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철 작가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 작가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 김한정 기자
  • 승인 2018.05.03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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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텁텁한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향 친구가 떠오른다. 오랜 인연과 인연들이 뭉쳐 그를 볼 때마다 늘 반가움이 앞선다. 그의 좋은 사진을 볼 때마다 반가움이 배가되는 걸 느낀다. 이런 느낌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을 믿는다. 이갑철에게서- 권태균

이갑철은 1959년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선조들의 삶의 정한과 끈질긴 생명력을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1988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의 <타인의 땅>, 2002년 금호미술관 <충돌과 반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등 국내 다수의 전시와 더불어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 2000’, 프랑스 몽펠리에 <한국 현대 사진가 초대전> 등에 참가했다. 현재 프랑스 뷰Vu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갑철의 사진 인생은 파격이자 정석이다. 고전적 의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출발해 그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영역 확장을 모색했다는 점에서는 파격이지만, 그 길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면 심지 깊은 예술가가 거칠 수 있는 정석 같은 과정들을 모두 밟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구상에서 추상으로 옮겨가듯 그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망에서부터 출발해,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쳐 결국에는 왜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붙들고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와 비슷한 고민의 단계를 거치겠지만, 이갑철에게는 유독 그 흐름이 순리를 따르듯 자연스러워 보인다. 요란한 작업 방식으로 현대 사진을 추구하지도, 그렇다고 고지식하게 다큐멘터리만을 고수하지도 않은 채 그는 구도자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그래서 깨달은 만큼만 사진으로 뱉어 낸다. 그의 멈추지 않은 변화가 설득력을 얻고, 마침내 사진 인생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이 진정성 때문이다.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특히나 이갑철이 2002년 금호미술관에서 가졌던 <충돌과 반동>전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전시 제목인 충돌과 반동은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갇혀 있지 않으려는 사진 속 대상들 간의 충돌이자 그 충돌이 일으킨 힘의 파장을 뜻했을 테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진가 이갑철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향한 충돌이자, 기존 사진의 경계를 벗어나려는 작가의 반동적 시도를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1988년의 전시 이후 거의 15년의 공백. 그 사이 그는 내로라하는 매체와 사보를 두루 섭렵한 중견 사진가가 되어 있었지만, 그 작업 속에서 그만의 개성을 찾아내기는 싶지 않았다. ‘사찰과 전통, 생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아마도 그 무렵 이갑철에게 붙는 수식의 평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선하고 투박하지만 자신의 고집과 신념이 확실해 차돌 같은 인상을 주는 이갑철이 충돌과 반동을 통해 결국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시킨 것이다.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그동안 사진의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한 작가는 많았으나, 이갑철 처럼 죽음과 한, 해탈 그리고 샤머니즘의 동양적 세계관을 사진 속에서 힘 있게 펼쳐 낸 이는 없었다. 그가 1980년대 세 차례에 걸쳐 보여 주었던 작업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이긴 했으나 아마도 충돌과 반동이 없었다면, 그 이전의 전시들은 모두 과거의 시간 속에서 화석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돌과 반동으로 인해 이갑철의 작품 세계가 연대기적으로 다시 이해되고, 확장되어 지금의 작가를 낳은 뿌리로서의 초기 사진들까지 주목하게 되었다.

아마 그는 지금 자신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후의 작품 활동에 대한 심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심리적 변화가 무엇이든, 그는 어쩌면 마치 구도자처럼 그 과정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교의 선문답을 오가듯 자기 안의 깨달음만이 궁극에는 사진 속에 답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Q. 작품을 찍을 때 감정 몰입을 많이 하는 편인데, 감정에 집중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으신가요.

