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평창36길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에서는 2018. 11. 1(목) ~ 2018. 11. 10(토)까지 의태 최승애 초대展이 열린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최승애, 한국 산하의 신비로움과 <몽유도원도>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장)

한국화가 최승애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만화책을 손수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친구들은 모두 그를 ‘신의 손’이라고 부르며 그의 그림 한둘은 간직하였다. 결국, 이 신의 손은 오십 여년이 지나 우리나라 최고의 공모전인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문들을 만나면 함께 그림과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이처럼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그림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따라서 약사가 되기를 원하였던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그동안 최승애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청록산수(靑綠山水)를 구현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청록산수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불화와 함께 한국화의 적자(赤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회화 양식, 화과(畵科)로 인정됐었다. 그리고 고구려 고분과 같은 강렬한 색채로도 나타났다. 그런데 조선말에 와서 추사 김정희 등이 중국의 문인화를 적극 옹호하면서, 안타깝게도 청록산수의 정신과 기법은 계승되지 못했다. 오늘날 청록산수의 전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청록산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화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최승애는 한국의 새로운 청록산수를 그리기 위해 그동안 많은 사색과 고민을 해왔으며, 조선 시대의 채색화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의 색상을 체험하기 위하여 틈만 나면 산과 들을 찾아 생명력이 느껴지는 자연을 마음에 담곤 했다. 그는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풀잎이나 야생화를 비춰주는 아침 햇살의 맑고 부드러움에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의 이미지를 청록산수 형태의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자연으로 인한 감동과 여운을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그림으로 담아하게 그려내게 되었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그가 구사하는 청록산수는 전통에 틀을 두면서도 현대적 실험성을 지닌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된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는 일련의 <몽유도원도>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재미로 낙서를 하던 풀잎 모양을 가지고 직접 창안을 한 풀선묘·풀점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으로, 열악한 한국 화단에 생수 같은 신선함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 대화가였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최승애의 <몽유도원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린 옛것을 오늘의 시간으로 되돌려 현대적·창의적 작품으로 승화시킨, 현대성과 한국성이 농후한 그림이다. 더욱이 매우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에서 출현한 것으로 현대 한국의 청록산수와 채색화의 한 양식을 펼쳐내고 있다.

최승애의 <몽유도원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그리고 인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작업을 펼치기 위해 오랜 동안 많이 고민하고 사색해 왔다. 한국화에 있어서, 틀에 박힌 기법과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의 자연과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을 토대로 한 조형적 모색을 통해 오늘의 현대 한국화의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미술의 구조와 흐름에서 볼 때 그 어느 작가이든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작업은 다채로운 색채와 형태에서 기인한 우리만의 정서를 오롯이 담은 것이며, 한국성과 세계성의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자연과 자연성을 기조로 펼쳐지는 산수 형태에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휘되어 신비롭고 순수함이 묻어 있는데, 이러한 형상은 동·서양이라는 틀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순수한 미의 세계로 도출된다.

 이처럼 그의 일련의 <몽유도원도>는 한국의 자연을 토대로 한 독창적인 조형으로 실험적이며 사색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산수 그림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은 현대 조형의 양식에 기초를 두면서도 모든 제약과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성향이 뚜렷하다. 이런 성향 때문에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조금은 독특하고 서양적인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과 감흥에서 미적 형상성을 진지하게 도출한 경우이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은 맛과 은은한 느낌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우리의 전통에 대한 현대적 모색으로서, 한국미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21세기의 문화와 미술은 보다 세계적인 흐름 속에 노출되어 있다. 최승애의 일련의 <몽유도원도>에는 서정성이나 문학성 및 시심(詩心), 신비주의 등이 잠재돼 있다. 그러므로 보이는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무지개와 같은 현상을 모색하며 그 실체를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곧 작가나 보는 사람들이나 현실에서의 탈실체화를 체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멀티라이프와 같은 가상의 실체와의 밀애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미지의 세계의 한국적인 생명력을 담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토대로 구축된 그림이기에, 많은 철인들과 문인들이 읊어온 우리만의 성정(性情)과 진경(眞景)의 자유로움이 내재된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 조선 초기 안평대군이 어느 날에 꿈꾼 비경(秘境)에 동화(同化)되어 그린 <몽유도원도>라는 깊고도 담담히 흐르는 그림이, 작가 최승애만의 독특한 감성과 조형 의식을 통하여 시대를 초월해서 또 다른 감동을 지닌 새로운 <몽유도원도>로 승화되어 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최승애의 <몽유도원도>는 조선시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넘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몽유도원도>를 조망하게 해주고 절대적 세계로의 조형적 변환을 추구한다. 이 변환은 과거의 문인사대부들이 그림에 은유나 상징성 등을 부여한 것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삶에서 나오는, 현대의 문명적인 충격이나 다양한 변용 그리고 가치관, 심미성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하나의 아바타, 다시 말해 화신(化身)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에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로 그려진 것이라고 여기게 하지만, 새로운 로고스를 담은 새로운 세계로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 작가의 신선한 예술적 실험성과 시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과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이제 최승애의 <몽유도원도>는 마치 아름다운 시상(詩想)을 담아놓듯 자연스러운 형상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감성적이며 자유로운 그림에는 그만큼 상징적이며 뛰어난 표상력이 담겨져 있다. 화면에 아교도 바르지 않은 채 각종 돌가루에서 나온 색채를 재료로 한, 자신이 창안한 아름다운 풀선묘와 풀점들이 평면 공간을 압도하는 듯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작가의 예 적 회화성은 마치 안견이 그렸던 무정(無情)의 화면을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유정(有情)의 화면으로 바꿔놓은 듯하다. 이제 그의 <몽유도원도>는 분명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자그마하고 가녀린 풀잎들이라는 모티브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이며 반항적이고 생명력으로 일렁일렁 춤을 춘다. 이 일렁거림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올라간 설악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동해 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일렁거리는 한국의 산하의 신비로움을 그리기 위하여 밤샘하며 붓을 들곤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대가 안견이 몰입하여 단 삼일 만에 대작인 <몽유도원도>를 그렸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화가 최승애는 타고난 미적 감각과 열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몽유도원도>를 그리는데 온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최승애화론
인상적인 너무도 인상적인 자연을 보며

