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스토리-5

우이천, 중랑천은 청계천과 아우라지를 이룬다. 마치 양수리의 아우라지요 아라리를 합창하는 하모니즘이다. 뚝섬의 은빛 모래톱은 켜켜이, 층층이 아라리요다. 잠실과 뚝섬 사이의 경관은 강의 이야기이지만 수도 서울의 별빛과도 같은 이야기를, 테제처럼 보듬고 있다. 잠실, 뚝섬, 압구정, 마포, 여의도에 이르는 한강변 스토리는 왜곡되어 있다. 콘크리트 문화에 도색되었을 뿐, 겸재의 한강-금강산도첩의 정수를 읽지 못한다. 성장통의 신음소리처럼 읽기에는 너무나도 아스라한 주제다. 오히려 밤섬을 테제삼아 환경 이념으로 읽으려는 몸짓은 생뚱맞다. 그저 푸념처럼 찾아온 자연회귀의 보고서처럼, 허공에 던지는 낙서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강은 그 차원보다 높은 가치에서 출발되어야 하고 차안의 세계를 온전히 삭혀야 한다. 피안의 동경주의는 헛된 몸부림만 요구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즐비하게 가로지르는 교각의 증표는 남북을 잇는 차안의 세계다. 피안의 화두는 너무도 조용히 흐르는 한강의 숨소리 아닐까.

한강 스토리-5

뚝섬 수상법당과 서양 유람선 흉내를 낸, 한강 유람선 레스토랑의 테제를 읽다보면 겸재의 금강-한강도첩의 암시가 투영된다. 삼각, 백악, 인왕, 목멱, 낙산, 도봉, 관악, 수리, 불암, 용마, 용문, 초안산에 이르는 물결이 아우라지, 아라리요를 이루고 있는, 조용함을 되묻게 된다. 일만 이천 봉의 금강, 태백, 오대산의 정령들마저 한강의 물빛 속에 고유하리라는 충만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365, 500여명의 생명이 몸을 투신하고 있다. 생의 절망 속에 찾는 선택지로 한강을 맞이한다. 뚝섬의 수상법당 천도제는 온전히 이 아픔을 치유하는 성소다. 세종대왕의 형님 약령대군의 수륙천도제에서 씨앗을 품은 법당이다. 태조 이성계의 진관사 수륙제의 발로다. 겸재의 금강-한강도첩의 정신성에는 제1과제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동양 제일의 풍광을 자랑하는 한강의 격조다.

어찌되었든 서사시를 다시 써내려갈 이유가 있음이다. 한강의 서사시는 중랑천, 우이천, 청계천의 음미를 도돌이표처럼 잉태시켜야 온당해 보인다. 실개천의 복권이다. 한강절경의 풍수를 콘크리트 혁명으로 치장하거나 환경이념으로 도색시키는 피안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철저한 문명, 문화적 사유의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시대의식의 온전함을 떠안는 넓이다. 그것이 곧 뚝섬 법당의 수륙제요, 진관사 수륙제, 영산제의 발흥이다. 서사의 출발점이다.

우리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겸재의 인왕, 북악, 목멱, 남산의 풍광 또한 실경산수의 서사를 남겼다. 청계천의 아우라지, 아라리요는 청계천이다. 치열한 문명이데올로기의 부침이자 성찰지대다. , , , 북의 고유공간을 테제로 형상화한 실험체가 난무해 보인다. 고유의 성역체다. 이를테면 불교, 유교, 도교, 산천대천사상의 덩어리다. 고려건국, 조선건국의 정치모형을 걸러내고 사금처럼 온전한 빛의 덩어리는 무엇일까. 팔관회, 연등회-수륙제, 영산제, 석천대제 등에서 음미함이 마땅해 보인다. 한강이야기를 읽는 교양독서의 방법이다. 청계천 사유의 틀거리가 된다.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 종각, , 경국대전, 즉 조선건국의 유교이념은 500년의 서사를 읊조렸다. 500년 서사의 토대는 인왕, 진관, 승가, 불암, 삼막사의 비보 가람 위에 온전함을 유지했다. 성균관-의정부-종묘사직의 사유 틀거리만으로는 우리 모두의 존재를 명제할 수 없었다. 목멱신사-백악신사 즉, 고려건국의 문명사유의 정수는 성성한 별빛처럼 옹골참이 분명해 보인다. 고려-조선을 연결하는 태조 이성계의 본유는 무엇일까. 라는 지층세계를 음미하는 것은 온당해 보인다. 백악신사와 목멱신사의 존재가 이를 특징한다. 고려-조선의 아우라지, 아라리요의 문명 카테고리다. 유교이념, 사대부, 선비문화로 국한되어진 수도 서울의 훼절은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며 극심해진다. 일본의 한국 얼 말살 프로그램이 치명적이다. 우리 모두는 근, 현대화 이념 속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를 지탱할 여유 공간이 없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영운골, 용골, 삼선골, 남산골, 뚝섬골, 얼개로 청계천의 아스라함을 받아 들였다. 버거운 행로였다.

오히려 삼선골, 청계천, 홍제천, 마포천의 아우라지, 아라리요에 대한 음미를 하다가 할아버지 천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수도 서울의 빛을 갈무리하게 되었다. 영운골, 용골, 삼선골, 남산골의 정수는 무엇으로부터 잉태될까. 너무도 조용한 한강의 드라마를 시작할 수 있을까. 용골, 영운골, 삼선골, 남산골, 뚝섬 골의 테제다.

참조: 용골, 영운골, 삼선골, 남산골, 뚝섬골 - 문화담론 5

영운곡 담론

, 영운곡이여, 모습을 드러내소서!
1. 한국얼 말살

일제강점기 한국얼 말살정책의 효과는 2017년 오늘에야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사, 외교, 일반영역의 징후는 명쾌하다. 주지하다시피, 일본패망과 대한민국 해방의 궤적이 의미하듯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 범주는 거뜬히 자주권을 회복했다. 물론 지고한 노력과 민족 얼의 열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오늘,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결과물은 무엇일까! 우리의 해방공간 여정은 경제개발시대, 사회개발시대 즉, 세계 10대 선진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담론과 철학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정책개발시대의 도래를 명제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전제한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화혼의 오명이다.

독도, 위안부 명제는 쉽고 명확해 보인다. 침략국의 오만과 만행이 단죄 받지 않고 있기에 의제는 2017년 오늘까지도 진행된다. 홀로 아리랑의 독도요, 소녀상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우리는 201791일 오늘,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치유와 함의를 담은 창조의 철학을 선언한다.

한국얼 말살정책의 대응은 대동아경영을 입안한 거대담론의 구성과 텍스트를 명제함으로서 방향성을 읽게 된다. 또한 경외적인 콤플렉스를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동화족, 왜족을 일본인으로 재탄생시키며 부합시켜야했던 의도적 역사왜곡의 성격을 규명한다. , , 일간에 지속되어야할 경쟁협력의 성격을 읽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명치유신의 정의와 일본인 속에 재탄생시키려는 천황의 자손을 대동아공영 지배이데올로기에 융합시키는 문화줄기세포를 단백질 화학기호로 분별해본다. 아지노모도의 미각처럼 고농도 첨예한 문화 분자식의 생산과 전파경로를 추적하는 우리 스스로의 계몽이요, 자각이다.

