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최윤영 기자] 광화문에 위치한 아트코리아방송 미디어센터에서는 2018714일 오후 소윤하 선생의 인터뷰 5'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편 토크쇼가 진행됐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일제 침략시기에 우리나라의 명산 곳곳에 우리나라의 생기를 차단하기 위해 심장에 꽂았다는 혈침(쇠말뚝)에 대한 이야기 5,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에 관한 건편에 대한 소윤하(민족정기선양위원회)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문총련 박동위원장이 아트코리아방송 리포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 내용은 소윤하 선생이 제공한 원본을 그대로 올린다.

經過報告書<2002>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에 관한 건

박힌곳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 동벽 위
제보자 : 김재규(울산동구문화원부원장)
제보일 : 199879
내 용 : 울주군 천전리 각석 동벽 위의 일제혈침 세 개가 박혔다.

1 차 탐사

2002110. 박재식, 신귀연씨 등과 김재규씨를 만나서 발견과정을 설명 듣고, 김재규씨의 길 안내가 잘못된 탓으로 어려운 난관을 경험한 후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이양우 관리인과 실랑이도 있었습니다. 혈침은 무슨 혈침인가. 옛날에 물고를 낼 때 박은 쇠말뚝인데, 쓸데없이 혈침이니 뭐니 캐 싸아!하고 현장 확인조차 거절하였습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2 차 탐사

2002117. 김영신, 오인학, 김봉대(울주군 문화공보실 직원), 박은경씨(울주군청 공보실 담당)등과 함께 관리인 이씨의 설명을 듣고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관리인이 주장하는 수로용으로 박았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황으로 보아서는 혈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느끼고, 2002117일 허가 신청서, 사업계획서 등을 울주군청에 접수했습니다. 그러나 2002125일 울산광역시에서 시지정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내라는 연락을 받고 2002126일 허가신청서를 다시 접수하였습니다.

3 차 탐사탐문

200226일 김영신씨와 함께 김재규 씨를 방문하여 제보내용을 재차 확인, 자신의 고향 이웃 노인으로부터 <일본 놈들이 각석 맞은 편 절벽에 혈침을 박았으니 찾아서 뽑아야 한다>고 했었다며 그 노인은 몇 년 전에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2002216일 울산광역시로부터 시지정문화재 현상 변경허가를 득하였습니다.

4 차 탐사탐문

2002218‘KBS울산방송국 출발! 토요아침제작팀과 김봉대씨(울주군청 문화공보실 직원)와 조돈만씨(작가)와 손진봉씨라는 현지 주민의 주장을 청취, 그들의 설명이 현장의 정황과는 너무 맞지 않으므로 잠정적으로 혈침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씨의 주장은 진실을 掩蔽하기 위한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2002226일부터 228일까지 안전장치 비계설치를 완료하고,

200231일 제 8331만세절 행사와 더불어 고유제를 모시고, 혈침제거 작업 공사를 착공하였습니다.

2002218‘KBS 출발! 토요아침제작팀과 울주군청문화공보실 직원 김봉대씨와 김영신씨 등과 함께 마지막 현장 탐사를 실시할 때, 주민 수명(數名)과 관리인 이 양우 씨, 주민 손 진봉 씨의 주장을 청취 하였습니다. 손 씨의 주장은 일제 때 (1940) 저위에(반고사 탑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 지금도 무너진 탑들이 흐트러져 있음) 산골짝에 보를 막아서 거기서부터 나무로 보를 짜서 반구대 쪽으로 물을 끌어 내려서 최경환의 논에 물을 댈 때 그 물길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 절벽에다 쇠말뚝을 박아서 썼지. 왜놈들이 혈침이라고 박지는 안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문제가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보를 ()막았다는 곳에 보를 막은 흔적이 전연 없고,

둘째, 그 위치가 보를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보를 막았다면 물을 절벽으로 끌어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보를 막았다는 골짜기가 협소하고 산자락의 높이가 높아서 산허리를 자르지 않고는 물길을 낼 수가 없으며, 산 능선을 잘랐다면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계곡이 모두 암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물길을 내려면 계곡의 절벽을 잘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거리가 2-300나 되고, 그렇게 수로가 왔다하더라도 쇠말뚝이 박힌 현 위치에 쇠말뚝을 박지 않아도 충분히(손 씨 주장대로라면) 물을 흘러 보낼 수 있는 현장의 환경입니다. 또 설혹 쇠말뚝을 꼭 박아야 했다면 그 수로가 통과되는 다음 절벽에도 쇠말뚝을 박았어야 반구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현재 발견된 3개의 쇠말뚝 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쇠말뚝이 박힌 위치 또한 일정한 것이 아닐뿐더러 세 개의 쇠말뚝 중 한 개는 바위 밑에 바짝 붙어서 박혔기 때문에 철사(鐵絲)나 그 무엇으로도 얽어 맬 공간이 없어 무엇을 묶어서 사용할 용도의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결국 손 씨는 그가 자작하여 꾸민 거짓이 아니면, 어떤 의 사주의 따라 일제 때 수로를 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혈침임을 엄폐키 위한 행위로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200234.