1. 인상주의 회화가 동양화를 만나면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크로드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연못>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데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연못을 그렸네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때 마다 모네는 그랬다. ‘아니요, 영원을 그렸지요’. 그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자 미학자들이 ‘영원’이라는 말 대신 ‘인상(印象)’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물론 인상이라는 말도 쉬운 말은 아니다. 모네의 <연못>은 양쪽으로 통하는 다리가 있고 그 아래에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화창하게 핀 갖가지 색을 가진 꽃들이 엉켜서 그 그림자가 연못을 뒤덮고 있는 광경이다. 꽃과 연못이 구별되지 않을 만큼 뒤엉켜있다.

인상(Impress)이라는 말은 대상과 시점(視點)이 고정되지 않고 시점이 빠르게 이동하는 상황에서 한 순간 포착되는 이미지(殘像)를 말한다. 따라서 모네도 연못을 그릴 때 늘 보아온 시각 경험의 반영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포착된 풍광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겼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상주의 시대의 광학(光學)이 회화에 깊이 관여했음을 말한다. 우리는 ‘오색(五色)찬란’이라고 하지만 인상주의 시대의 과학자들은 빛의 스펙트럼을 7색으로 보았으며 꽃의 화려한 색상은 독자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빛으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봄날의 그 화려하던 색깔의 자연도 밤이 되면 모두 검은색이 되는 것은 그 증거라고 한다. 이 말은 우리가 보는 자연의 색상은 언제나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시시각각 이동하는 변화무상한 하나의 인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승애가 시도하고 있는 캔버스의 자연풍광도 멈춰있는 광경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장하는 변덕스러운 풍광의 어느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색채기법에서 특수한 점묘법(點描法)을 발견되는 것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점묘법은 인상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2. 최승애는 자신의 회화 정신이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뿌리를 둔다고 말한다.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 때 안견(安堅)이 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부름을 받고 그가 꿈에서 본 낙원(桃源)을 그린 작품이다. 꿈속에서 놀았다는 낙원이 복숭아꽃이 만발한 인적미답의 산골이다. 최승애는 안견의 이 자연풍경에 동양화의 미학 정신이 있음을 알고 이 이미지를 현대적인 화법으로 풀어내려는 야심을 지고 있다. 낙원이 복숭아 과수원으로 상징하게 되는 사연은 당나라 시대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발견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는 한 어부가 어느 깊은 계곡에서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는 여러 채의 초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난세(亂世)를 피해 그곳으로 도망 온 사람들이다. 인적미답의 외진 곳으로 그들은 그곳에서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태평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감탄을 금치 못한 어부가 뒷날 사람들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으나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부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여 어리둥절했다. 이 이야기는 도연명 이전에 이미 장자(莊子)의 글에 나온다. 장자는 ‘나비의 꿈’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자는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나비로 변신하여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밭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하지만 그 느낌은 자기가 나비인지 아니면 나비의 꿈속에 자기가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이걸 우리는 주객(主客)이 둘이 아닌 ‘무아지경’이라고 한다. 이 상태를 서양화에서는 ‘인상’, 혹은 인상주의라고 한다. 인상이라는 말은 형상(形象)이라는 공간과 빛이라는 시간이 둘이 아니라 한 순간에 포착되는 이미지를 말한다. 도연명이나 안견의 ‘몽류’라는 말은 그러니까 현대적인 시각으로는 인상이다. 자연의 본질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미적인 감각으로 포착되는 순간의 시각적인 경험이다. 최승애가 도전하는 회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태 최승애 초대展

3.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비하고 환상적이었던 자연풍광도 한밤이 되면 검은 숱으로 바뀌고 봄, 여름이 지나 가을, 겨울이 되면 그 형체조차도 자취를 감춘다. 우리의 민요는 이를 ‘만화방창’이요 ‘일장춘몽’이라고 말한다. 옛사람들은 자연이 우리의 삶을 달래는 한 순간의 가면임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인상주의화가 모네가 <연못>을 그리면서 빛을 그렸다고 하고 동시에 ‘영원’을 그렸다고 한 것도 같은 생각이다. 인상주의 본질은 허무주의다. 자연의 본질을 투시하는 시야를 가진 화가라면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허무주의자가 된다. <몽유도원도>에 심취하고 있는 최승애가 이런 생각에 동의할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보여주는 작품들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몽유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화폭은 하늘, 구름 해, 들판, 꽃밭, 언덕, 호수와 같은 자연의 형상들로 구성 되지만 그 이미지는 형상이 아니라 나비의 꿈에서 보는 자연풍경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박용숙, 미술평론가. 전, 동덕여대교수)

의태 최승애는 서라벌예대미술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을 수료 후 개인전 10회,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을 치렀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이사, 원소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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