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꿈 속에서나 본 듯한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을 만난 순간 가슴이 설레였던 '베로니카 레이크'는 1922년 생이다. 1922년이라는 연도는 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데 나의 아버지께서는 그녀와 동갑인 1922년생이시다. 비교하자면 한국에서는 일제치하의 척박한 시대였는데 그 때 그녀는 로맨틱한 영화를 찍는 여배우였다.

푸른 눈이 호수처럼 맑다고 해서 그녀는 레이크’(Lake)라는 예명을 갖게 됐는데, 또 그녀는 특유의 긴 금발 곱슬머리가 치명적인 상징이 되었다.

그녀는 10살 때 부친이 바다의 시추선에서 급작스럽게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심한 충격을 받게되고 이것이 정신적인 쇼크가 되어 그녀를  평생 고질적으로 괴롭혔다.

그러던 10대 때 모친이 딸의 뛰어난 외모에 관심을 갖고 연기학교에 보내면서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레이크는 19살 때 <나는 날개를 원했다>(1941)에서 클럽의 가수로 나오며 주목받았다.

그녀는 스크린에선 여유 있게 역할을 구사하는 배우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극심한 신경증을 앓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어찌보면 정상적인 상태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본다

1940년대 당시는 도발적인 팜므파탈의 여배우들이 스타덤으로 오르던 시대였는데, 다른 여배우들은 관능적인 몸매와 서구적인 큰 키로 남성들을 압도시켰다. 이들에 비하면 베로니카 레이크의 외형은 너무나 왜소했고 서양인으로는 대단히 작은 키에 몸매도 결코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노출 의상 하나없이 인기를 누렸던 그녀는 대단했다.

그런데도 외모가 빛난 그녀는 한쪽 눈을 거의 가리는 긴 금발로 표현되는 신비적인 전략과 도발적인 분위기로 관객을 압도시켰다. 영화 중에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제시카는 바로 레이크에 대한 오마주이다. 또한 유명한 영화인 <LA컨피덴셜>(1997)에서 킴 베이싱어가 연기한 인물도 그녀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51세라는 짧은 생을 살아서 배우로서는 잊혀지게 되었다. 마치  화양연화처럼 불꽃을 훨훨 타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한때 신비적인 분위기로 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여배우를 생각하는  시간은 소리없이 비가 내리고 너무나 깊고 적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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