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철도공동조사단 통일의 길을 잇다
남북 철도공동조사단 통일의 길을 잇다
  • 정양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02 2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트코리아방송 야생화전문위원 및 칼럼니스트
아트코리아방송 야생화전문위원 및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은 ‘4 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연결에 따른 남북철도공동조사단30일 오전 서울역을 출발하여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 도라산역에서 환송식을 가졌다. 굳게 닫혔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기관차는 6량의 객화차를 연결하고 철도조사에 필요한 연료 등을 싣고 그렇게 북으로 갔다. 우리 측 조사단은 국토교통부, 통일부, 코레일,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28명의 실무자들이 함께했다는 소식이다. 공동조사 구간은 경의선(도라산역에서 평양 인근 택암역을 거쳐 신의주역 까지), 동해선(택암역에서 원산역을 거쳐 두만강역 까지)에 이르는 총 1200km의 대장정에 올랐다. 열차의 운행거리는 왕복 2600km로 전해지고 있다. 55.000L의 기름을 싣고 떠났는데 쓰고 남은 기름은 싣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는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반입 기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철도의 기원은 18세기 말 인천역과 노량진역을 개통함으로서 비롯되었다. 당시 조선은 사실상 청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조선을 지배권에 넣어 정치적 간섭을 시작한다. 경인선(인천과 노량진) 철도부설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의 다툼은 1896년 조일 간 국내철도규칙공포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일본의 조선침략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조선 사람들은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강제로 빼앗기고 치욕적인 수모와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조선에서 경제적 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경인선, 경부선, 경원선, 호남선, 함경선을 개통하였다.

1945년 일본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조선은 빼앗겼던 국권을 다시 찾는듯하였으나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이념으로 국토는 분단되기에 이른다. 거기에는 소련과 미국이 있었고 중국이 분단을 도왔다. 분단의 책임 있는 당사국들은 한반도 통일을 절대로 방해해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UN 안전보장이사회가 남북철도 공동조사를 대북 제재대상에서 제외키로 의결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도 남북 철도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대북제재와 연계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분할통치 시대를 맞았으나 1990년 다시 한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독일통일의 종합계획이라 할 수 있는 10개 중요 계획(Zehn Punkte Plan)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에는 동독의 철도 시설확충과 베르린과 함브르그를 잇는 고속도로를 신설한다고 합의했다. 이와 같이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소련 등 국제사회가 도와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남북철도공동조사단의 북한 철도상태 조사가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보듯 한반도가 통일의 길을 닦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끊긴 철도를 다시 이으려는 우리의 염원을 국제사회와 미국이 도와줬으면 한다. 9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철도 도로 연결 착공식이 연내에 이뤄져 끊어졌던 철길이 다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남과 북의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