이러한 논제와 규명과정을 읽다보면 치열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 깊이와 양에 절망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왜곡 장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의 오마주 to Korea 갈라쇼를 감상하며 야릇한 도취감에 빠진다. 이 암담한 왜곡 장에 빠질지라도 우리의 후손과 후학들이 명쾌하게 이 버거운 논쟁을 매듭지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 스스로의 치유과정이 요구되었음을 전제한다.

돌이켜보면 중앙청, 조선총독부 본청건물을 철거해야 하는지, 아니면 존치시켜야 하는지 사회여론에 결정을 물어본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의 광화문 자리요, 경복궁 복원프로그램이 시작점을 맞이할 때였다. 한 논쟁이 이처럼 사유방향을 전환하게 했다. 중앙청철거의 의제가 아니라 경복궁 복원관점에서 살펴보자는 시각이다. 여론은 5149, 팽팽한 줄달음의 균형을 허무는 사유였다. 오늘날 경복궁, 광화문광장, 세종로광장, 청계천광장, 서울광장, 숭례문광장의 얼개를 통찰하는 원형질이 눈을 뜨게 된다. 사실 이 참담한 과정과 여론의 왜곡 장은 우리의 삶속에 왕성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치 독감바이러스의 생식번성의 알고리즘처럼 고요하고 섬세하여 개념화하기 조차 어려운 체계다.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교본은 조선얼 말살정책이다. 말살정책의 본질은 단절과 분열이다. 조선이전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게 한다. 또한 스스로의 존재를 계층, 지역, 신분, 연령층으로 분화, 반목시킨다. 전형적인 18C~19C 제국주의 분리전략이다. 한편으론 천손동화책도 유화적 소프트웨어로 작동시켰다. 얼리고, 뺨때리는 어린아이 달래기요, 가지고 놀기다. 혼과 얼을 동시에 윤색시켰다.

우리는 이러한 난맥상의 모든 범주를 40여 년간 화두처럼 침하시키며 관찰하였다. 이러한 논제의 개념은 논고, 논문의 형식으로는 정립되기 어렵다. 단지 문화적이며 단선적인 성과물에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얼 말살정책의 백신프로그램의 정의를 조심스럽게 정립하려고 하였다. 물론 201791일 오늘, 정의하는 명제, 문화라는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삶이었기에 그 흔적의 퇴적층을 갈파하기엔 버겁다. 타자와 타자간의 간극처럼 차안과 피안의 세계만큼이나 스스로의 그림자는 어두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성처럼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 보다 어둡지 않다.’는 직언을 돌이켜 본다.

열등감과 치기에 가득 찬 민족이 일본 족이다. 일본이라는 국가탄생의 기초는 치기로 가득한 열등감의 희화화에서 탄탄한 배경을 알 수 있다. ‘국화의 칼의 보고서는 유익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오해를 담고 있다. ‘국화와 칼속에는 한반도 문화제국 여명의 줄기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맥아더장군 또는 미국의 인식 한계를 분별한다. 일본의 대동아경영, 명치유신, 팔굉일우의 식민지배 이념의 첫 시발점은 우리 대한민국의 침략이다. 당연히 온갖 전략, 정책, 전술, 지고한 지혜의 산물을 남겼음이 자명하다.

만주사변과 괴뢰만주국은 부산에서 신의주를 관통하는 철도개설과 궤를 같이 하는 프로젝트다. 병참의 이유이지만 실로 방대한 준비와 열정이 담겨져 있다. 이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명치유신 지도자들의 철학적 테제가 무엇이었을까! 오늘 201791일 패전국 일본의 융성과 궤를 같이하는 미션이 또렷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본문화, 일본문화제국의 얼과 혼은 원색되었을 뿐이다.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스스로의 고토회복론 즉, 임나일본부를 되찾겠다는 도식적 운명을 일본민족 얼과 혼에 살아 번식시켰다.

수도 서울의 모습 속에 중앙청, 시청, 한국은행, 서울역, 1한강교 모두가 일제가 남긴 걸작이다. 유럽문명과 일본국의 혼을 담은 염력체이다. , 그들의 상징 기념물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무관해 보인다. 역사는 이미 퇴적층 저 밑에서 존재하고 융합하는 5차원의 카르텔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의 백미는 백만 수도 서울 프로그램 속에 청계천 복계프로그램이 존재했다. 청계천을 복개한 백만 주거 한양 도시를 식민지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70년대 경제개발정책의 시대, 우리는 무심코 청계천 복계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일본식민지 주술 덫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하튼 우리는 청계천복원을 결정했다. 수도 서울의 개천이 다시 우리 앞에 마주하게 된다. 그 정황의 풍경은 어눌했던 청계천 판자촌으로 곱씹으려한다. 덩그러니 콘크리트 오브제는 구석 조형물로 남겨두었다. 다슬기 모습처럼 오롯함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러면 이 전제의 명제를 돌이켜 본다.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효과는 어떻게 왕성한 바이러스를 작동시키는가! 라는 엄혹한 직시다.

용골 담론

, 용골이여

한국불교의 선 맥은 도도한 별빛과도 같아서, 찬란함이 내려앉아 팔만대장경판으로 환원하였다. 너툼이 여여하였기에 불국사가람의 풍경소리와 함께 화엄사 선방의 아궁이 불이 도도하다. 무릇 묘향산 보현사의 아스라함을 빗대어, 일만 이천 봉우리의 산천의 불국토임을 선언하였으니 상악당, 중악당, 하악당의 ____은 익히 금수강산의 마침표와 같다. 나라의 기둥이 세워지고 서까래가 올려질 때에 도선국사의 비보사찰만큼은 아스라하게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늘날 돌이켜 아호세기기를, 나옹, 무학, 지공 삼학국사의 버금은 한국불교의 비보 승찰이 여정임을 밝힌다.

, , 일의 요요한 승찰의 기운은 동양문명의 암흑기를 관통하고 서서히 제 모습을 지키어 내는 것이어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비추어 살펴보지 않을 수 있으려나. 버금은 文明의 다툼이요, 文北의 너툼이요 정신문명의 고찰이다. 우리는 다시한 번 무학대사의 천입기도 서원을 통하여 완성되어진 수도서울의 녹녹한 지층을 향하여 등불을 올리려한다. , , 일 정신문명의 고찰은 곧 오늘 우리의 중대한 과제중 하나이기에 지층의 울림을 통하여 우리의 제 과제를 풀어본다.

우리는 고려 말 겪어야 했던 부림의 고난을 어떻게 갈무리하였을까! 달무리 아우라 만큼이나 아련한 글기의 빛은 살아 숨 쉬고 있었을까! 다시 말하자면 인류역사상 최대 최고의 군대와 주권을 낳고 겨뤄야 했던 몽골 침략 앞에 우리는 어떤 각오로 임하였나! 호국불교의 전신은 이처럼 가혹한 시련 앞에서 타오르는 법. 고려 팔만대장경경판의 성업은 몽고침략에 직면한 아우라였다. 강화도에서 각자된 고려팔만대장경판은 민초들의 의하여 고려해인사 연등 불사를 거행한다. 해인의 연등이요!

()() (고려의 영혼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격동의 진검이 오늘 직면한 한, , 일 문화충돌, 융합과제로 보여진다. 고려의 호국불교정신, 숭엄한 승녀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이를테면 천일기도를 결자하려는 무학대사의 심금이다. 오늘, 이러한 질문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후삼국의 회오리 복판 속에 홀연히 조선국사의 비보호를 일컫다보면 왕건의 십훈조와 정도전의 건국대전의 여여한 통찰을 살펴보게 된다.

