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출퇴근길 오가는 지하철역 앞에 장사 잘되는 커피점이 하나 있다. 카운터에 걸려 있는 문구가 재미있다. “반말로 주문하시면 반말로 받습니다.” 젊은이가 주인이고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가게지만 손님 중에 말버릇 안 좋은 이가 꽤 있는 모양이다.

 

말이란 게 이렇다. 대등해야 할 관계에서 한쪽이 힘을 과시하듯 반말을 하면 맞받아치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권력자가 많이 있는 국회에서 반말을 들어싼 시비가 잦았다. 어떤 국회의원은 장관을 향해 “그게 상식에 맞는 얘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가야?”라며 면박을 줬다.

 

어떤 국회의원은 또 다른 장관을 추궁하다 가 “그 정도로 머리가 안 좋다는 말이지”라고 모욕했다. 한 장관은 의원의 질의에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했다가 “반상하고 앉아 있으란 말이야”란 호통을 듣기도 했다.

 

장관이 이럴진대 국회에 불러간 공무원이나 민간인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상상이 간다. 공직자들 사이에선 여의도 국회에서 광화문 정부 청사로 돌아가는 길이 서강대교를 ‘견자교’라고 부른다고 한다.

 

국회에서 수모를 당하고 차타고 다리를 건너올 땐 자기도 모르게 개OO 하고 울분을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두 달 전에는 한 의원이 공공 기관 사장에게 “무슨 답변이 그래?” 했다가 “지금 나한테 반말 합니까?”라는 반격을 받았다.

 

지방 의회 의원들도 못된 것부터 배우는 모양이다. 시·군 의원들이 “공무원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너희 과장한테나 말해” 같은 막말을 예사롭게 하고 다닌다는 말이 들린다. 급기야 김해시 공무원들이 “시의원님! 반말 그만하세요.”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시 청사 벽에 내걸었다.

 

옆 건물이 의회 청사니 의원들 코앞이다. 이만한 일에도 꽤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그동안 오죽 당했으면 이랬을까 싶다. 의원들은 달라질까. 이런 호소에도 꿈쩍 않는 국회의원·지방공무원이 있다면 얼마 전 읽은 수필 한 대목을 들려주고 싶다.

 

옛날 나이 지긋한 사람이 “이봐 백정, 쇠고기 한 근 주게” 했다. 푸줏간 주인은 먼저 양반에게 말없이 한 근을 달아 주었다. 그런데 나중 양반에게는 “어르신 여기 있습니다.” 하며 육질이 좋은 고기를 골라 공손히 건네주었다.

 

먼저 양반이 왜 다르냐며 화를 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그 쪽 것은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양반 고기는 김씨가 잘라서 그렇습니다.” 반말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국회의원 세비를 2.6% 올리기로 했다.

 

공무원 보수 인상률만큼 올리는 것이다. 의원 세비는 1억 3796만원에서 1억 4000만원이 된다. 여야가 8급비서 한 명을 늘린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의원들은 세비 인상이 6년 만이고 인상 폭이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인상률의 문제가 아니다.

 

여야는 작년 국회의원 총선 때 경쟁적으로 세비 삭감을 약속했다.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은 공약 실천이 안 되면 1년 치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한 출마자는 세비 30% 삭감, 국민의당은 세비 25% 삭감을 제시했다. 하지만 세비 반납과 삭감은 없었다.

 

앞서 2012년 대선 때도 여야가 세비 30% 삭감을 공약하고 법안까지 제출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면책특권 남용 방지, 불 체포 특권 폐지, 회의 불참 시 수당을 삭감하는 “무노동 무임금”원칙 적용,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 등 온갖 공약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실천된 건 없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자동 상정 정도가 거의 유일하다. 국회의장 산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가 세비 15% 삭감, 의원 배지 폐지 등을 권고했지만 이 역시 시행이 안 되고 있다. 의원들이 이럴 수 있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보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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