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제 5 강 순정효황후의 기다림길

 

사직단, 사직공원의 처연한 자리매김 앞에 살쾡이처럼 잔혹사를 써야하는 이야기보다는, 느티나무와 화강암 빛깔에 대하여, 보다 많은 부담을 안고 교감하고 싶은, 갈등이 늘 존유하게 된다. 몇 해를 거듭하고 만나도, 늘 처음 맞이한 것처럼 조바하게 되는 사직단과 사직공원 주제의지는, 오히려 담담한 침묵의 강이 흐르고 있다.

사년여만에 찾아낸 초석의 형태가 오히려 서울경찰청 방향 인도, 도보블록사이에서 그 대답이 온전하게 귀결되었다. 사직단, 공원 첫머리에 기둥 석을 발견한 것처럼, 질문과 대답이 찾아왔다. 나는 이곳을 ‘순정효황후의 기다림’이라고 이야기 한다.

-첫머리의 기둥 석을 발견한 것처럼 질문과 대답이 교차하고 있다.

 

1. 사직단

하늘과 땅의 신에게, 예를 올리던 사직단의 사전적 용어 이전에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 너무도 멀어져간 우리의 혼을 일깨운다. 자리매김된 가치, 공원에서 방치에 이르게 된, 우리의 혼은 어디에 있을까! 동기유발이 되는 부제가 된다. 사직단 앞에서의 목표는 원의 시대와 직선, 각의 시대의 충돌을 이해시킨다. 야스쿠니신사 운영프로그램과 우리의 초상을 비교한다. 사직터널의 방향과 사직단 사릿문을 찾는 시야를 고정한다. 정독도서관 자리의 종친부와 같은 부제의 문화유구에 대한 솔 붓 마름질을 시작한다. 케케한 먼지의 무게를 체험한다.

 

2. 느티나무

고요히 자리 잡고 있는 느티나무의 내음새 라고 하는 것이 옳다. 느티나무와 우리 민족의 정서, 금강소나무와 우리 민족의 숨결, 회화나무와 우리 민족의 꿈, 느티나무를 가슴으로 안고 맞이하는 공간기호를 심는다. 고인돌의 신화가 이해시키듯 종교적 감수성과 문명디자인 DNA의 신비가 느티나무와 마을 잉태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예비 프리즘을 준비하고 사직단 솔붓 마름질을 시작한다, 장승과 사직단 -지하여장군 -천하대장군의 갈래를 이어주는 공간언어의 확장을 시작한다.

 

3. 화강암 팔각기둥

사직공원 첫머리에 팔각기둥이 보인다. 팔각기둥이 비밀과 위용, 일제강점기의 유구인 듯 하여도 연꽃문양의 초두머리를 감상하고 화강암의 질감과 기호를 기억시킨다. 신사임당과 이율곡 동상 마름질, 특별한 만남이긴 하여도 의도적인 주입교육을 벗어난 제안을 한다. 왕을 세 번 모신 입지적, 율곡 선생님의 편력을 소개한다. 사임당 어머님을 잃고 스님이 되어 다시 환속을 결심하고 써내려간 자경록, 자경문의 목표를 소개한다. 국무총리 격인 영의정을 세 번 역임하게 된 순수함의 에너지를 만나게 한다. 결국, 입지한 사람의 존엄함에 대하여, 질문을 공유한다.

 

4. 단군 로와 가로축

단군 로의 계단석은 화강암, 금강소나무로 이어지는 문화소코리, 싸릿문의 주요한 관점이다. 너무도 초라하고 사려 깊지 못한 부조물, 접근방식, 단절, 아픔에 이르는 결과물에 대한 호흡을 같이한다. 이러한 문화기호의 이미지를 이해하거나 방향성이 잡혀진다면, 사금파리의 만남처럼 숙성의 사유가 체득될 것이다. 이 계단을 오르게 되면 조금은 번잡한 근·현대사의 아픈 내용을 교감하게 되지만 단군성전이 존유한다. 종교의 성역을 활보하며 치부하기조차 민망한 단군성전 앞에서도 조심스러워해야 할 것은, 종교담론으로 퇴색시켜서는 안 되며 호흡조절이 필요한 순간이다.