시공을 뛰어넘는 아유의 ___이라 할지라도 오늘 무학대사의 천일기도, 호국도량, 인왕사를 살피는 마음가짐은 이처럼 호흡이 멎고 현란할 뿐이다. 해방공간은 치열하였어도 유업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극명한 사실 즉, 입보대국주의 우리 얼 말살정책의 지층을 온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현대화를 거치며 퇴적층처럼 사라진 일제 강점기 공간은 이제 곧 현대 차에 덧대어 저층 저 밑에 도사리고 있다. 현명한 직시만이 이 올무의 존재를 분별할 수 있다. 대한민국 인왕산 인왕사의 존유는 고려왕선의 심훈조, 태조 이성계의 경국대전의 정식적 무게를 관통하여야한다. 또한 일제 탈란 계략, 곧 현대화의 올무를 현찰함이 온당해 보인다.

, , 일의 융합과 존재성은 인류문명역사자체다. 생존, 번영, 공유와 대결의 장에서 펼쳐지는 진검승부다. 그 진검의 존재가 유, , , 도교의 함축성을 포괄한다. 격과 내재율로 읽는다면 단연코 불교문명 카르텔이 우선적이라 볼 수 있다. 우선 건축미에서 빚어진 내용, 불경에서 파생된 학문적 얼게, 의상과 색채에서 빚어진 예술적 독창세계는 극적인 우주관, 인류관, 생활관 철학기반을 응변한다. 유교국가와 불교국가의 치열한 대칭점을 수렴한 존재가 우리다.

오늘날 수도서울의 밑뿌리를 그토록 지우려고 했던 일제 강점기의 의지 또는 근. 현대사를 통하여 치부되었던 유, , , 도교의 존재는 성장 통 그 자체다. 우리를 포함한 그 모든 인류가 직시하는 이념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 인왕산 인왕사 천일기도 무학대사의 신화를 고유, 음미, 만남, 얼게를 기다린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는가.’라는 영화한편이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동편제의 굵고 힘 있는 아주까리가 아니라 아련미의 애잔함을 담은 남동의 서편제가 또한 우리마당에 잦아들었다. 또는 대장금 가락만큼은 독창적이어서 소재, 연결, 빛깔, 맛깔까지 아련함으로 작품성을 완결하였더니 온 인류가 공유한다. 유식세계의 차원에서는 하나의 현상이다. 대한민국 불교 선 맥의 등뼈를 살펴야 할 이유다. , 이러한 중좌의 에너지가 소요스러운가를 직관하는 통로다.

홍위병의 난동은 재앙이다. 스스로가 모멸감에 침몰되었다. 21C 중국문명을 돌이켜보더라도 성장 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좀처럼 설득되어지지 않는 현상, 구태여 버금는 다면 스탈린 전체주의 문화단면과 비교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위병난동은 질환 적이다. 자기파멸이다. 명치의 대의명분은 막부의 시대를 단정하고 이른바 천환지배이념을 설정하였다. 전체주의 패턴이 엉성하게 읽혀진다. 홍위병의 난동이나 천환현상이나 스탈린 모습은 분명해 보인다. 질병이다. 악성종양 덩어리이기에 약물치료로는 한계가 있다. 집도를 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인왕산 인왕사 가람의 응변은 서슬 퍼런 교훈을 발견한다. 홍위병난동, 스탈린, 천황 우상주의와 비견할 테제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화 화두다. 좀처럼 헤아리기조차 까마득한 우리존재의 행위는 600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오른다. 조선개국의 정황이다.

브란트총리가 무릎을 조아리며 유대인학살에 용서를 구하며 민족, 문화, 문명을 대신하여 행한 퍼포먼스와 같은 승화 점은 우리 곁에 좀처럼 잦아들지 않기에 홍위병증후군은 계속된다. 600년 전 과연 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었나! 오늘 우리 모두를 보듬고 지탱하고 있는 이층의 낱낱이자 본원세계다. 이른바 탁란 계락으로 원형질을 잃고 본다면 우리의 내성은 오히려 강건해 보인다. 이지러진 처마의 모습처럼 아스라할지언정 대한불교 선 맥의 풍경은 잔잔한 풍경소리는 아득할 뿐이다. 선 맥의 뼈대는 전혀 다른 범주에서 흐르는 물결이자 강줄기다.

쓰나미가 몰려올 때쯤 진공상태가 유지된다. 고요와 수평평원이다. 오히려 수평성은 평화롭다. 마치 태풍 눈 중앙에 유지되는 고요다. 600년의 광풍은 이와 흡사해 보인다. 나비의 날개 짓이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오듯 부연의 지층처럼 사라지고 춤을 추는 연기행동 원인을 오히려 카오스라 일컫듯 우리 모두는 중폭의 중심에 서있다. 다만, 지탱되어온, 지탱되어진 뼈대에 대한 관점 정검을 위하여 시작했다. 문장의 귀재였다, 일컫는 최남선의 3.1독립선언문의 구절에는 고해와 나약함을 엿듣는 듯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사의 부침은 오히려 고려 말 몽고침략에 맞서 삼별초군의 정의로운 깃발을 떠올린다. 이러한 지평의 넋이 우리 내재율처럼 흐르고 있다.

가끔, 또는 지극히 협소한 공간에서 치닫다가 개신교복음주의 새벽마당을 읽어본다면 데자뷰를 직면하게 된다. 파동처럼 분절된 [종교적 감수성]의 잉여성이다. 차고도 넘치는 한문화, 백의민족의 생명력이다. 대종교, 증산교도 둘 사이회 실타래가 꾸려져 꽃 무늬결 잡아내듯 아득한 소요는 한국불교정신성의 도도한 범람이자 성격대다. 여하튼 600여 년 전 극심한 변혁기의 명분은 공자가라사대-라고 시작된 명분이요, 염치요, 분별력의 세계다. 건국의 세력은 타도고려불교요 대륙문화에 대한 환멸이었다. 오히려 중화문화권 편재를 주창하는 관점이다. 위화도 회군과 속국치세론은 위험성이 사라진 나라다. 나라이름마저 중국에 읍소하고 받아낼 지경이니 이들의 사고는 꿰뚫어 볼 이유다. 굴기의 대척점에 서야했던 한국불교의 선 맥은 어찌되었던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설파하려면 원효, 의상대사의 앙상블을 늘 떠올렸다. , 양의 보합만큼이나 절분한 법맥 탑은 수려하다. 신라불교 선 맥의 절정을 이루지만,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대척점을 뜬금없이 비유하다보면 불교, 유교의 성지가 구별점을 모호하게 하는 이유가 생긴다.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층의 넓이다. 고려의 도선국사가 태조 왕건을 메토하며 이룩한 숙성성은 유효해 보인다. 훈효 십훈조, 6조의 미학이다. 서양국가토세의 진화요소를 읽다보면 성문법의 분수령이 입헌 군주제도 또는 공화정의 토대로 진화해온다. 불교, 유교의 정신적 둘레 속에 꽃핀 문화다. 훈효, 6조의 얼게는 연등회, 팔관회로 함축된다. 상지기로는 단국이자 목멱대왕이요, 금강반야바라밀의 연등보살을 일컫고 있다. 석가모니수기의 파노라마요, 고조선의 얼게를 삼고 심어냈던 고구려의 정신 목멱대왕의 수기다.

600년 전의 개국정신의 마당은 어머니 품안에서 이루는 잉태의 그것과 같다. 최영-이성계, 정도전-정몽주 사이에 목은 선생과 무학대사의 궤적은 도도한 조선건국의 전신적 깊이와 난맥상을 쌓아가는 첨예한 성격규명이다. 그중화의 증표가 600년전 서울설계도다. , 정신문명의 극치를 응변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불교의 선 맥은 부침을 예비하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마치 예수그리스도의 이스라엘입성과 십자가형이다.

