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충무로 42번지에 위치한 충무아트홀에서는 2018512일 오후 ‘PLAN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한국 신발의 역사'편이 진행되었다.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한국 신발의 역사'편

일제강점기인 1919년 서울의 고무신 공장에서 시작돼 내년 100년을 맞는 우리나라 신발산업은 그 동안 부산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1950년 한국전쟁이 피란민이 대거 부산에 몰려들어 노동집약형인 신발산업에 풍부한 노동력이면서 안정적인 수요층이 되었다.

1960년대에는 고무신생산에서 현재의 갑피와 발바닥을 연결한 새로운 신발이 탄생하였으며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의 기술과 생산설비가 유입되면서 한 단계 도약 1970년대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신발 주력제품은 고무신에서 운동화로 바뀐다.

삼화고무와 계약한 나이키의 첫 주문량은 운동화 3천 켤레였는데 이후 수 만 켤레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나이키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이키와 삼화고무는 5년 독점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국제상사와 동양고무등도 나이키 운동화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은 부산으로 몰렸다 19701980년대 부산에서 신발산업의 고용 인구는 5만 명 이상이었다. 종업원이 1만 명이 넘는 신발회사는 4곳이었다.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한국 신발의 역사'편

국내 신발산업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큰 시련을 겪었다. 불안정한 주문으로 인한 수출 부진, 가파른 원화 절상, 제조비 상승 등에 따른 원가 압박 등의 영향으로 채산성이 급격하게 악화한 것이다.1990년대 기준으로 노무비가 제조원가의 2530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전체 수출의 95가 자사 브랜드 제품이 아닌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OEM)이었다. 독자 브랜드로 경쟁하는 게 아닌 OEM 생산 방식은 당장 많은 돈을 벌게 해줬지만, 나이키나 리복 등 외국 업체가 이른바 `갑이'었기 때문에 거래계약이 해지되면 모든 게 끝나는 함정과도 같았다.

고무신에서 시작한 국내 신발산업은 침체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시와 관련 기관은 신발 공정 자동화와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신발산업협회 회장을 지낸 권동칠 트렉스타 회장은 "국내 신발산업은 최근 '2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해외에 생산시설을 둔 신발 대기업은 연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고, 국내 생산업체는 자동화를 통한 생산원가 절감에 매진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부산시 부산진구 개금동에 '한국신발관'(K-Shoes Center)이 개관했다. 한국 신발산업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신발 박물관, ‘한국신발관’(K-Shoes Center)이 지난 226일 개관했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개금역 2번 출구로 나와 7분 정도의 위치에 있다.

저희 목표도 “Again Busan”입니다.
<발췌 신발산업진흥센터>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한국 신발의 역사'편 MDP 김명엽 대표

텐디 파업뉴스

공임 인상과 소사장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이어진 탠디제화공들의 파업이 11일 일단락됐다.

구두 한 켤레 가격이 3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 신발업체인 탠디는 제화공들에게 일감을 배정하면서 켤레 당 공임을 6500~7000원씩 지급해왔다. 지난 2011년 이렇게 책정된 공임 단가는 최저임금이 두 배 가까이 오른 지난 8년 동안 제자리였다. 하지만 제화공들은 각자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소사장인 탓에 회사와 교섭을 할 수도 없었고, 연차휴가와 4대 보험, 퇴직금 등도 보장받지 못했다. 탠디 등 본사의 주문을 받는 소사장제화공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랐지만, 계약조건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달 26일부터 이어진 농성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제화공들은 기쁘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는 않다고 털어놨다. 공임이 오르긴 했지만 처음 요구했던 2000원에 미치지 못하고 소사장제 폐지도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췌 노동과세계>

영문학을 전공한 박병훈 대표는 해외에서의 우리 상품의 가격대가 합리적인 가격대인가가 중요하고 한 때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던 한국의 신발계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가격대를 낮추려고만 하다 상품의 고급화에서 밀려나게 됐으며 아트와 기술의 접목으로 인한 우리나라 청소년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PLAY PLY 박병훈 대표와의 인터뷰 '한국 신발의 역사'편 문총련 박동위원장

예술과 신발에 대한 벤치마킹을 위한 제고
신는 예술, 버켓핏 (미국 시카고 오리진)

더 놀라운 것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디자인 없이 모두 각각의 개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개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버켓핏의 특징 중 하나다. 보는 예술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웨어러블 아트를 지향하는 버켓핏의 다양한 예술을 만나보자.

버켓핏은 지난 2008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우연히 만났던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창업 멤버기도 한 수석 아티스트 아론 피레스테인(Aaron Firestein)이 친구를 위해 스니커즈 위에 자신의 드로잉 작품을 선물한 것을 계기로, 2011년 론칭한 브랜드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스니커즈라는 컨셉은 전세계 사람들과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스니커즈를 디자인한 아티스트에게는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1$가 전달되며, 전체 수익금의 5%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이, 청소년들의 아트 프로그램 지원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일부 공유경제의 개념을 도입하여 예술가의 자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발췌 디자인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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