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수염에 고드름 달린 저 아저씨는 왜 태극기를 달았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바이애슬론 경기를 TV로 지켜보던 아이가 물었다.

 

아무리 봐도 서양 사람인데 모자와 팔에 태극기를 붙인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바이애슬론 국가대표 키모페이 랍신은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이다. 8년간 러시아 국가대표로 지냈다. 그는 2년 전 한국의 특별 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여름 월정사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뜻이 담긴 ‘일신’이란 불교식 이름까지 받았다. 루지 여자 싱글에 나선 아일린 프리쉐도 2년 전 한국인이 됐다. 독일 출신인 그는 “한국의 분단 상황 등 역사적 배경이 독일을 떠올리게 해 귀화가 매력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선수층이 얇은 동계올림픽 개최국이 외국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은 역대 개최국 중에서 그 수가 가장 많다고 전했다. 한국은 대표 145명 가운데 15명은 특별 귀화 선수로 채웠다. 4년 전 소치 대회 때는 화교 출신 공상정 한 명뿐이었다.

 

올림픽은 꿈을 좆는 사람들의 무대다. 이번에 평창에 오기 위해 국적을 바꾼 선수가 178명이다. 미국인이 37명으로 가장 많고 캐나다 21명, 러시아 19명이다. “프리쉐는 루지 강국인 독일에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인 쇼트트랙 선수 김영아는 2014년 카자흐스탄으로 귀화해 평창 꿈을 이뤘다.

 

캐나다 교포인 백지선 아이스하키 감독은 “피부색이 아닌 마음의 조국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단일 민족’과 순혈주의 신화를 키워 온 나라다. 처음 귀화 대표선수가 나온 게 1994년 이었다. 대만 화교 출신 후 인정이었다.

 

아버지 국적 빼고는 한국 선수나 다름없는 평창 배경을 지녔다. 평창은 우리의 순혈주의가 깨진 올림픽으로 기록 될 전망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푸른 눈 선수들을 응원하는 게 어색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 농구, 배구 같은 국내 스포츠 구단에서 이미 외국 선수들이 핵심 전력으로 뛰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나 KBS 교향악단에도 서구 단원이 여럿이고, 외국인 상임 지휘자와 객원 지휘자가 수시로 드나든다. 우리 끼리 뒹굴고 경쟁하던 시절은 끝났다. 평창올림픽을 누비는 귀화 선수들을 TV로 응원하며, 피부색과 얼굴로 ‘우리’를 확인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걸 국가대표들의 향연인 올림픽에서도 실감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부자들의 스포츠’로 이름난 겨울 스포츠에서 10대 선수들의 패기와 값진 성취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일깨워줬다.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동메달을 딴 ‘빙속 괴물’ 김민석(19)은 서구인들이 지배하는 남성 1500m에서 아시아 선수 메달리스트다. 부모님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 데뷔전에서 재미교포 2세 클로이 김(18)은 여자 스노보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1982년 홀로 이민 갔던 그의 아버지가 “아메리칸 드림”을 외칠 때 국민은 ‘코리아 드림’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도 ‘N포 세대’ 청년세대에게 삶의 새로운 의미를 선사한다. 스키점프의 박규림은 여자 노밀힐 결선 진출이 좌절됐지만 불모지였던 한국 여자 스키점프에서 첫 올림픽 비행을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았다. 특히 설 연휴까지 반납한 자원봉사자 2만 여명과 지역주민은 한국의 힘을 세계에 알리는 민관외교관들이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뜨거운 응원을 펼치는 한국 관중도 숨은 주인공이다. 누리꾼들이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최민정이 실격된 뒤 동메달을 목에 건 캐나다의 킴 부탱을 향해 악플 공격을 하는 바람에 킴 뷰탱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의 의식과 문화를 한 계단 업그레이드 하는 일은 성숙한 ‘나’로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세계 최대 눈과 얼음의 스포츠축제’ 평창에선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2018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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