느티나무 범종소리는 은은했다. 강석주 스님의 칠보사범종이다. 600년전의 웅지샘터를 읽으려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 삼청동 영운곡 골짜기와 맷돌바위 신화를 읽을 수 없으면 단 한 줄도 섭렵할 수 없다. 일제 한국불교말살의 일환으로 느닷없이 삼청전자리에 일본불교암자를 세운다. 이 기점으로부터 소급하여 600년전의 우리를 읽고 다신 지평의 지층을 삼청전물길처럼 (, 영운곡) 감흥하며 서울을 읽어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선학원의 치열한 조계종원목심기는 우리의 부름켜다. 일제감정이 경허 스님의 응태가 심어지는 몸짓이자. 한국불교선맥의 응어리다. 그 범종소리에 아우라처럼 존유한 야석 박치선 선사의 행로는 안행 그 자체였다. 이른바 기천석 자욱의 세련된 연마의 경지를 제시했다. (),(),() 극명하게 유교, 불교, 도교, 천제를 일갈하며 함축했다. 600년전의 서울이다. 이미 증좌는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지경에서 수도 서울 대한민국 볼교 선 맥은 우화하고 있다. 오늘 강석주 스님, 인왕스님, 일당스님의 여여함을 논하면, 우리가 해야할 체제를 논한다. 체제의 이유는 연경에서 출발한다. 시공초월, 시대연결, 사유공간의 함축적 가치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유라카]라고 일갈한 사유자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명량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하투르스타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절절함의 상징성은 이른바 동양문명 얼게의 화수처럼 통용되는 기호다. ()은 죽었다, 라는 전제는 프로이드적 자아분열과 초자아의 정립을 완성하는 준비운동과 같다. 우리는 분명하고도 명백한 유희의 잔치를 읽고 있다. 변증법의 중좌의 정반합의 유희 속에 치명하고도 이질적인 정의 즉 유물사관의 테제는 궁극의 정의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미숙함, 순수함의 고독이다, 라고 일갈해본다.

가끔씩 선방의 수행자가 세속의 만행 따위를 일컬어 커피 향 마주하며 읊조리는 니체의 숲은 결코 빛의 어둡고 질퍽한 만찬의 우주 속에 티끌처럼 빛날지언정, 소망스러운 우주의 숨결에는 미치지 아니하였다. 라고 귀품하고 싶지만 어지 [이상]-[날개]짓으로 탁화하고만 [의지의 세계로부터 표상]의 고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치 600여 년 전의 조선 개국파들이 안고 있었던 개혁과 지성의 지평을 [유물사관적 한계]- [염치와 관점]으로 뭉퉁거려서 유교적 행위 관형 속에 갇히고 말았다. 전우주의 행각이 음양오행 전체에 갇혀버린 직관처럼 유물사관적 전제는 진보거나, 우원한 합리적 조출이라는 명백함을 주장하게 된다. 거침없는 이 개혁의 낱낱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현상적 현실세계의 이념토대다. [()은 죽었다.], [불교의 이념은 사라져야 한다.] 라든가 [호위병 병정놀이]의 파고가 지독히 미세먼지를 물고 온다.

우리는 극히 개인적인 문학도의 관찰자로써 살펴본 이상의 [날개]-[오감도]의 난해시가 궁극의 니체증후군의 얼게와 만나고 있다는 방향성을 읽게 되었다. 마치 원효, 의상의 화엄법맥의 궁극은 시대적 모더니즘의 열정이자 진화의 탑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대한민국 인왕산, 인왕산, 용골의 솔밭은 이처럼 무수히 쌓인 내적진통을 털고서야 시작해 봄즉 하다. 마치 서릿발처럼 쌓인 600년의 농해를 마주하고서야 마땅히 서원해야 할 명제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벽암록은 택리지의 낱낱을 헤아리고도 실연의 삼국유사의 얼게를 완연히 소화하기에는 독립 자극의 성격을 넘지 못하였다. 동학 천도교 또는 증산도에 이르고 있는 강줄기의 현상은 민족얼 차원에서의 자산이자 정체성일 것이다. 숱한 번민을 관통하고서야 우리 선조의 결을 마주하는 마음자락이다. 성소피아 성당의 융합과 질곡의 파고는 비잔틴 문명의 파고로부터 르네상스의 정신까지 일관되게 연결시키고 있다. 오히려 고산자 김정호 선사의 투철한 절박함, 토정 이지함 선사의 고결함으로부터 모악산 금산 미륵불 서원을 읽다보면 인왕산 인왕사의 응태는 극히 아련할 뿐이다.

한국 불교의 선맥은 도도한 별빛과도 같아서 찬란함이 내려앉아 팔만 대장경판으로 환원하였다. 너툼이 여여하였기에 불국사가광의 풍경소리와 함께 화엄사 선방의 아궁이 불이 도도하다. 무릇 묘향산 보현사의 아스라함을 빗대어 일만 이천 봉우리의 금강산천의 불 국토임을 선언하였으니 황룡사, 미륵사, 사라진 탑의 빛을 쫓는 인왕산 인왕사, 호국불국토 사상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성계는 어찌하여 왕사 국당을 세웠는가! 인왕사 금당을 중심으로 삼각산, 숭가사, 진관사, 불암산-불암사, 관악산-삼막사을 세워 내원당 법회를 호국금강바라밀경을 법주로 세워 무학대사에게 주관케 하였다. 마치 성리학의 혁명 세력 즉, 정도전의 의정부 성균관을 원형으로 하는 숭례, 흥인, 숙정, 돈의, 종각의 상징기호를 인의예지용으로 설계한 것과 같다. 내밀한 것인가 도도한 법맥일 뿐인가! 이성계는 고려의 충신이자 신하다. 그러기에 훈요6조의 팔관회, 연등회의 온전한 법맥을 오롯하게 내재된 것을 살핀다. 이러하였음이 확인된다.

월탄 박종화, 벽촌 홍명희, 한국인의 귀속, 이규태, 이병주의 담초 속에 꽃피는 조선 얼의 미학은 시대 유물로 사라졌다. 다만, 임꺽정, 용의 눈물, 박경리의 토지나 임권택의 서편제 얼게들은 드문드문 호사가들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우리 얼, 얼게가 되었다. 치열함은 그런 넋두리가 아닐 것이다. 태백산맥에서 시작되어진 노동, 사상문학의 지평은 진보라는 명제 위에 시대사조의 주제어가 되어버렸으니 아랫방 선 맥의 맛은 오히려 아스라하겠지만 하여야 할 명제는 오히려 머금을 뿐이다. , 한국 불교의 선맥의 도도한 춤사위가 요구되는가! 또는 인왕산 자락, 대한불교 인왕종 선맥의 선엄은 이처럼 장대한 서설 잡변이 요구되는가! 말문을 열기에 숨 턱 높이만큼 이지러지고 여밀고 마는가! 오히려 멍에처럼 잦아들고 있지만 경복궁 근정전 뜨락에서 인왕산 자락 솔밭, 화강암 소요를 너투다 보면 왠지 저것이 산이요, 산 자락이라 할까! 우리 선조의 얼결의 품새 앞에 용기를 다시 세기고 말 뿐이다.

