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삼청동7길에 위치한 GalleryDOS 신관에서는 2018. 11. 14(수) ! 2018. 11. 20(화)까지 이상영 展 '느림. 그림' (SLOW. DRAW)이 전시된다.

이상영 展 '느림. 그림' (SLOW. DRAW)

느림. 그림 (slow. draw):이상영 서문
자수가 보여주는 빛의 조형성 (갤러리 도스 김선재)

현대미술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는 섬유예술은 재료와 기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며 복합적인 예술 형태를 추구해왔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발전된 기술과 사회적 변화는 섬유예술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다양한 표현 양식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상영은 자수와 인공적인 빛을 결합한 형태의 작품을 제작한다. LED 패널의 빛을 이용한 새로운 소재와 기술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빛이 주는 조형성을 통해 독자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복적으로 선을 짜는 행위 안에 많은 시간과 노동이 전제된 느림의 미학이 전제된다.

이상영 展 '느림. 그림' (SLOW. DRAW)

작가는 자수의 기법과 재료에 의해 여러 가지 질감을 표현하고 화면을 구성한다. 섬유의 종류나 제작, 가공방법에 따라 변화하는 무겁거나 가볍고, 딱딱하거나 유연한 다양한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느낌은 일반적인 회화의 도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자수는 실에 의한 평면에서의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천 위에 일종의 부조처럼 질감과 양감을 표현할 수 있으며 실의 종류와 굵기, 중첩의 정도에 따라 입체감과 거리감이 조절된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실을 쌓아 올리는 시간은 오롯이 작가 자신과의 소통의 시간이며 현대에서 소멸되어 가는 감성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행위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빛은 이상영의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구성요소의 하나이며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투명성은 3차원의 공간을 형성한다. LED 패널의 빛과 촉각적인 재질을 가진 섬유가 만나면서 재료에 생명을 부여하고 이미지를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다. 인위적인 빛의 투입으로 투명해진 바탕재 위로 섬유가 가진 섬세함과 중첩으로 인한 공간의 깊이가 융합된 새로운 공간이 드러난다. 이처럼 공간, 빛 등 외적인 요소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풍부한 조형성은 자수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한다. 또한 따뜻한 손길의 자수와 화려하고 차가운 인공 불빛의 상대적인 대비효과는 보는 이에게 다양한 감성을 환기시키고 시각적 경험을 확장시킨다.

주된 표현의 소재가 되는 한옥의 풍경 안에는 디지털 시대에서 이미지가 자유롭게 소비되는 현 세태를 반영한다. 복사와 붙여넣기로 이미지를 쉽게 복사하고 공유할 수 있듯이 같은 형태를 반복하고 중첩하여 화면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한옥의 건축적인 구조는 해체되고 재조합되며 시각적으로 조형화된 형태로 표현된다. 건축물이 지닌 복잡하고 유연한 선이 섬유의 선으로 치환되어 연속과 교차에 의해 재구성되고 이를 통해 리듬감이 드러난다. 보는 각도나 주변의 빛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찰나의 우연적 효과는 보는 이에게 환상적인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화면 안에 반복된 행위로 녹아든 다양한 층위들은 경계의 모호성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이질적인 공간을 표출한다.

현대에 나타나는 섬유미술은 작품의 소재와 기법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새로운 매체의 탐구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 행위이며 작가는 다양한 섬유가 가진 소재의 재질감에 빛을 결합시켜 이미지를 변형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특히 LED 패널을 사용하여 인공적인 빛을 작품에 표면화하고 그 위에 자수를 결합하는 과정은 현대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면서 섬유예술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처럼 작가는 한옥이라는 전통적인 소재가 보여주는 과거의 미학과 자수를 행하는 현재의 미학 그리고 미래의 변화하는 가치를 더하여 시간을 관통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영 展 '느림. 그림' (SLOW. DRAW)

이상영 작가 노트

현대인의 일상생활과 의식의 범위는 현실에만 한정되지 않고 가상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이메일, SNS등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사회적 가치와 존재감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물질주의와 인간 소외, 집단들 사이의 갈등, 가상공간에서 겪는 분열적 자아 등 많은 고민도 안고 있다.

나는 현대인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세계, 인간적 따뜻함이 있는 세상을 그려내려 한다. 속도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실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빛의 중첩적 성격을 이용하여 완만함과 여유로움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내가 추구하는 인간의 내면을 찾아간다. 

내 작업의 소재는 어릴 적 살았던 시골의 한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곳은 나의 행복이나 불안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 집을 떠난 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꿈속에서 그 곳을 찾아간다. 기억 속의 화면들이 퍼즐조각들처럼 합쳐지면서, 내 의식의 파노라마는 대문, 바깥마당, 사랑채문, 사랑채, 대청마루, 행랑채, 툇마루, 안마당을 거쳐 안채로 들어간다. 내 잠재의식 속의 생각조각들은 한옥이라는 형태를 빌어 시각화되고, 그것들은 내 자아가 되고 서로 연결되어 나라는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 나는 집이 내포하는 의미와 그들의 확장된 개념을 통해 인간의 삶을 생각한다.

우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빛과 비슷하다. 빛은 삼라만상을 비추어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인간은 빛을 통해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을 타자에게 보여준다. 빛은 인간과 사회, 자연을 연결하고, 시간과 공간은 빛에 의해 비로소 그 존재를 완성한다. 사람은 빛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현실을 해석하며, 재구성된 자아의 세계에 내면을 투영하고 안식을 찾는다. 헤겔은 빛은 모든 물질을 무차별하게 비추는 ‘비물질적 물질’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했다. 타자를 드러내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이중성을 갖는다. 빛은 타자를 개체화시키면서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자기 안의 존재'이다.

조형예술의 소재는 빛에 의해 구현된 공간 속에서 원형(原形)으로부터 구별되는 질감을 드러내는 미묘한 변이의 과정을 경험한다. 마치 개체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생과 성장과정을 통해 진화하는 것과 흡사하다.

나는 섬유, 필름, LED 패널, 레이스 등의 표면에 다양한 현대자수 기법을 이용하여 실이나 천을 쌓음으로써 화면을 중첩시켰다. ‘자기 안의 존재’를 시·공간을 초월하는 문화적 기호로 확장하려 하였다. 나는 빛을 이용하여 형상의 변화무쌍한 변이과정을 재현함으로써, 사물의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무형의 기억을 반추하는 의식의 흐름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이상영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학과 졸업(박사), FIT 전문가 과정 수학, 파리의상조합학교 전문가 과정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섬유예술과 졸업(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섬유예술과 졸업(학사) 후,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렀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 의류산업학과 초빙교수, 한국섬유미술가회 회원 , (사)한국공예가협회 회원, (사)한국텍스타일디자인협회 회원, 이화섬유회 회원,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 (사)한국자수문화협의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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