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문화Story 오브제

우리 대한민국Story는 명품이다. 결코 그리스 로마신화에 뒤지지 않음이다. 잘 꾸려진 중국, 일본, 대만의 동양문화권Story 관광 상품과 비교하여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예술적 장르를 차용하여 승화한다면 한판 붙어 볼 만 하다. 한류의 거침없는 열정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단지 연결이라는 거대담론의 치료제가 없음을 40년 문화운동 현장에서 찾아냈다.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보다 어둡지 않다, 라는 명제를 극복하는 문화공명법칙의 화두다. 작업, 답사, 실험은 계속되어 왔다. 이 케리커쳐의 영감은 사금파리, 나무전봇대, 박석, 솔밭, 플라타너스, 달빛마을로 연결되는 오브제다. 우리 대한민국의 오마쥬를 위한 개념으로 탄생되었다. 많은 사랑을 소망할 뿐이다.

문화Story 오브제

1. 사금파리

삼청동 2-1, 사금파리문화일기장 기념관을 설립하고자하니, 30여년의 여정이 새롭다. 스스로 돌아와 숨 거둘 곳을 아는 산짐승들의 고요한 눈빛처럼 숨고르기를 하였다.

야석 박희선 선생님은 내 아버님이시다. 전주사범 심상과를 거쳐 수학하시던 중, 어머님의 가정교사로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어머님은 전주사범 교육학과를 수학하셨다. 그 시대 신식여성 중에 신여성이었다. 전주에 풍남문이 중심에 서 있다. 서울의 숭례문과 같다. 그 자를 그대로 따 이풍남(李豊南) 이라는 이름을 할아버지께서 주셨다. 6~7세까지 남장을 하시고 유년기를 맞이했던 어머님은 최초의 지프차를 운전하고 출판사업, 교육사업을 하시던 열혈여성이었다. 아버님은 고마자와 대 유학길에 오르시게 된다. 나라를 잃은 민족, 국가의 구제는 종교, 사상의 밭에서 일굴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특별한 정신세계를 일구는 단초이자 결행이 아니었나. 살펴보게 된다.

일본 유학시절 학도병으로 만주사변에 참전한 야석 박희선은 G-2공작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고 만주 군에서 탈영하여 독립군으로 합류하기 직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검찰언도 사형, 20년형을 구형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6.25, 5.16, 해방공간에서 겪은 아픔의 상흔은 온 몸에 뼈 속 깊이 새겨진다. 어려서 목욕하러 백악계곡을 찾으면 채찍에 찢겨진 엉덩이와 발뒤꿈치 패인 상흔과 가슴에 찢긴 상처는 일제요, 6.25, 5.16이었으니 해방공간 속에 저민 역사의 퇴적층은 울림이었다. 그분이 남겨놓은 편지 30여 통을 발견한 것은 어머님 작고 후 어머님이 아끼시던 공단 한복 속에 몇 겹으로 쌓여진 체였다. 이때부터 가난한 시인의 아들이 꼭 품어야 했던 흔적 정도로서 사금파리문화일기장 기념관을 그려왔다. 늘 가난의 미학(美學)이라는 시인의 숨결을 호흡하면서……. 문화일기장의 체온이다.

문화Story 오브제

삼청동2-1, 사금파리문화일기장 기념관은 시대담론에 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북촌, 서촌, 사랑의 큐비트를 위한 서사다. 백악의 모형은 고려의 정신과 조선의 영혼이 만날뿐더러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을 연결하는 우리 문화의식의 출발점을 내재하고 있다. 청계천시원지 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팔관회, 연등회라는 그윽한 문명축제의 씨앗을 담고 있다. 아울러 백악신사, 삼청전, 운용 대, 칠보사에 이르는 아련한 문명사의 변곡점을 온전히 떠안고 있다. 삼청공원 이야기는 그 자체가 증좌이다. 그 모퉁이에 가난한 시인의 아들이 담아야 할 사금파리문화일기장, 그리고 야석 박희선 선생께서 어머님께 보낸 편지의 체온을 담는다면, 조그마한 기념관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을 소망하였다. 삼청동 문화Story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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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무전봇대

삼청동플랫폼의 정의는 인사동플랫폼의 생명력과 만나고 있다. 북촌, 서촌담론이 대한민국 전통문화 제1거리 인사동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북촌-서촌 담론은 도시의 섬처럼 고유한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운현궁, 경희궁, 덕수궁의 존재와 또 다른 의미를 내재한다. 단절, 연결, 부침, 아득한 연민마저 테제를 응변한다. 우리 모두는 그 사유를 직시하거나 잊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작동하는 지에 대해 논리화하기에는 버겁고 무거운 주제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의 왜곡됨을 잘 알고 있다. 우리다운, 우리의, 인사동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못함을 쉽게 알게 된다. 과연 이곳이 우리 전통문화 제1거리인가, 라는 질문이다.

