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중구 소공동 세종대로에 위치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는 2018. 8. 8(수) ~ 2018. 8. 13(월)까지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이 열린다.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어느새 나는 나의 생의 한편에 섰다.
내 발끝만 바라보며 열심히 쥐고 온
모든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려 애쓰며….
위에서 영원할 것 같던 빛도 어느덧 기울어져 가고….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빛을 의지하며 오늘도 걷고 있다.
한석란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순간과 영원 글 강화산(화가, 버질아메리카 편집주간)

멈춰진 순간의 감흥으로 관객을 유도하려 고심하고 있는 화가 한석란은 잠시 머물다갈 인간의 삶을 빛과 연관하여 표현한다. 빛의 순간성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겉만 보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지나치는 시간에서 그 이면의 진정성을 찾아 나서는 방랑자의 사색을 즐긴다. 오랜 미국의 교육과 생활을 접하면서 결과와 표현의 과정 그리고 현재라는 순간의 이어짐이 시간의 존재와 멈춰진 공간이라는 두 접점을 붙잡고 추상적인 그림의 화면을 전개시키고 있다.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사유의 자유

2010년도 초반기의 작품은 빛의 번쩍임 즉 섬광의 순간을 담았는데, 많은 반복의 붓질과 바탕의 견고함 위에 움직임이라는 시간을 라인이나 날카로운 면으로 나타내 방향이나 에너지 그리고 속도를 표현하였다면 후반기는 바탕화면의 정성스러운 반복의 붓질은 여전하나 그 바탕이 기운의 흐름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감싸고 있다. 화면의 추상성도 구상으로 바뀌면서 우리들이 쉽게 바라보고 느끼는 들풀이나 나무 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법적모색은 시시각각변하는 작가의 마음의 표현이겠지만 그동안 모든 생명과 사물은 영원하지 않음을 전제로 작품의 기초를 세우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바탕화면은 그 무엇보다도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그 위에 빛을 넣었다는 점이다. 이는 빛을 하나의 생명체로 그리고 그 순간의 생명체가 올곧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문제에 천착하였다면 요즈음은 생명체의 탄생 이전의 우주의 기운적인 면을 화면 바탕으로 하여 흔히 우리가 눈길도 주지 않는 흔하디흔한 나무나 풀들을 표현한 것은 이제 어느 한 면에 치우치는 사유의 고정이 아니라 “그리는 손에서도 놓아버리는 마음”으로 화폭과 마주한다는 작가스스로의 말에서 사유의 자유와 비움의 경지에 다가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놓아 버려라

광릉국립수목원근처에는 봉선사라는 사찰이 있다. 크낙새와 국립수목원으로 널리 알려진 광릉에서 전나무 숲길 따라 남동쪽으로 1.5km쯤 내려가 오른쪽으로 300m 가량 들어간 곳이다. 봉선사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지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실과 중건을 7차례 했다.

봉선사 대웅전 현판은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 한글로 쓰여 있다. 모든 주련(柱聯)도 한글로 쓰여 있는데 이는 한국불교의 역경사업에 몰두하신 운허(耘虛: 1892~1980)스님의 교육과 애국의 징표이다. 이 봉선사가 몇 해 전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으면서 마당 앞 자연석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문구를 새겨 놓았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작업실과 가까운 봉선사를 산책하면서 꼭 보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한글 현판이요, 둘은 피우정(避雨亭), 피우정은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210-10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자신보다 남을 돌보던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선생을 위해 지인들이 모금하여 1964년 건립한 집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비나 피하라’는 뜻으로 피우정(避雨亭)이라 명명하였다. 이 피우정에서 유래한 안진경 서체의 봉선사 피우정 현판은 그 감동이 한결같다. 셋째는 주춧돌인데 증축하면서 없어졌다. 고즈넉한 큰법당옆에 자리한 주춧돌은 그 자태로도 현대 추상조각의 걸작이라 생각했었다. 이제 주춧돌을 대신해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방하착 이라는 문구인데 이 때문에 봉선사의 간략한 유래까지 곁들이게 되었다. 즉 “놓아 버려라”라는 뜻이다. 한석란의 풀과 나무줄기에서 그리고 공간구성의 기운생동적인 요소가 봉선사 돌에 세김한 방하착의 글귀로 들려오는 것은 이제야 비우는 화면구성과 마음이 닿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득하고 얽힌 무게감의 화면이 가볍게 놓이면서 화가 자신이 보여주려는 영원성과 순간성의 문제가 한 점에 있다는 것을 풀잎과 하늘을 통해 드러낸다.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순간에서 명상을 포착하는 것’이 한석란의 초기 화두였다. 이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의 상징적은유로 화폭에 드러나고 그림이라는 것이 순간의 삶 속에서 마음의 만족을 위한 이미지로 환원하려는 그래서 영속성을 득하려는 방법적 모색 이였다면 손을 내려놓음으로써 이미지에서 정신으로 이환되는 과정을 시간이라는 순간으로 재조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은 학문적인 탐구나 지적인 열망으로 소통되고 감동하지 않음은 화가들은 매순간 느끼는 점 일 것이다. 문득 깨달음이 미적인 감흥으로 되돌림 되는 과정과 그 느낌이 오감을 통해 총체적으로 드러날 때 진정 방하착(放下着)과 착득거(着得去)가 상통함을 느끼길 기대해본다. 끝으로 화가 자신의 작업노트로 끝맺음한다.

버질아메리카 초대전 '한석란'展

“시간 현상들에 대한 생각의 경험으로 조용히 거닐고 있는 길옆에 핀 풀숲들을 통해 그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아 돌아온 탕아 같은 심정으로 풀꽃의 의미를  읽는다.

아! 바람과 그 짧은 빛 사이에 최선을 다해 억척스럽게 피다 지는 풀꽃들…. 나의 시간도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게 열심히 살다 가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의미는 다 지니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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