스스로의 참배를 권유하여야 하며 선택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아이콘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호흡은 마로니에공원에서 출발하여, 사직단에 이르는 가로축시대의 횡적을 마무리하는 이정표가 된다. 참으로 보람된 여정을 공유하기를 소망한다. 문화소쿠리 안에 담아낸 가로축 골목 탐방이야기 아닌가!

 

5. 기다림

국궁장 풍미와 화강암 암반의 오름·내림의 스케치, 이곳에서 출발하며 몇 분간은 수사어가 필요치 않은 침묵이 유도된다. 마무리를 메트로미술관으로 정하고 황실박물관으로 유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잠잠한 사유가 있으나, 순정효황후의 기다림으로 프로그램을 정하며, 침묵의 발걸음을 요구하게 된다. 명성황후의 미소, 순정효황후의 기다림이라는 주제설정의 소요는 참으로 아련하고 애틋함 여민 마음이 요구된다. 이 깊은 침묵의 대화를 우리 아이들이 받아 쥐기를 염원한다.

침묵의 달음질은 오 분 여의 시간을 경과하면서 인왕의 멋과 한옥의 출렁임으로 깨진다. 아직도 존유하고 있는 인왕산 자락의 조선의 맥을 공유하고 감상한다. 사직단의 팔각 돌기둥처럼 종묘의 일본식 교각처럼 탑골공원의 혜정교, 복청교 유구처럼 인왕산자락의 돌기둥과 표석이 있다. 순정효황후의 오빠가 세운 부유물. 이 부유물의 나열을 통하여 6강에서 맞이할 경희궁의 테제를 사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큰 소쿠리의 망태줄기가 되어야 한다. 낱낱의 기록이나 이름, 년도, 이미지가 아닌 본질의 궤도를 찾아 나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찾아 나서야 하게끔 스스로 첫발을 떼게끔 하여야 한다.

 

6. 순정효황후생가 유구와 나무전보산대

설날이거나 추석, 중추절 쯤 되면 언제나처럼 궁의 문턱을 개방하고 널뛰는 아이들과 남산한옥마을이 개방되고 이벤트를 꾸린다. 그 잔영의 그림자를 찾아내야 한다.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공유한다. 순정효황후 유구는 적절한 소재요, 마주침, 그 자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질문과 대답이 시작되고, 우리 아이들 저민 가슴속에 끝없는 대화가 싹트기를 소망하는 순간이다. 이 전체의 내용을 순수하기 그지없는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높은음자리표가 되어, 문화정수의 동공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좁다란 골목의 정취와 숨 쉬며 우리의 아픔을 지혜롭게 받아 망태를 꾸릴 수 있다면 있을 것이다. 문화공간 DNA의 높은음자리표가 되어야 한다.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한, 나무전보산대, 우리의 선배, 조상, 어머니, 아버지의 초상이 숨 쉬고 있음을 이해시킨다.

 

7. 시골장터와 차림표

제 5강의 기다림은 기다림 그 자체가 된다. 순정효황후와 나무전보산대 골목길의 정취가 하모니를 이루며, 동에서 서로 향한, 우리 아이들이 한 획을 긋고 한 점을 찾아 돌아가는 아이들의 걸망을 들여다보고 싶은 내재율이 잉태되는 마음이다. 아주 작은 기다림이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마주칠 곳은 6·70년대 시골장터와 같은 풍미에는 못 미치지만 시장복판을 관통하고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 켠을 맞이하게 된다. 몇 백 미터 거리에 청와대가 존유하고, 경복궁이 나타나며 광화문네거리를 맞이할 것이다. 퍼즐처럼 숨어있는 대한민국의 밑그림자를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을까! 뒤 꼭지를 살피며 종묘 안내책자를 손에 쥐게 할 때의 만감어림처럼, 손에 쥐어지지 않는 침묵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훌쩍 성장한 우리 아이들의 미소가 순정효황후의 기다림, 명성황후의 미소가 찾아오는 듯, 울림이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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