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그대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벗이여,
그대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오늘 서울의 무더위는 떠나가고 말았네. 백년만의 무더위도 두려움마저 들더니 오히려 무기력하게 뒷걸음치더군. 가을 정령 앞에 무릎을 정중히 꿇었단 말이지. 섭리처럼 사계의 명령어에는 잦아들고 말지.
벗이여,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그 뜨거웠던 무더위도 섭리 앞에 복종하거늘 우리내 정신 결은 언제쯤 섭리를 받아들일지! 침통함은 가실 기미가 없네!
벗은,
나의 침통함을 알고 있겠지. 문화의 정수는 그저 잦아드는 가을 태풍처럼 요란하지도 섭리를 강요하지도 않지만 오는 길도 가는 길도 모르게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고. 마치 매의 눈이 독사의 정수리를 향하는 솔가지, 도도한 움터 에서 야생을 길들이듯 호령하는 포효 같은 것이라는 것을. 문화의 정수가 사라진 이 지겨운 무더위는 얼마나 지속 될 것인가. 하여 이 한통의 푸념을 동봉하여 보내내.
무심하게도 그들에겐 깊은 내재율의 통찰력이라곤 없네. L사, C사의 글로벌 마케팅 스케치는 너무 어리석고 유치할 뿐이지. 그저 허우적대는 삐에로 꼴이네. 유심히 살펴보게. S사, B사의 전자, 자동차의 포효만도 못한 유치한 치장거리에 불과하지. 굳이 문화의 정수를 일컬을 것도 없지.
벗이여,
살펴보게 며칠 전 스타벅스 이탈리아 1호점 개장소식을 접하였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갈지자로 왔다갔다 하던 스타벅스의 태도가 왠지 정중해 보이더군. 마치 문화의 정수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는 어린 아이와 같은 태도와 품격 같은 이야기일세. 요즘 K-POP의 열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더군.
뭐랄까! 변방의 작은 나라, 온갖 시끄럽고 부족함으로 더덕더덕 뒤범벅이가 되었어야할 나라에서 잉태된 아티스트라고 하기에는 기적 같은 것이지만 엄연히 사실이 되었고 신화가 쓰여지고 있지. 과연 이 지겨운 무더위를 날려버릴 것인가! 질문할 필요도 없이 무더위는 계속될 것이고, 지속 될 것이 분명하지. 그저 그것은 현상일 뿐이네. 문화의 정수는 매우 고매한 것 같지만 순박함으로 가득한 물 한 바가지처럼 살아 숨 쉬는 결이지.
벗이여,
문화의 정수는 오히려 우리 청년들이 열광하는 피자, 치킨 속에 동여맨 리본 같은 것일세! 요란한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이 아니지. 물론 백화점 명품 쇼 케이스에 반짝반짝 빛나는 선인장 꽃이 결코 아니란 말일세! 오히려 우리들이거나 잘난 그들이 혐오하는 게임, 오락, 도박, 따위의 얼게들 속에 살짝 숨어 피는 도둑질과도 같은 것이지. 의식의 지대를 지배하고 있는 암세포 바이러스만큼 결정적인 지배력이 있는 암초지! 그것은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이미 꿰뚫고 있지. 매의 눈빛처럼 말이야. 캐논 같은 생명력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매우 무기력한 것이 「문화의 정수」 담론 아닌가! 과연 그 이미지를 설파하거나 개념화한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것일까! 가늠하기조차 어렵지. 뉴욕의 뒷골목을 고즈넉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오랜 체취를 남겨놓을 여유가 있는 거리 뉴욕의 고즈넉함을 탐닉할 수 있지. 아마도 이런 의미 속에 가끔은 정수를 맛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다가설 수만은 없지. 탐닉과 탐미의 경계선 상은 한 결의 차이만큼이나 구별하기 어렵지 않은가!
벗이여!
뜬금없이 스타벅스 이탈리아 1호점 개장소식을 접하곤 조울증처럼 세상이 권태로워지네. 혹독했던 무더위가 가을의 명령어를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가을의 정령 앞에 타령조가 방언처럼 튀어나오네. 요즘 13년 동안의 문화공식을 정립하는 1차 작업을 마무리하며 심신이 고단하였음을 알지만 마음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L사, H사가 설계하는 호텔마케팅의 태도를 살펴보며 아직도 먼 우리의 시대의식의 병증을 관망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 벗이여, 우리에겐 이 지겨운 무더위를 가실 가을의 정령은 정녕 없는 것일까!
스타벅스의 정중함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