단절, 연결, 부침, 아득한 연민의 강()이 흐르는 인사동의 생명에 대한 헌사로부터 인사동플랫폼의 성격을 정립했다. 탑골공원, 피카디리 음악벨트, 종로2가 초입벨트, 피맛골, 종로경찰서와 운현궁, 조계사와 인사동 회화나무, 오진 암과 기생 촌, 골동상가, 갤러리, 잡화기념품 전,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만나는 인사동 음식점 얼개들 속에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인사동엔 아직도 나무전봇대가 존재한다. 며칠 전 광화문사거리에 우뚝 서 있는 나무전봇대를 발견했다. 인사동 골목 구퉁이에 자리한 나무전봇대에 대한 오마쥬는 인사동플랫폼 담론의 출발점으로 담아내는 일, 신화를 찾는 사람들-보물찾기-나무전봇대Story로 꾸려진다. 백악, 인왕, 낙산, 목멱, 한강에 이르는 보물찾기의 여정이다. 물론 그곳의 나무전봇대Story는 꽃피고 있다. 백악의 나무전봇대는 밑둥만 남아 잇다. 인왕의 나무전봇대는 현역이다. 지금도 거뜬히 사용 중이다. 낙산의 나무전봇대는 작품이다. 절묘하게 건축물과 결합되어 있다. 목멱의 나무전봇대는 국보 제1호 숭례문 뒷골목에 있다. 아흥다흥드리, 이 다섯 곳의 나무전봇대를 만나는 순간, 콧소리가 절로난다. 사라진 우리 흉음의 오케바리다. 아흥다흥드리 24절기, 우리 명절, 국가기념일 입법화는 당연하다.

아흥다흥드리, 나무전봇대, 보물찾기기념관, 인사동 문화Story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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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석

조선건국의 토대는 성리학이요 동양적 계몽주의다. 그것을 온전히 떠안은 덩어리가 경국대전이요, 정도전, 이성계, 무학대사 스토리쯤으로 살펴보아도 무방하다. 언뜻 월탄 박종화 선생의 세종대왕 사극 용의 눈물편을 살펴보아도 치열했던 명분논리 속에 도도히 숨 쉬는 애민사상을 근간으로 한 계몽주의적 사유를 읽을 수 있으리라. 세종대왕에서 정조대왕에 이르는 계몽주의적 근간을 읽을 수 있었던 의 정체성은 일본, 중국, 유럽의 군주와 차별화된 출발점이었다. 바로 박석의 미학이요, 철학이다. 깔끔하며 사람의 손재주가 과연 어디까지 이를 수 있나,를 응시케 하는 궁의 치장은 중국, 일본, 유럽 어디에도 산재하다. 유독 우리의 궁 마당, 정전의 품격은 자연에 가깝다. 궁의 집짓기 모든 것은 평민의 몫이었고 강제적 동원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조선의 궁, 박석은 평민의 노고를 줄이기 위하여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린 마당을 꾸리게 하였다. 600년 전의 뭉클한 천착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철저히 붕괴된 600년 정도의 궁을 복원하고 있다. 경복궁, 덕수궁을 제외한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의 정전마당, 종묘 박석은 중국, 일본, 유럽의 군주권력이 뽐내는 핍박이 도사리고 있다. 허영이요, 환상을 흉내 내고 있다. 두부 자르듯 모자이크된 정전의 조형모습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우리의 모습이다. 대한문화제1거리 오브제는 이렇게 정립되었다. 언뜻, 창덕궁 그러니까, 조선정원의 미학이 한국의 정원처럼 미더워지던 해방공간의 미적 사유의 테제. 차마, 그러나 고개를 떨구는 우리 정신의 정수 앞에 오얏꽃 문양, 인정전 문양의 어색함을 응시하며 박석 허영의 콤플렉스를 치유하기로 하였다. 물론 창덕궁 돈의문에서 남산골 한복 마을까지를 21세기 오늘 치열한 문화담론의 서사로 삼는 일이 분명해보였다. 돈의문을 나서면 즐비한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마침표, 쓸쓸한 가을비만큼 초록의 짙은맛을 담아 질곡의 작업장에 꽃핀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은유하듯, 로마의 하늘 빛 지중해의 가로수라 할지라도, 고요한 동방의 나라 우리 가로수의 아스라함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플라타너스 오마쥬는 치열했던 40여년 문화학습 공간의 성찰이자 선택이다. 종로, 대학로 그리고 가끔 만나는 플라타너스의 그 모든 체온을 위하여 돈의문 앞 가로수의 짙은 푸름을 대한민국 서울 문화제1거리 오브제로 삼았다. 박석의 치유처럼 인 왕골 그 곳엔 순정효황후 생가가 있다. 그 곳에 가면 우리의 탁자 밑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 보다 어둡지 않음을 옹기종기 모여 사는 무허가촌 방이 되어버린 순정효황후 생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의 생가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마땅히 자리했어야 했다. 돈의문에서 출발하여 남산골에 이르는 길목을 향하면서 새로 복원되어 자리한 순정효황후 저택을 만나게 된다. 마치 이팝나무 가로수의 어처구니없는 실험을 만나게 된다.