현장에서 2-300m 떨어진, 손 씨의 주장대로 보를 막았다는 곳에서 3대째 살고 있는 朴然洙(52)가 나타나 손 씨의 주장을 통렬하게 비판했습니다.

朴 然洙 氏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박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골짜기에는 보를 설치한 적도 없고, 보를 막을 수도 없는 곳이고 어릴 때 그런 사실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적도 없다.

둘째, 수로는 현재 통신용 電柱가 있는 곳에서 다릿발을 세워서 강을 건너 기도원 화장실 뒤쪽으로 물을 끌어서 아랫강을 건널 때도 역시 다릿발을 세워서 수로를 만들어 반구대 쪽으로 갔다. 현재 쇠말뚝 박힌 절벽하고는 전연 다른 곳이다.

셋째, 절벽에 박힌 쇠말뚝은 왜정 때 , 중리에 장사가 하나 나타나서 하루아침, 식전에 논에 보를 열 마지기, 스무 마지기를 쳐내는 것을 왜놈들이 보고, 저 앞산이 장군 설진 등이니, 그것의 혈을 자르고 맞은 편 절벽에다 쇠말뚝을 박아서 앞으로 이곳에는 장사가 못나오도록 했다는 소리를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컸다.

이런 사실은 이 동네 나이 좀 드신 분은 다 알고 있다. 현재 절벽에 쇠말뚝이 박힌 곳으로 수로를 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고 말도 안 된다. 수로가 그리로 갔다면 나의 부모님들이 왜 몰랐겠는가? 우리 아버님은 일제 때, 징용을 안 갈라고 이곳에 숨어 있으면서 요 밑에 있는 논을 그때 다 만들었는데 이곳에다 댐을 막았다는 소리를 전연 못 들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이상과 같이 손 씨의 주장과 박씨의 證言을 비교해 볼 때, 손 씨의 말은 신용하기 어려운 정황이고, 박씨의 證言은 정황도 설득력이 있고, 현재 기도원 뒤쪽에는 아직도 水路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장군 설진 등의 혈을 자른 흔적도 확인됨으로써 손씨는 僞作說을 퍼트린 결과가 됐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쇠말뚝을 뽑아서 두들겨보니 소리가 여느 곳의 혈침과 동일했으며, 뽑는 과정에서 백회를 사용하였음도 발견됐으며, 石質이 강한 것, 또한 穴口임이 立證되었습니다.

혈침은 박힌 부분이 31, 굵기 2.5, 전체 길이는 511, 401, 351개이고 부식된 정도를 보아서, 손 씨가 주장한 1940년 이전으로 추정이 됩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란 어렵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했고 아직도 이 땅위에 일제를 섬기려는 意識이 남아 있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거짓으로 진실을 掩蔽하고, 개인의 작은 이익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반성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탐사 과정에서 주민들의 주장으로 인하여 포기를 할까하고 주저하기도 했으나 이미 당국으로부터 허가도 받았고 주위의 여러분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오늘의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혈침제거 행사에 김봉대님(삼동면직원)告由祭祭需준비를 도왔으며 서태일님(대한알류미늄공업주식회사이사)祭酒 등 오찬준비를, 김영희여사(양산박주인)가 제상 진설뒷일 처리를, 이귀선 교수의 맺혔던 고를 풀고 양양한 希望있으라創作舞를 공연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배달의 조옥구, 박정학, 김종길, 김바우님 등과 知人 김영신 ,오정훈, 박재식, 신귀연님 등의 격려가 있었습니다.
모두의 뜻을 같이 함에 감격스러움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2002223일과 同年39KBS울산지방 방송국에서 위 탐사과정과 제거작업이 방영되었음을 밝힙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이곳의 혈침은 이제 모두 제거 및 원상 복구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 그 陰德이 참여하신 여러분과 이 지역으로부터 온 나라에까지 惠澤이 있을 것을 確信하고 祈願하면서 경과보고를 마칩니다.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단기 43353 16

민 족 정 기 선 양 위 원 회

위원장 소 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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