사진은 감정이 넘쳤을 때 나오는 거지, 머리로 찍어서는 안 돼요. 느낌이 철철 넘쳐 나와야지. 그래서 촬영을 가기 전부터 그 감정을 만들어 가야 하죠. 도착 지점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서 들으면서 가요. 마치 참선하듯이. 그러면 구름에 뜬 것같이 무지 편해요. 주로 불경이나 동요를 많이 듣지요.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날씨와 분위기에 따라 예감이 와요. 오늘 이 곳에 가면 이 느낌을 담을 수 있겠다. 하지만 다녀도 지명을 몰라. 외울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동물처럼 길 따라 다니는 거죠. 굿만 해도 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서 촬영을 가고 싶지가 않아요. 그러면 느낌이 묻혀 버리거든. 대충 굿의 성격만 알고 갈 뿐이지. 머리로 찍으면 대상의 아우라가 사라져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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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 식으로 감정을 몰입하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될 텐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오히려 굉장히 쾌감이 있지요. 대상이 뿜어내는 기운을 그대로 느꼈다고 생각될 때, 가슴 속에 서늘하게 지나가는 쾌감 같은 게 있어요. 그 짜릿함 후에 남는 공허함이나 외로움, 슬픔도 좋고. 그런 날은 허름한 선술집에 가서 소주 한잔하면서 기분 좋은 여운을 즐기죠. 촬영을 가도 민박은 안 해요. 혼자 있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기도 하고, 거기서 사람들을 사귀고 싶지가 않아요. 안다는 건 매인다는 거예요.

Q. 종교는 기독교인데, 작업에는 불교적 색채가 짙습니다.

내가 갖는 우리 땅과 사람들에 대한 정서 속에 불교적인 게 많더라고요. 절에 가면 좋고. 그래서 선 공부를 꾸준히 했어요. 대신 최근에는 내 한계를 느껴요. 요즘 공즉시색의 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내 사진 속에서 색은 구름, , 불 등 자연을 쓱 타고 왔었는데, 그 이상을 못 넘어서겠어요. 내 그릇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죠.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일본의 전통과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서 요즘에는 헤이안 시대 그림도 보고, 하이쿠도 읽고 하지요. 얼마 전에는 교토에 가서 열심히 보고 왔죠. 우리나라 표상이 뛰어나다 해도 일본은 더 정교하고 다른 느낌이에요. 그걸 체득하면 이질적인 것 속에서 또 다른 내 정체성을 찾고 덕분에 다른 표현 방법을 얻어 낼 수 있겠지요.

불교의 선문답이 말장난 같지만, 상당히 매력 있는 거예요. ‘바닷속 꽃사슴이 뛰어논다는 표현이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나한테는 가슴이 서늘하게 다가와요.

촬영 대상이 주술적이어서가 아니라, 사진의 분위기가 주술성을 풍기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귀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작업 속에 외롭고 두려웠던 유년 시절의 느낌이 많이 깔려 있어요. 성철 스님 다비식 때 찍은 작품 중에, 산속에서 한복을 입고 혼자 서 있는 아저씨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대여섯 살 무렵 동네에서 시제를 지낼 때 받은 느낌이에요. 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음산하기도 한 기운 같은.

신기비슷한 게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뿌리를 찾아가 보면, 전혀 무관한 인생을 사셨지만 아버지한테도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지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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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제 성장 과정은 어떠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외로움이나 슬픔을 많이 느끼긴 했는데, 가정환경은 전혀 아니었지요. 부모님이 만물상을 하셨는데, 연탄이랑 쌀부터 학용품까지 그야말로 옛날식 이마트여서 살림이 넉넉했거든요. 사진 찍기에는 딱인 환경이었죠. 돈 통에서 필름 살 돈을 집어내도 티가 안 났으니까.(웃음)

돌이켜 보면 원래 사람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명절을 제일 싫어했어요. 2 땐가 가을의 공허함을 느끼고 싶은데, 추석날 손님들이 몰려와서 웃고 떠드니까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혼자 방에 처박혀 보드카 한 병 다 마시고 23일 졸도한 적도 있죠.(웃음)

 