영화, 인쇄, 의료사업의 테제인 충무로, 을지로, 종로, 율곡로의 모든 길을 관통한다. 1km의 세운상가를 음미하며 사금파리, 나무전봇대, 박석의 정의를 내면의 철학으로 정립했다. 철학은 색, 음악, 시로써 읊어내는 플랫폼이다. 이로써 13년의 긴 여정의 첫 화두 정립을 하게 된다. 삼청동 2-1, 사금파리한지묶음 일기장으로부터 시작을 고하게 됨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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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빛마을과 솔밭

소낙비처럼 온 산의 축제를 불러오는 신화는 없으리라. 7월의 소낙비를 맞이한 백악의 산천은 돌이켜보면 산딸기의 빠알감으로 기억된다. 체온에 스민 붉음이요, 신비로움의 맛을 시작한 유아식이었다. 이 곳 북악 삼청 골에서 자란 유년기의 색감 중에 산딸기 붉음, 벚나무 열매의 붉음, 파패 열매의 붉음, 그것을 조율하는 소낙비의 축제는 물거품처럼 투명한 것이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물길은 영운 골 그 곳을 작은 함성으로 가득 차게 한다. 물론 함박눈이 나리면 온 산은 하얀 빛 현상세계로 조용히 나타난다. 추운 겨울, 까치 소리와 재잘거리는 산새들의 정령들이 잦아든다. 이렇듯 북악의 산천은 영운 골을 낳았고 그곳에 사람을 안주케 하였다.

영운 골, 용골, 삼선 골, 남산골, 뚝섬 골, 글 맥을 정리하며 몸살을 앓게 되었다. 상실감보다 더 큰 주제였기에 그러함이다. 신화를 찾는 사람들의 인형 만들기 같은 통과의례였음을 밝히지만 어찌 그 것만으로 토로할 수 있을까1 사라진 영운 골 금강소나무의 빛은 아직 살아있을까! 남산자락, 삼청공원 인왕산 용골, 낙산 자락, 경복궁 뜨락, 금강솔밭, 솔방울의 싹 트임을 시작하고자 할 때 플라타너스, 아카시아, 그리고 금강솔밭, 회화나무 골의 정의를 내면의 세계에서 갈무리하기로 한다.

문화Story 오브제

갈무리는 60여년의 전생을 돌아보는 일이요. 치열했던 40여년의 문화운동현장에서 얻은 눈빛, 마음 빛, 사람 빛의 정수를 얻고자 하는 사유다. 삼청동 2-1번지 뜨락에는 솔밭이 주제어다. 광화문에서 보는 백악, 인왕은 참주제를 얻기엔 턱없다. 백악은 영운 골에서 시작되고 응태한다. 백악을 즐겨 그렸던 겸재의 눈빛, 마음 빛, 사람 빛도 이 곳에 머물렀다. 삼청전 목멱신사 즉, 산천, 대천, 신사의 원형질의 본체이자 원형이리라. 인왕의 정수는 솔밭에서 만나게 된다. 용골 선바위 자락의 응태다. 그 솔방울을 움켜 새싹을 틔우는 일, 작은 소망이다.

그럼 그러한 차원에서 달동네, 달빛마을을 보듬는 시작점을 삼는 일이다. 벌써 12년의 신화를 응태 시키는 작업이 사금파리, 나무전봇대, 박석으로 자리 잡고 솔밭, 달빛마을로 정립되었다. 인사동에서 청와대 언저리까지 회화나무 골이 성성하고 둥구나무도 존재한다. 삼청동 2-1, 계수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삼청동 길 은행나무, 인사동 초입 플라타너스, 버드나무 다섯 그루, 뚝섬 버드나무, 백악-고려의 하늘, 인왕-조선의 아침, 낙산-용의 눈물, 목멱-봉황의 꿈, 한강-은하수의 전설의 정령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곳 모두의 정령은 달동네다. 사금파리, 나무전봇대, 박석, 솔밭, 그리고 달빛마을의 이야기가 신화를 찾는 사람들 스토리로 작동된다. 플랫폼 오마쥬다.

삼청동 사금파리-조선의 아침 Bar-메리힐하우스 아카데미- 고려의 하늘, 조선의 아침, 용의 눈물, 봉황의 꿈, 은하수의 전설- 삼청전, 인왕사, 안양암, 국사당, 뚝섬법당의 오마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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