이성계의 석가래 꿈 해몽 덕분에 왕에 등극하게 되었다는 무학대사와의 인연은 어느 덧 조선 수도 궁터에 설화로 자리 잡는다. 미천한 집안 족보의 속아리를 하던 이성계의 일성 이제 근심을 놓았으니 이른바 망우리 이야기다. 조상의 미망함을 풍수지복에 의존했던 이유다. 여하튼 이성계는 삼청전에서 최종적으로 서울 천도를 읊하고 결행하였다. 목멱대왕, 삼청전, 소격소, 국사당, 인왕사의 기조는 의정부, 성균관 대칭적 관계 설정을 완성한다. 이 관계 설정을 조직적이고도 은밀하게 말살 획책한 집단이 일제다. 탁란의 계략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늪이다. 망각이자 질병이다. 치료제는 없다. 우리 모두 성찰만이 답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함 법문의 중심 사상 밭이다. 깨달으신 바 사바세계를 위하여 사십여 성상을 설하신 법문이다. 성법행간의 중심 철학으로 삼는다. 반야심경으로 함축되어 널리 설교된바 석가모니 수니 연등보살의 실제가 아스라하게 담겨져 있다. 전효성왕 연등보살 석가모니의 장엄법문 얼게는 신묘하다. 우리는 사람 자연 또는 시대의 염원 속에서도 수기를 받고 세우는 존재에 대하여 사뭇 돌이켜본다. 인왕산 인왕사의 수기다. 북한산성 복원에 투신한지 40여년전이고 인사동 문자거리에 투신한지 30여년전이요, 우물 복원에 투신한지 20여년의 얼게가 완성되었다. 수기라는 존재에 대하여 어슴푸레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준비는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연등보살제 받은 수기의 성성함이다.

수기는 세례요한이 행한 주 그리스도의 마중을 하늘, , 인간에게 알리고 표식 하는 일이다. 종교적 해석력의 깊이를 읽는 창문과도 같다.

인왕산 인왕사 수기에 대한 관점은 여래종정, 인왕스님의 수행 법찰을 살펴보면 만날 수 있는 샘물이다.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용골, 용골샘을 세어 산의 온기 정령을 다스려야함은 유언으로 남기셨다. 인왕스님이 법화집과 오셔서 수기의 현묘함을 보이시게 된다. 또한 낙산의 삼선골, 일당 스님의 낱낱 또한 해방공간 한국불교의 정황을 읽는 아득함을 같게 된다.

아 영운곡, 용골이여, 삼선골, 남산골, 한강골의 여여한 부재들이 수기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음은 조선의 마지막 스님이라는 화두에서 일갈된다.

야석 박희선님의 해방공간, 투철함으로 엮어져있다. 식민사관, 사상쟁탈전 또는 허수아비 홍위병의 틈바구니에서 사유를 지탱하기란 여하한 내재율이 없이는 생각을 숨결에 올려놓을 수 없다. 이러함은 오히려 우리민족이 직면한 모든 체계에서 시작되고 갈무리된다. 야석 박희선 강석주스님과의 각별한 만남은 해방 공간 속의 민족 문화 기초 석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 하는 심오한 결단이다. 선학원 호서문학의 존재는 전혀 다른 맥락을 공유한다. 맥락의 흐름은 오늘 우리 모두의 정체성에서 발현된다. 시대의 발현이다. 오늘 지탱되어진 21세기 문화사상의 석가래로 이해하면 된다. 빙산의 일각처럼 무수히 흐르고 있는 진면목의 무게다.

수기의 연줄과 관조는 이러한 사유의 강을 헤아리고 서야 맞이하는 창문이다. 여래종 종정, 인왕사 스님의 유언이자 말씀은 인왕사 자락의 용골에서 마무리된다. 일주문 옆 자락에 흐르는 용골의 생명 소리가 가득하여야 한다. 용골의 환원은 인왕산 자락 솔밭의 기운을 되살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인왕산 수기를 받은 수도승으로서 이 곳에 비보 움터 즉, 샘터를 모이게 하여야 한다. 인왕산 인왕사 가람 터의 여의주를 웅비하는 유언이다.

한국불교 선맥의 아스라한 부침이 증표이자 우리 후학들이 걸어야할 조그마한 나침판 격이기를 소망한다. 아 용골이여.

삼선 골 담론

삼선 골

삼청동의 명제는 삼청공원이거나 청와대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수반의 처소요 공간이기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수도 서울 공간정원의 완결판이라 할 삼청공원의 뿌리는 일제 황실정원으로 꾸려진 것이어서 그 품격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청동을 명제함에 주저하게 됨은 계층 간의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의 마음결에는 왠지 동떨어진 계급의식이 도사린다. 삼청동의 명제는 운용골, 운용천이어야 함이 마땅해 보인다. 21C 오늘날 최고위 계급서열은 문화DNA이기에 그렇다. 문화DNA의 명령어는 문화의 순도이자 고등지능을 암시한다. 숱한 생존지도에서 우두머리에 서지 않는다면 문화전쟁의 도가니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지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개념 할 단계에 진입했을 때 직면한 과제가 운용천, 영운곡의 얼게다. , 시대의 화두로 잡으면 된다. 정립하자면, 개념 단계다. 백악산-삼청천-영운골, 인왕산-용골, 남산-남산골, 한강-뚝섬 골, 낙산-삼선 골. 이들의 개념 정의는 오히려 치유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낙산의 삼선 골은 문화잡설, 이를테면 나의 집필완성의 옹달샘 격이다. 초롱한 산골을 지키는 산 결이다.

영운골, 용골, 남산골, 뚝섬골, 그리고 낙산의 삼선골 마무리까지 애타는 갈증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십이 년의 단주기간의 답을 찾고, 매듭지으려는 산고와 같다. 집필 통증은 누구나가 마주하는 것처럼 헛기침이요, 열병이고, 난산과정과 같았다. 뚝섬 골 원고를 택시에 놓고 잃어버린 후 다시 찾는 과정까지 우울증까지 겹쳤다. 늘 바라봄처럼 낙산 언저리 나무전보산대가 아련히 젖어오기에 삭풍 같은 지점도 은유해야 했음은 당연했다.

과연 낙산의 삼선 골은 어떠한 지리인가. 설정의 무게다. 삼각산자락의 허리춤을 휘돌아 내리는 빗줄기처럼 삼선 골 지류는 중랑천을 흐르고 있거니와 뚝섬 골 원형을 심오하게 꾸리고 있다. 사실, 세검정 물길이 인왕 준령과 안산계곡을 틈으로 해서 마포나루로 지류를 삼고 있다고는 인지하고 있지 않다. 홍제천을 보며 할아버지 지류라는 영감은 삼선 골에서 얻게 되었음이다. 마포-뚝섬 아우라의 모형은 물론 청계천 원형을 살피면서다. 물론 낙산의 정수는 성균관 자락, 대학로를 흐르는 지류가 있다. 그럼에도 낙산-삼선천-삼선골의 자리매김은, 용의 눈물이라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 현대사를 짚다보면 달동네라는 성성한 이미지에 머물게 된다. 식민, 분단, 전쟁, 이 모든 공간 집적체가 꿈틀거리는 달동네 명제는 나의 집필 공간 무게보다도 성성한 것이리라. 흥인지문의 지()가 보()이며, 눈물이요, 저자거리의 치열함을 너투는 직관의 상징이다. 수도서울이 존재하는 한, 거북이, 호랑이, , 봉황, 은하수가 꿈결처럼 지탱한다. 낙산봉우리는 달동네가 자리 잡아 삶의 무게만큼 갉아 먹었다. 솜사탕이나 굴뚝 연기처럼 용의 눈물처럼 사라졌다.

