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첫 해인 2012년 7월 6일이다.

 

북한판 소녀시대로 불리는 모란봉악단 밴드의 시범공연이 열린 평양만수대예술극장에서 리설주는 김정은 위원장의 옆자리에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무대도 그랬지만 이 정체 모를 여성에 대해서도 전 세계의 관점이 쏠렸다.

 

리설주는 이틀 뒤인 7월 8일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7월 15일 청철거리 경사유치원 방문에 잇따라 동행했다. 이어 북한 매체들이 7월 25일 김정은의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을 전하면서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장에 나왔다.”고 밝힘으로써 정체가 확인됐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부인을 동반한 적이 많지 않았고 행적이 공개되는 일은 더 흔치 않았다. 1994년 6월 북핵위기 때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대동강 유람선에서 만났을 때 부인 김정애가 등장한 화면이 전 세계에 방영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도 내부행사에 김정일과 동행한 적은 있었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2012년 고용희의 생존 활동영상이 공개됐지만 이때에도 ‘고용희’라는 이름은 소개되지 않았다. 선대의 관행에 비춰 김정은이 공개 행사 때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것은 파격적이다.

 

북한은 지난 2월 8일 ‘건군절’ 열병식장에 나타난 리설주에 대해 그간의 ‘동지’ 대신 ‘여사’라는 호칭을 붙였다. 리설주를 ‘퍼스트레이디’로 선포하는 의미가 담긴 호칭 변화로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과 함께한 만찬에 이설주가 옅은 분홍색 정장의 화사한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외국 대표단을 위한 만찬에 국가정상의 부부가 나란히 참석하는 서방국가의 외교의전과 다를 게 없었다. 리설주가 외교행사에서 김정은과 동석한 것은 2015년 9월 쿠바 미겔 디아스 카넬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방북 때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이날 만찬은 퍼스트레이디로서 참석하는 사실상의 첫 외교무대로 볼 수 있다. 리설주는 이제 북한 변화의 지표가 됐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천명한 ‘남북관계 대전환’ 방침에 따라 정상회담 개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이번 우리 특사단에 대한 파격적 환대로 보여줬다.

 

김정은은 대남특사로 보냈던 여동생 김여정은 물론 부인 리설주까지 대동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번 합의는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이라는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 보겠다는 몸부림일 것이지만, 대외관계의 전면적 개선으로 일거에 돌파구를 열겠다는 결단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의 너무 신선한 양보로 보이는 이번 합의가 과연 제대로 이행될지 의문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사단은 북측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 매체에선 비핵화는 고사하고 핵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한 업급도 없다. 정 수석특사는 김정은이 ‘비핵화 목표는 (김일성 김정일) 선대의 유훈’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을 주목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은밀히 핵개발을 지속한 떳떳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 물론 김정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대목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발언은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폐지해야 북핵을 폐지할 수 있다는 기존 논리와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이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정은의 언명은 북한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최고지도자의 육성을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김정은이 북핵 문제를 둘러싼 여러 장애물들을 제가함으로써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2018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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