Q. 예사롭지 않은 사춘기를 보내신 듯한데(웃음),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내가 사진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이끌어 준 인연들이 참 많아요. 중학생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아버지의 암실을 보고 사진에 반했어요. 그리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네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서 찍기 시작했죠. 재수해서 고등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첫 달은 비장한 마음을 먹고 착실히 공부를 했는데, 그 다음 달부터 사진에 끌려서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었어요. 당시 동네 사진관 주인이 훌륭한 분이어서, 주말마다 그분 많이 따라다녔어요. 조선소, 초가, 연못 등 대부분 살롱 사진풍이긴 했지만.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그렇게 찍다 보니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알고 싶어서 사진 잡지 <영상>에 응모를 했는데, 5×7 인치 크기로 출품하라는 것을, 5×7 센티미터로 오려서 낸 거예요.(웃음) 그런데 그때 편집장이 친절하게 자필로 센티미터가 아니라 인치라는 얘기와 함께 격려의 편지를 보내 줬어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사진을 안 했을지도 모르죠. 덕분에 자주 응모해서, <영상> 최초 학생 추천 작가로 상패도 받고. 나중에 대학 들어가서야 알았지만, 육명심 선생님이 <영상>에서 심사를 하셔서 제 사진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계셨지요.

목장을 경영하는 게 꿈이었는데, 성적이 안 좋아서 사진학과에 갔어요. 그러니 공부를 잘 했거나 <영상>에서 친필 편지를 안 받았으면, 사진가가 못 됐을 거예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지 않은 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당시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작품 세계는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한 건, 대학 졸업하고 2년 정도 집에 머물면서 작업만 했어요. 그때는 아버님이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계가 기울어 부산으로 도망갔던 시절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부모님이 말 한마디 없이 지켜만 봐 주셨지요. 그렇게 2년을 방황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계몽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친구 집도 전전하고 남산에서 노숙도 하고 했어요. 이 무렵 낙서를 보면 생에 대해서 그리고 사진가의 길에 대해서 고민을 제일 많이 했지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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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로버트 프랭크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작가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사진 인생으로 보자면 육명심 선생님은 낳아 주신 아버지같은 존재죠. 대학 들어가자마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을 보여 주셨어요. 다들 살롱 사진을 할 때라, 너무 새로웠어요.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을 보면 정말 사진의 모든 걸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아요. 감정이 없어서. 지금도 좋아하는 사진가는 로버트 프랭크지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찍을 당시 사진가의 가슴을 읽을 수 있어요.그 다음으로 리 프리들랜더와 게리 위노그랜드의 영향도 받았지요.

Q. 연출 촬영도 해 보셨나요.

해 본 적은 있는데, 내게 연출은 흘러넘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경직돼서 나오는 엉터리 사진 같아요. 카메라를 여러 대 들고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는 작가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장면은 참 좋은데 에너지가 없어요. 예전에 컬러와 흑백을 동시에 작업해 본 적 있는데, 그건 양쪽 작업을 다 버리는 일이에요. 한 가지에만 몰입해도 제대로 나오기 힘들어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Q. 그래서 개인 작업에서 흑백만 고수하시는 건가요.

흑백은 대상 자체의 본질을 보여 주는 반면에, 컬러는 대상 자체만 보여요. 근데 그 또한 본질 같지가 않고, 꼭 조색 같아요. 마치 어색하게 양복 입혀서 꾸며 놓은 것처럼. 게다가 컬러로 찍으면 색에 집중을 해서 대상이 풍기는 분위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본질 혹은 핵심을 찾아서

Q. <충돌과 반동>전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부분 28mm 렌즈로 촬영하셨는데, 요즘에는 어떤 장비를 주로 쓰시나요.

1990년대에는 니콘 F328mm를 많이 썼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망원 렌즈를 사용해요. 평상시에는 100mm를 쓰고, 풍경 찍을 때는 200mm를 쓰고. ‘충돌과 반동후 풍경을 좀 찍기 시작했는데, 풍경을 아웃 포커싱하려면 망원을 쓸 수밖에 없어요.