고려의 건국은 문화를 강의 지류로 읽는 것에 비유하자면 우리 문화스토리의 매듭이 된다. 21C 오늘을 읽는 원형으로 살피면 유용할 것이다. 팔관회-연등회다. 마치 하구 둑에 어우러지는 자연생태계와 같다. , , , 선교의 도도한 정제가 시작된다. 실경산수의 원형처럼 자생풍수의 도선의 지경이 시작된다. 일찍이 개경, 평양, 서울-삼경(三京)을 유지했던 고려의 토대는 낙산의 명제를 읽는 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낙산 풍세는 남향 론, 동향 론의 아련함을 읽게 된다. 수락, 불암, 용마, 아차산의 지평 론이다. 낙산과 남산(목멱산)을 대입해서 살펴보는 관점이다. 그렇다면 백악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범바위(말바위)의 기맥과 와룡동의 정맥이 낙산의 봉우리 격으로 읽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면 흥인지문-이구수문의 동배향이 옳은가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안평과 수양대군을 동대문파, 서대문파로 자리매김 되듯이 흥인지문의 인()에 대한 의문이다. 그 결 사이로 흐르는 낙산의 삼선천, 삼선골 모형은 정당해 보인다. 연희천-세검정마포나루 지류와 함께 오롯이 서울의 내(), ()를 지키는 풍수 격이다. 낙산을 품게 된 대학로-성북동-동대문상가 원형은 망우리 공동묘지 중랑천을 가르고 삼선천, 즉 삼선 골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낙산 봉우리는 달동네 이야기와 함께 사라졌다. 혜화문 고갯마루를 읽는 등뼈같은 자리에 삼선골 지류가 중랑천으로 향하고 있는 벌판 위에 동대문 상가지대가 자리한다. 토정 이지함의 스승 가파치, 석파 이하응, 이정재 동대문 주먹장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동대문 의류 상가를 지켜주는 사람들의 집성촌이 담아낸 달동네를 읽는다. 망우리- 미아리-의정부 길목의 산하를 벌판삼아 중랑천이 흐르고 삼선교를 지나는 낙산 지천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뚝섬-마포나루의 격조는 청계천을 아우르는 할아버지 지천임에 무리가 없다.

이러한 사색의 틀 거리 속에 성북동자락-삼선 골 맞이는 서울의 원형을 위한 소요곡이 될 것이다. 고려의 하늘-조선의 아침-봉황의 꿈-은하수의 전설의, 사람다움의 체온을 담은, 용의 눈물-낙산의 삼선 골 아니겠는가. 삼각산의 흰 뼈를 담아내 서울을 아우르고, 삼각산의 흰 뼈를 보듬어 세검정의 머물고 있으니 청계천의 할아버지 천이라 할 수 있다.

낙산의 삼선 골이여.

남산골 담론
신화를 찾는 남산골 담론

누구나 남산에 오르면 어린아이처럼 설레게 된다. 남산은 남쪽나라 제비를 기다리는 봄소식처럼 온유하다. 이를테면 마을, 나라, 도시의 안옥함을 발현한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강화산성을 궤적으로 삼은 치열한 국가생존의 움터를 음미한다. 삼각산, 관악산을 할아버지 산으로 삼았을 때 남산, 목멱산의 존재는 더 한층, 봄볕을 맞이해야할 마을 중심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다. 남산 N타워의 모습은 오히려 서울의 상징 기념탑처럼 솟아있다. 21세기 미래의 문화 발전소다.

1910년대, 색 바랜 남산정경은 낭랑한 솔밭이 성성하다. 1950년대 남산자락은 일제강점기 화석, 6.5 화석이 보인다. 1970년대, 콘크리트 미학, 달동네 움터는 진행형이다. 어찌 되었든 용산과 명동 자락을 상징적으로 품고 지탱한 남산의 명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돌이킬 틈조차 없었던 1910년에서 2017년까지 공간을 채우는 사유를 위하여 틀 거리를 잡는다.

아 영운곡, 아 용골의 부침과 용솟음의 기원은 합당하다. 몽유도원도길, 주차장 해프닝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잔잔한 서글픔이 밀려오지만 어찌하려 안평대군을 음미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미륵반가사유상, 달항아리, 까치호랑이 얼개와 함께 한국미의 정신이자 머릿돌이었기에, 다시 한 번 남산자락의 풍미를 유추하는 시간이다. 남산솔밭이 철갑을 두르듯 울창하였다는 애국가 소절은 사라졌다. 홍송 솔밭자취를 읽으려면 꼼꼼히 남산자락을 만나야한다. 관악산의 면모가 한눈에 들어오는 남향의 자락쯤에서 솔밭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여하튼 남산자락의 옛 모습은 헝클어졌다. 장충단공원, 한양공원, 명동, 조선신궁의 설계는 오늘도 살아 숨 쉰다. 팔각정과 봉수대가 엉성하게 얼개를 남산타워랜드처럼 운영되고 있다. 참으로 간단치 않은 지층의 파편덩어리가 나뒹구는 곳이다. 영운골, 용골, 삼선골, 한강골의 체취에 힘을 쏟은 나머지 명동 복판을 관통하는 청계천 지류에 대한 음미를 게을리 했다. 게을리 했다기보다는 아스라한 꿈처럼 여겨진 것이 맞는 설명이다. 이태원-신촌-명동-강남으로 연결되는 식민지 해방-근현대화공간의 실험은 고되고 숨 가쁜 여정이었다. 지독한 홍역 기이자 홍위병이 날뛰는 아수라세계였다. 어느 식자의 직관으로 토설된 산수차원의 원숭이 흉내 꼴이다.

과연 고차원적인 수도 서울의 비전은 무엇일까! 잡다한 진보노선의 사람, 환경, 일거리 비전은 옳은가! 모를 일이다. 과연 서울이 벌써 노쇠한 고령도시의 치유를 들먹일 단계인가! 판단은 미루어 놓기로 했다. 명백한 사실은 명동에 흐르는 남산골 지류에 대한 연민의 심경을 확인할 뿐이다. 경주에 남산이 있다. 안산격의 산이요. 불교성지가 되어 사랑받고 있다. 과연 서울의 남산, 목멱산의 모습과는 분명 구별된다. 서울의 남산, 과연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까!

우리는 황룡사지, 미륵사지에 대한 영롱한 빛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사라진 문명제국에 대한 연민과 함께 민족 얼의 꽃봉오리를 음미하는 창문이다. 왜 이러한 통로가 작동하고 있을까! 통념의 집단의식이 고양된 지층이다. 훈민정음의 빛과 같다. 남산자락 좌우에 걸쳐져있는 숭례문, 장충단 봉우리에 있는 봉수대는 목멱산의 뜻을 웅변한다. 안산-남산의 몫을 분명히 하는 인프라다. 용산의 치열함, , , , 일의 각축전 속에 승자독식 즉, 치킨게임의 승자문명은 이태원 풍경이다. 군 병영의 알고리즘이 작동된다. , 남의 원형은 명치유신의 신봉기업인 명치를 대명사한 지명이름이 명동이고 보면 우리의 남산 이름표를 성찰함이 마땅해 보인다.

