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안녕하세요. 저희는 제천 동명초등학교 3학년 강나연, 5학년 김문주입니다. 얼마 전 기부 포비아라고 적힌 기사를 봤습니다. 지금은 기부 포비아가 아니라 기부폭염이 와야 합니다. 기부폭염이 오려면 시작을 해야 되니 하나하나 사랑과 관심을 선물해 드리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삐뚤삐뚤한 글씨의 손 편지가 도착했다. 충북 초등생 2명이 과학전람회에서 수상해 받은 장학금 40만원과 함께 보내온 것, 어린이들은 “기부금이 슬프거나 불편한 이웃에게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부 포비아와 운율을 맞춘 기부폭염이라는 단어가 의젓하다. 지난해 말 기부폭염은커녕 기부한파가 모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은 65.2도에 머물렀다. 사회복지공공모금회의 기부금 목표액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지난해 목표가 3994억 원이다.

 

작년과 재작년 70도 가까이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협동은 유전자가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며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이타심은 결국 이기심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에드워드 월슨이나 데이버드 월슨 같은 학자들은 ‘집단은 단체의 이득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는 집단 선택론을 옹호한다. 이타심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 내가 도움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도 있다. 해석은 구구하지만, 이런 이론들로 ‘슬프거나 불편한 이웃’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기부한파는 대개 불황과 함께 찾아오지만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5.6% 늘어난 것을 보면 지표상 소비심리는 괜찮다. 그보다는 불신이 원인인 듯하다. 희귀병을 앓는 딸에게 준 기부금으로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 ‘어금니 아빠’ 사건 등이 기부포피아를 키웠다.

 

최순실 국정 농단 여파로 기부 규정을 강화한 기업들도 올해는 소극적이다. 시작은 소박했다. 자동차에 탄 채 커피를 주문하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커피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뒷사람의 커피 값을 지불했다. 그러자 공짜 커피의 행운을 얻은 사람이 다른 손님의 커피 값을 대신 내줬다.

 

이틀에 걸쳐 ‘무료 커피 릴레이’에 378명이 동참했다. 2014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인간의 선한 마음이 나눔의 연쇄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처럼 보여줘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다.

 

곳곳에 생겨난 ‘카르마 식당’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일상 속 기부를 일깨운다. 이곳에서는 돈 없이도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다. 앞서 왔던 손님들이 낯모르는 누군가의 한 끼를 위해 미리 밥값을 내준 덕분이다. 자발적 관용의 선순환을 꿈꾸는 방식이다.

 

카르마란 불교 용어로 업을 가리킨다. 즉, 지은대로 받는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을 도울수록 나의 행복지수가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다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데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실제 날씨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온도에 관한 얘기다. 국내 개인기부자 수가 2012년 이후 4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개인 기부자는 71만 5260명에 그쳤다. 1년 전보다 8.87%나 줄어든 것이다. 2012년~2016년 기부자 감소율도 19.3%에 이른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지고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게 이유로 뽑혔다. 기부란 남을 위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연습과 습관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자녀의 생일 축하를 기부로 대신하는 ‘생일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생일을 나눔의 행복을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기부문화이다.

2018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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