매체 일은 디지털로 찍지만 내 작업에는 못 써요. 화면으로 바로 확인을 해 버리면 느낌이 거기서 끝나 버려요. 느낌을 쌓아 가야 되는데. 이제는 광각도 못 쓰겠어요.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나는 핵심을 보여 주고 싶어요. 예전에는 대비 효과를 많이 썼는데, 지금은 얘깃거리가 딱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물이면 물, 풍경이면 풍경에서 나오는 직접적인 에너지를 보여 주고 싶어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계몽사의 사진가를 거쳐 여러 출판사 및 매체와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매체에 소개되는 작업과 개인 작업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대표적인 작가이신데요. 물론 매체의 속성을 지켜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반면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사진을 원하는 편집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시도를 안 해 보신 건가요, 아니면 그런 작업을 모색해 볼 만한 매체가 없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처음 원고 기고를 시작하고 3년 동안은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내 식대로 찍어 갔는데 달가워하지 않을 때도 많았고. 그래서 어느 순간 내 작업과 매체의 작업을 확연히 분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매체들하고 일한 덕분에 지금의 작품 세계를 완성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지요. 일부러 내 작업만 해야지 작정하고 찾아가면 이런 분위기를 담아낼 수가 없어요. 머릿속에서부터 긴장하고, 계산하니까. 취재차 예상치 않고 간 김에 어떤 대상을 만나야 되는데, 부러 촬영을 떠나면 거기에 갇히게 돼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Q. 선생님 사진에서는 거친 입자와 사선 구도의 역동성이 심리적 긴장감을 강하게 유도합니다.

요셉 쿠델카의 집시 작업처럼 입자를 거칠게 표현하면, 우리 황토 같은 질감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매끈한 사람보다 투박한 사람이 좋듯이 사진도 그래요.

꿈틀거리는 내 마음과 달리 사진의 직선 구도는 움직임 없이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다시 반듯하게, 폼 잡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요. 미화하지 말고, 군더더기를 없애야 할 것 같은.

찰나를 잡아내서 시간성을 포착해 내는 훈련은 사실 ‘Images of the City’부터 굳어진 건데, 그때 야릇한 순간의 배치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싫어요. 마치 얼라들장난처럼 느껴져서.(웃음)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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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형식이 바뀐다면 작품의 대상이나 주제도 함께 바뀐다는 것을 예고하나요.

내면과 함께 형식상의 고민이 같이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형식은 갈 만큼 갔어요. 어지간한 사진가들이 다 해 봤고. ‘그렇다면 현대 사진의 갈 길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지요. 언젠가 육명심 선생님은 그 질문에 내적 심화라고 답하셨는데,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껍데기만 따라가서는 해결이 안 되고, 내적 심화를 따라가다 보면 형태는 자연히 완성이 되겠지요.

Q. ‘충돌과 반동이후 풍경에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풍경의 가슴 시림을 느끼게 되셨다고 표현하셨던데.

맞아요. 사진의 순간성에 매료돼 있다 보니 풍경 사진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순간이라는 것도 정지와 움직임 사이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 거지요. 겉으로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요. 정지된 풍경과 사물 또한 그 안의 감정은 움직이고 있어요. 그게 풍경의 가슴 시림입니다. 특히 산을 사진 속에 걸치고 나면 굳이 적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편하고, 왠지 떠나가는 느낌도 들고. 그게 또 우리 산이니까 읽혀져요.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이갑철의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구도자로'

Q. 지금까지의 작업 대상은 자연이나 농부, 아이들, 제례 등 물질 문명의 대척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전에 도시 문명을 작업하고 싶다고 한 기억이 나는데, 그 바람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

지금까지는 양복과 전봇대는 찍기 싫은데 현실 속에 소재가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지요. 사실 요즘은 그런 시도 자체도 무엇을 찾기 위한 몸부림 같아서 싫어요. 대상 자체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지요. 중도의 삶을 꿈꾸고 있어요. 뭘 찾으려 굳이 날뛰지 않고, 그런 강박 자체도 떨쳐 버리고 싶어요. 도시적 일상도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죠. 도를 깨우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참선을 했는데, 그 결과 역설적이게도 속세로 내려와 사는 것이 도라는 깨달음을 얻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화두를 집어던져 버리자, 이게 내 요즘 화두에요.

출처 : 포토넷 이갑철, 심연을 낚는 주술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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