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서울 종로의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사상자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나 기초생활 수급자들이었다. 불이 난 3층의 대피용 완강기는 무용지물이었고 하나뿐인 출구는 불길에 막혔다.

35년 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현행법상 설치 의무도 없었다. 겨울철은 다가오는데 다중 이용시설 화재 예방 대책이 걱정스럽다. 넓이 6안팎의 방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은 불이남대형사고로 번질 우려가 크다.

자유업으로 분류돼 소방시설 기준도 엄격하지 않고 관리 감독도 허술하다. 그럼에도 서울의 고시원 5480여개 중 1080개는 스프링클러가 없다. 화재가 난 고시원도 올 53년만에 받은 소방점검에서 이상 없음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말과 올 1월 잇단 대형 화재 이후 정부는 전국 208.000여 곳을 대상으로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했다.

건축물의 화재 예방 기준과 규제는 강화됐다. 그럼에도 수박 겉핥기식 안전점검에 안이한 안전의식, 그리고 미비한 안전기준이 바뀌지 않아 도돌이표 참사가 계속되는 것이다. 종로구청이 서울형 긴급복지 사업에 따라 이들에게 1개월 동안 임시거처 마련 비용을 지원하는데, 이들이 갈 만한 곳은 다른 고시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고시원이라고 특별히 더 나을 리 없다. 지옥의 하마에서 간신히 벗어난 피해자들이 언재 또 어떤 사고로 죽음으로 내 몰릴지 모를 곳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의 최후의 거주자인 고시원으로 몰리는 주거취약계층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실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11.000여 개에 달하는 고시원에 15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최근 7년 새 고시원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시원뿐 아니라 쪽방, 숙박업소, 비닐하우스 등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취약한 주거지에 살고 있는 이들은 37만 가구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는 보증금 몇 백만 원과 월세 몇 십만 원을 마련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다.

정부가 발표한 취약계층 고령자 주거지원방안에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노후 고시원 등을 매입해 양질의 주택으로 개선한 뒤 저소득 가구에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입주할 수 있는 주거취약계층도 한정돼 있다는 것이 주거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번 고시원 참사 피해자들도 종로구청이 긴급 주거지원 대상으로 인정하면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들이 보유한 미임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임대주택 보증금과 월세를 낼 여유가 없으면 고시원을 벗어날 수 없다.

공공임대주택에도 들어가기 힘든 주거취약계층이 적지 않은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주거취약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당장은 현재 수십 만 명이 살고 있는 고시원이나 여관,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 점검과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참사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한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에서는 지하도는 불이 나면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고시원은 도말갈 곳도 없어 고시원을 나왔다는 증언이 소개됐다. 차라리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취약 주거시설의 실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정부는 대형 화재가 날 때마다 소방 점검을 실시하고 안전규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후의 땜질 대응으로는 후진국형 참사를 막을 수 없다. 재난 점검과 조사 업무가 상시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재난관리위원회 설치법과 같은 법률을 만들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고시원처럼 다중이 이용하는 취약 주거지에 대해서는 소방 점검과 감시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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