신촌, 명동, 이태원, 그리곤 중동건설 붐을 기린 강남의 테헤란 로를 설계 할쯤이면 우리는 지독했던 해방공간의 보릿고개를 넘는 줄기로 자리매김 됨이 온당하다. 어찌되었든 홍대-북촌 열풍의 진원지를 후대의 사가들이 논쟁을 일삼을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인사동차없는거리의 선언은 오늘날 우리의 고찰을 시작하는 시대담론의 줄기적인 자각이자 출발점으로 환원한다.

인사동의 올무처럼 칭칭 동여맨 업보는 깊다. 애국자를 취조하고 고문했던 종로경찰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오지난으로 잘 알려진 기생, 요정의 뿌리는 종묘, 사직의 얼을 훼절시키기 위한 비보다. 참으로 서글픈 계략이지만 우리 모두는 시대 사극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역겨운 비보계략이다. 율곡로, 종로, 청계로, 을지로, 충무로, 모두를 관통하는 수도 서울 문화 제1호는 와룡 동에서 필동을 향한 북남으로 흐르는 길이다. 율곡로는 창덕궁, 창경궁, 종묘의 혈을 가르는 비수다. 종묘 뜨락 요정의 존재는 정한 수를 더럽히는 부적이다. 그 곳에 전통문화거리 인사동의 존재는 무엇이며 우리 모두가 사유하는 북촌-서촌은 무엇일까!

어찌 되었든 세운상가 1km의 개혁문은 근현대화라는 명제 위에 세워졌다. 명동-와룡동의 연결은 중대한 테제를 잉태한다. 수도 서울의 황룡사요, 미륵사지다. 단언컨대 이 명제의 환원은 비로소 우리 길의 미래를 읽는 시작점으로 확인된다. 목멱산 드라마의 알고리즘이다.

조선의 멸망은 현실이 되었다. 그 끝자락에서 장충단이 세워진다. 조선말 혼돈 속에 산화한 젊은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장충단의 염원은 오늘날 현충원의 뜻을 담고 있다. 우리식 현충원의 모형이다. 장충단-숭례문의 존재성은 남산자락의 무게감을 반추한다. , 북의 명동-용산의 무게감이다. 남산 N타워의 별칭과 함께 팔각정-어린이회관-도서관-안중근기념사업회 컬렉션-봉수대 의식 등의 얼개들이 남산 스카이웨이를 꾸리며 옹기종기 무언가를 추스르고 있다. 과연 이 모습이 우리의 정제 미일까! 정수의 모형을 설계하는가! 라는 반문이다.

유교와 불교의 대척점은 정치적이다. 이데올로기 현상이다. 고려-조선의 굴기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문화는 불문율이 된다. 유교-불교의 대칭점 사이에 가로지르기를 하고 있는 사유다. 오히려 대칭점 사이에서 한일 문화벨트의 존유를 읽게 된다. 목멱산, 국사당의 존유를 찾게 된 것은 방향이 되었다. 또한 용골, 영운곡, 삼선골, 한강 골의 여여한 줄거리와 하나가 된다.

숭례문 총탄 흔적은 상징이다. 한양공원 표석의 흉탄은 사징이다. 깊은 내상의 자취다. F. 케네디 기념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빛이다. 거창한 외형이 아니다. 오히려 발등에 치일만큼의 낮은 횃불이다. 왜 이처럼 낮게, 적게, 형상화하였을까! 문화적 안목처의 승화다. 스탈린식 기념물 조형은 오히려 자기모습을 극대화시켰다. 황제치장물처럼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체주의담론의 재앙이다. 과연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의 크기로 훈민정음의 뜻이 빛날까! 천민문화주의의 산물이다. 어찌 되었든 오늘 20171013, 91일부터 시작한 영운곡, 용골, 남산골 과제물을 쥐고 마음담기를 하고 있다. 사유의 강처럼 흐르고 있다.

삼선골, 한강골, 중간지점쯤에서 남산골의 형상을 음미하는 단계다.

남산한옥마을의 뿌리는 충무로, 필동 일대에의 자리매김을 하였다. 문화역사적 방점처럼 오롯한 기운을 담고 있다. 장충단까지의 기슭을 연결하기에는 힘이 부치지만 와룡동, 창덕궁까지의 길머리는 분명 문화제1거리의 출발점으로 보아도 좋다. 명동성당과 명동거리의 상징은 인사동 조계사, 탑골공원, 운현궁의 아우라에 비추어 잘 정립되어 있다. 201710, 북촌-인사동 문화거리의 연결은 실험중이다.

남산자락의 남산골 원형은 숭례문-명동성당-한옥마을-장충단을 연결하고 음미한다. 탁란 계략에 의한 국사당 훼절은 참으로 쓰라리운 지층이다. 오히려 명동성당-조선신궁의 힘겨루기에 살아 존재하는 명동성당을 지나는 남산골을 사유하다 보면 용산-명동이 담고있는 내재율에 직면한다. 해방공간의 엄중한 숙제다.

역사왜곡은 여타 민족에게 부여된 숙제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성전울림은 지고한 염원이자 장대한 드라마로 자리매김 된다. 여호와의 청연한 울림으로부터 시련의 신이 늘 유대인과 동행하고 있다. 시오니즘은 또 하나의 숙제와 대면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신념의 동행자다. 이들 또한 성전의 이름으로 승화된다. 9.11 참화는 오히려 이들에겐 축제나 다름없는 개념이다. 이처럼 용산의 해방공간은 처연함을 내재한다.

어떻게 사유의 강()을 직시할 것인 가다. 지중해의 미학은 그 답을 정립하고 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비잔틴문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마치 해방공간의 분열과 조정의 시점이다. 어찌 그럴까! 반도에 불과하거나 로마의 영광도 없어 보일 듯한 초라한 우리 조국이 비견할 대유물이나 될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우리 모두는 직시해야 한다. 그리스로마의 혈통은 지고한 인류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다. 르네상스의 길목을 열었다. 이 비범하고 평범한 정의는 우리의 일상 속에 숨 쉴뿐더러 온전하게 공유하고 있다. 보통사유체계가 되었음이다. 극동의 분점, 피타고라스원리의 직각만큼 분명한 테제가 수도 서울 남산이요, 목멱산이다.

목멱대왕-목멱산에 대한 정의는 우리 정신사의 거대한 드라마. 20171020일 오늘, 남산골이야기를 담는 소망까지 장대함으로 분화될 것이다. 아폴로의 신이나 제우스의 아우라, 시바의 존재감, 그 모든 것의 이미지만큼이나 영롱함을 안고 있다. 우리는 고구려, 부여, 고조선의 역사왜곡의 후손이다. 식민지를 관통한 민족의 업보다. 두텁게 쌓아올린 식민지바이러스의 지층 두께는 오늘까지 유효하다.

태조 이성계의 목멱대왕은 무엇일까! 그리고 태조 왕건의 목멱대왕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2017년 오늘 대한민국 수도 서울 목멱산의 남산골은 무엇일까! , , , , 교의 정의는 우리 의식의 뼈대다. 지중해의 미학(美學)에 버금가는 요소다. 우리의 단군신화의 정수가 목멱대왕이다.

오히려 수도 서울의 르네상스는 언제쯤 발현될 것인가! 라는 화두가 이 글 문을 잡는 열정임을 숨길 수 없다. 누구에게나 부여된 시대의식의 출발점이다. 유럽의 환경담론은 치유의 함의이자 반성문명이다. 유물사관 즉, 합리주의 체계의 중대한 오류를 읽고 있다. 합리적 규명의 허구를 깨닫는 과정일 뿐이다. 르네상스라고 정의한 개념으로부터 21세기 오늘, 인류문명 자산의 검증이다.

