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부와 명성을 모두 가졌던 화가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그 중 궁정화가를 아버지로 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의 소리를 들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출세가도를 달렸다. 금세공인이 직업이었던 구스타브 클림트와 알브레히트 뒤러 또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알브레히트 뒤러는 아마 어렸을 때부터 섬세하고 정교한 금세공 장인인 그의 아버지가 하는 일들을 보면서 남다른 재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알프레히트 뒤러

그는 16세기 초에 중부 유럽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뛰어난 예술가로 왕이나 황제와 직접 교류하고 여행을 통해 각 국의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면서 왕성한 교류를 했다. 뒤러는 그렇게 당대의 역사적인 사건에도 참여할 정도로 유명했으며 회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당시 그는 판화기술을 적용하여 화가의 브랜드를 최초로 구축하게 되었으며,그로 인해 명성은 물론이고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의 판화 작품을 표절한 화가를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지게되었다.

뒤러의 판화 작품중 <요아킴의 제물이 거절당하다> 1504년의 목판화 작품을 복제하여 팔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향인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베네치아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비행기가 있어 수월하지만 당시는 먼 거리였으니 가는동안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났을까.

범인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라는 판화가로 뒤러의 목판화를 그대로 동판에 모사하여 복제한 후 판화를 수없이 찍어 고가로 팔고 있었는데 작품을 비교해보면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왼쪽 뒤러의 작품 .오른쪽 모사한 라이몬디 작품

 

뒤러는 당장 라이몬드를 상대로 판매금지 및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소송을 베네치아 정부에 냈지만 라이몬디에게 동판에 새겨진 뒤러의 사인만 삭제하라는 판결만 나왔을 뿐이었다. 그림을 모사해서 파는 것은 죄가 되지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라이몬디는 그 후로 뒤러 외에도 잘 나가는 당시 화가들의 작품을 계속해서 모사를 했다

오늘날 저작권과 비교하면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  세월도 지나도 당시의 법이 상문화되었는지 원작을 그대로 그리거나 패러디하는 것은 저작권에 저촉이 되지않는다. 다만 원작자로 속인다거나 특허권 같은 작품을 자신이 최초로 고안한 것처럼 둔갑시키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과거 시대에도 그랬지만 현재는 아예 연대까지 눈속임하여 진짜로 유통되는 가짜 작품들도 생기면서 가짜가 진짜로 계속 군림하는 경우가 많아 미술 세계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일들도 더러 있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