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과 한양도성
우리는 1979년 북한산성을 복원하고자 할 때는 애국심의 씨앗을 품었습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씨앗에 불과 하였습니다. 식민지, 6.25를 통하여 무참히 짓밟힌 북한산성은 경복궁에 중앙청의 모습처럼 염치마저 없었습니다. 능멸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근, 현대화의 파고는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높은 벽을 쌓았습니다. 봉건잔재의 버려져야할 옛 물건 따위로 방치하였습니다. 애국심은 이처럼 최소한의 몸부림을 실천하려는 본능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경복궁 복원차원에서 중앙청이 철거됩니다. 그때만 해도 50:50으로 팽팽하게 복원, 철거가 맞선 시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시대의식이었으나 문화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북한산성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힐링왕국으로 자리 매김 되었습니다. 멋진 북한산성의 망루가 뿌듯한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합니다. 북한산성에 올라 수도서울을 살펴보면 한양도성과 궁 자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참으로 멋진 수도 서울의 문화관광인프라입니다. 북한산성, 한양도성, 궁을 연결하는 멋진 명품관광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인사동의 뿌리는 어떻게 다져지고 지층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놓은 명품일까요!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는 무슨 짓을 하였을까요. 왜 지나치게 많은 요정집이 번화가를 이루었을까요. 그곳에 신민당, 공화당 집무실은 왜 있어야만 하였을까요.
우리는 인사동 차 없는 거리 프로그램을 10여년 지속하게 됩니다. 79년 시작한 북한산성의 697차 답사의 여정만큼 지나한 시간을 관통하게 됩니다. 온갖 문화파편 지층 속에 「정수」의 혼을 만나게 됩니다. 문화정신의 자유주의입니다. 무궁무진하였던 우리 민족문화의 높은 탑입니다. 수도 서울 문화관광 스토리의 의무감을 갖게 하는 과정입니다. 로마의 유산은 이미 사라진 옛 영광의 화석 층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패션과 낭만의 도시 파리의 정경 또한 그렇습니다. 200년의 미천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타임스퀘어는 역사의 지층과 21C 첨단 도시의 스토리를 참으로 멋지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관광 스토리는 명품도시의 관광 인프라를 뛰어넘는 설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통사찰인왕사 복원보존 프로그램, 몽유도원도, 용비어천, 인사동 플랫폼 스토리입니다.
인사동, 인사동 플랫폼
우리는 1990년 어느 날, 대학로 차없는 거리 프로그램 발표를 신문지상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대학로 문화거리 스토리입니다. 북한산성 복원프로그램을 통하여 얻은 전통문화사랑은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대학로 문화거리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거리는 더욱 더 중요하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민족의 얼이요, 정신 지층의 텃밭이 어떻게 부서지고 왜곡되었는지를 참담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멋진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인사동 차 없는 거리 프로그램은 우리 모두의 정신을 읽게 하는 통과의례입니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국심의 씨앗을 품은 성장 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사로, 대학로 사이의 국악로, 세종로가 북촌, 서촌을 연결하는 스토리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신념에 비추어 방향성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뜻의 지표입니다. 대동여지도의 고산자 김정호, 토정비결의 토정 이지함입니다. 금수강산 산하를 방울장사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분철설계와 같은 철학입니다. 신하의 나라 조선은 매년 달력을 책봉 받듯 받아와야 했습니다. 물론 역경과 주역의 방법은 중국의 것을 따라야 했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달은 이지함은 토정비결을 완성합니다. 우리의 삶을 읽는 주역이요, 역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통찰지대를 얻어야 하기에 우리의 지표는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창제한 훈민정음의 뜻과 같습니다. 아흥다흥드리 24절기, 문화명절 입법청원 ,신화를 찾는 사람들, 전통문화제1거리 선언의 얼게는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토정 이지함의 토정비결의 철학을 돌 배게 삼은 것입니다.
문화운동-시대담론
79년부터 시작한 여정은 또 하나의 관문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신념을 공유하는 방법입니다. 20년의 문화운동 현장에서 찾아낸 과제물을 「시대담론」으로 연결하는 프로세스입니다. 민주화, 산업화라는 줄기 속에 문화는 걸음마단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화정책개발시대를 공유할 연합의 설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포럼의 운영입니다. 그때쯤 인터넷 혁명의 서막이 올려지고 있었습니다. 디지털혁명의 넓은 바다에 표류하거나 좌표를 설정하여야 하는 운명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조금씩 진면모를 발휘할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디지털 문화강국으로 굳건히 서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민주화, 정치적 담론은 진보, 보수라는 첨예한 갈등구도를 잉태합니다. 문화의식의 오염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념의 충돌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서편제, 대장금, K-POP 문화콘텐츠는 오히려 현상으로 비추어집니다. 한류현상입니다. 한류현상-디지털혁명은 문화정책개발시대의 요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79년 북한산성 복원프로그램과 90년 인사동 차없는거리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품었던 참으로 보잘것없는 씨앗에 불과한 여정이 식민지, 6.25를 통하여 얻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플랫폼 철학임을 조금씩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문화철학」만이 우리의 시대담론을 향기롭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40여년의 긴 여정의 마침표입니다.
훌륭한 열매는 훌륭한 과정을 지킵니다. 또한 훌륭한 과정은 멋진 열매를 보장한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애국심에서 시작한 「문화운동」이 「문화철학」의 시대적 요구를 담을 열매에 도달하였습니다. 작은 씨앗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에 비추어 Partnership-MOU를 제안하는 데까지는 40여년의 긴 여정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Partnership-MOU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