남산골의 사유는 두 담론의 줄기를 일깨워준다.

1. 오늘 우리의 길목은 어떤 정의를 요구하는가!

2. 오늘 우리의 정의는 무엇을 잉태하려고 하는가!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정의한다. 수도 중심의 산이기에 그렇다.

태조 왕건, 태조 이성계가 정의하려 했던 목멱대왕의 존재는, 21세기 오늘 발현의 물꼬를 찾아야 한다. 그 존재의 서막이 남산골 이야기다. 마치 신화를 찾는 길목임에는 틀림이 없다.

뚝섬 골 담론
뚝섬 골 - 은하수의 전설

600년 정도의 어머니, 한강에 대한 서막은 정신문명 그 자체다. 때로는 바이칼 호의 발자욱을 음미하다가도 천산산맥 속에 숨어있는 신화를 찾는 설레임도 당연해 보인다. 숱한 영광과 질곡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신화는 좀처럼 응비해 보지 않았다. 실증사학의 논점에서 살펴보아도 패권주의의 분기점 정도로 해석될 뿐, 아득한 문명의 퇴적층은 그저 미미해 보일 뿐이다. 한성 백제의 융성했던 흔적에서나 아련한 흥미를 발견한다. 몽촌토성 언저리에 강둑 거닐 듯 발자욱을 남기려하여도 목마름의 체증은 가실 줄 모른다. 응대하였던 우리 민족문명 어머니 강, 한강의 서두를 위한 몸풀 림 소리다. 여하튼 고려의 하늘-영운곡, 조선의 아침-용골, 봉황의 꿈-남산골 부제를 마무리하고 은하수의 전설-한강, 용의 눈물-삼선 골을 남겨둔 나의 입장은 무겁고 장중한 빛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음이다. 돌이켜보면 십이 년의 숙제였으며 어언 40여년의 문화길목에서의 나루터 심정이었기에 그렇다. 짙은 향, 커피를 마주하고 토로 아닌 토로의 심경을 남긴다.

삼청동, 인사동, 충무로의 간결해 보이는 문화루트를 연결하고 각색해 보겠다는 염원은 개념적으로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아련했던 우리 정체성에 비추어 갈무리를 살펴보게 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몇 해 전, 인사동 골목 귀퉁이에 버팅 기던 나무전봇대에 대한 사유에서 치닫게 된 나의 행로는 실험공장이었다. 돌이킬 여유도 없이 시대의식의 파도는 몰아쳤다. 대한민국 문화공장의 성장 통이 그렇다. 누군가는 하나의 결정체를 정립하듯이 철학적 테제를 정립해야 한다. 문화산업 진입의 절대성이다. 요구와 소비가 동시에 실험되는 파도는 거세다 못해 파격적인 운동을 보여준다. 강박증 같은 절박함 속에서 「한강」개념 정립을 하려고 함을 밝힌다.

인왕산 기슭의 호랑이발톱 벽화를 마무리하기까지 3~4년의 숙지기를 거쳤다. 24회 목멱천제, 일곱 분의 청 탱을 제작하여 봉헌하는 것과 같은 내면의 공력이 요구되었다. 40주년 한강수륙제, 반야용선 봉헌 또한 녹녹치 않은 성심을 요구했다. 금강경의 주제 격인 연등보살-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은 옴마라도비야훔, 헌향 진언의 수기로 받아들였다. 혼 심을 기울여 관통한 100여일의 숨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운골-삼선골 봉헌 준비와 완결이 이루어져 있지 않음이다. 또한, 대한민국 문화 제1거리선언에 오수정(五水井) 작업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五水井과 같은 한강의 이야기는 40년 학습의 잉태라 하여도 무방해 보인다.

한강의 지평은 그 만큼의 내적 시성 출발함이 마땅해 보인다. 겸재의 금강산수도와 한강화첩 정도의 편력에서 읽는다. 금수강산의 발현으로 받아들여지던 당연함이 시대를 거듭하며 허리가 잘리고 꼬리가 휘어지며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즉 극복대상의 토목공사가 난무하며 그 자체를 치장해 버리는 결과물이 되었다. 여의도 63빌딩, 잠실의 롯데 마천루를 상징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 군은 서양 흉내 내기에 머물고 말았다. 김포공항 초석 돌은 한강의 기석을 분쇄하여 깔아놓을 지경이었으니 우리의 허겁지겁 걸어온 근현대사에서 한강에 대한 성숙도를 읽게 된다.

탄문 조처럼 튀어나오듯 일갈하게 된 은하수의 전설-한강의 정의는 매우 주요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서울의 상징성을 정의한다. 우리의 한강은 은하수의 북극성과 같은 상징의 극치다. 한강은 경이로운 한반도의 정형적 정수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펼쳐지는 반도의 혈맥을 마치 금강의 여로처럼 아스라하게 수놓은 모란봉우리 같다. 삼각, 관악, 북한산성, 남한산성, 강화도의 벌판에서, 파주에서 시작하여 망우 리에 이르는, 드넓은 정원은 실크, 아득한 무릉도원의 정립이다.

높고, 새롭고, 아련하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 수식어는 한강의 아우라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다. 즉, 고구려 고(高), 신라의 신(新)이요 백제의 백(百)이요, 조선의 조(朝), 모두가 한강의 선 엄적 직관세계를 내재하고 있음을 40여년의 문화길목에서 만나게 된다. 극히 정제되었고 또는 중화문명의 권력 구도에 침몰한 조선의 정신문명은 오히려 장엄미를 상실하게 된다. 즉, 귀족의 탐미주의를 버리고 세련의 길에 들어서게 되지만, 유교의 정신 축은 함축이요, 여백이고, 절제였으며 상징미학이다. 한강의 웅대는 조선을 맞이하며 시적(詩的) 응대를 자아내는 자리매김이 된다. 조용한 한강의 경치요 풍광을 유지했음이다. 겸재의 직관은 금강산, 한강 화첩을 통해 그 논단을 관통한다. 일제강점기와 근, 현대를 겪어내며 상실은 극심해진다. 일백 여 년 전에 시작된 굴기의 격동은 전 인류가 맞이한 광풍과도 같은 시대였으니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일갈한 시인의 읊조림은 타당해 보인다. 오늘도 물론 유효하다. 동방의 등불을 애잔하게 서술하려던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강의 개념은 무엇으로부터 사유함이 옳은가. 이 단상의 주제는 오히려 치열했다.

은하수의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는 접미수사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것도 광활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한강은 그 전체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금수강산 백두대간이요, 조선에 이르는 우리 얼과 풍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 스스로의 안목처가 창을 열고 감상할 따름이다. 보고, 만지고, 받아들이는 안목 처는 오히려 특별함이 베어난다. 고려의 국수격인 버들가지의 귀족성은 은밀한 내재다. 상감청자에 새겨진 고려 버드나무의 귀족 성을 테제한 흔적은 바로 한강의 잔유 퇴적층이다. 금모래 은모래사랑의 아스라한 바람결과 마주하는 버드나무의 풍광이다. 동화의 서장 미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오늘도 유효해 보인다. 여의도, 영등 포에 샛강처럼 군락을 이루는 버들 숲은 오히려 밤섬 듬성듬성 보이는 자연숲 정형을 음미할 수 있다. 뚝섬법당 앞 일곱 그루의 버드나무를 정감 있게 맞이해 본다. 삼각, 관악의 관현악으로 정립되어진 청계천 물줄기가 중랑천과 마주하는 뚝섬 모습은 그저 조용한 한강의 신화를 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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