우리는 이미 서울 중심지축을 선언하고

하나로빌딩, 조선의 마지막 충신

민영환의 핏빛과 함께 지키고 있음을

떠안기로 하였지.

물론 인사동 회화나무는

조계사, 청와대, 경복궁 뜨락 숲을

이룬 회화나무골 신화지.

이방원, 원각사탑의 정령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보듬어야 할

물결일세…….

근대 일백년의 하구 뚝, 골목 말일세.

 

어머니가 마련한 우리의 먹거리

종지그릇이 백자이기를 소망하기로 하였네.

아니, 어머니, 이 그릇이 백자예요,

책에서 나온 그 보물 이예요,

그런 이유식을 인사동 문화학교에서

펼쳐 보이려하네.

 

어머니, 이 소반이 청자예요?

이거 보물 아니예요?

아니란다, 이 그릇은

나의 어머니, 어머니로부터

소중이 쓰이던 소반이지.

어머니와 나를 연결하고

사랑스러운 며느리와 연결해주는

편지함일 뿐이야.

 

부장님, 부장님 만년필이

오십년이나 되었어요,

그런 소중한 보물을 저에게 주시다니.

그래, 나의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있는 만년필일세.

이제, 믿음직한 자네에게

선배의 혼을 연결하는 걸세.

 

그 모든 것에 가득한 연결

세포들을 나누어 주려고 하는 것이지.

패혈증 왁진 말일세.

이제 우리도 문화학교 하나쯤은

존재해야 할 때 아닌가.

식민지 패혈증 같은 신음소리를 듣고 학창시절을 관통했다. 어줍지 않게 교수, 선생 자질을 논하며 일종의우상찾기놀이였지만 이지메놀이처럼 학풍은 자기폄하의 지대를 관통하여야 했다. 인사동 문화학교를 시작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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