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택스 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실적을 올려야 하는 세무서직원을 빼고는 없다. 세무서 직원조차도 쇼핑객이 되면 텍스 프리를 찾는다. 돈은 속성상 돈을 숨길 수 있는 곳이나 세금이 적은 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카르브해의 케이맨 제도에는 법인세가 없다. 인구 5만여 명의 이 작은 섬나라는 법인이 실재하는지 서류상의 페이퍼컴퍼니인지는 관심이 없다. 법인 등록세와 매년 등록을 갱신하는 요금만 받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일간 뤼트도이체차이통의 탐사저널리스트와 바스티만 오베르마이어는 지난해 어느 날 신원 미상의 인물로부터 10만 건에 달하는 페이퍼컴퍼니 내부 자료를 건네받았다.

 

이것이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다. 러시아 블라디미트 푸틴 대통령,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명단이 대량 유출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중에는 한국인 190명도 포함돼 있었다. 유엔연합(EU)은 한국을 조세회피서 17개국 중 하나로 지정했다. 한국을 빼고 모두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이거나 자치령인 섬지역이다.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세인트루시아 같은 나라 수준으로 한국이 졸지에 전락한 기분이다.

 

한국이 포함된 건 외국인투자지역과 경제자유구역 등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의 세금 감면 혜택과 관련해 투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EU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타격을 받았다.

 

2009년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가 본격 거론된다. 그 리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으나 한국은 없다. 그러나 EU는 더 엄격한 조세회피처의 개념을 갖고 있다. 자유무역지대와 같은 곳도 일종의 조세회피처로 분류한다.

 

조세회피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핵심은 투명성이다. 유리지갑 회사원들에게 한국이 조세회피처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복잡한 기업 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 그레이리스트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조세 피난처란 과세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징세 행정이 불투명해 탈세나 자금세탁, 재산 도피 위험성이 큰 지역을 말한다. 세계 7대 무역 대국이자 G20 멤버인 한국이 난데없이 탈세·돈세탁 위험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무슨 날벼락인지 어이가 없다. EU의 결정은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상식적이지 않다. EU는 한국이 경제자유구역 등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이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EU는 OECD 등의 국제기준과 달리 제조업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기준이 자의적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은 물론 28개 EU 회원국 모두와 조세 조약을 맺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제 개방도가 높은 대표적 개방경제 국가다. 세계 15대 경제권 중 미국, EU, 중국과 모두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법적 자유통상 국가로 평가되는 한국이 ‘검은돈’에 편의를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세계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기업 어떤 부자가 조세 회피를 위해 한국에 ‘피난’ 왔다는 소리는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EU가 이렇게 비상식적 결정을 내리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나.

 

EU는 작년 9월부터 예비 연구를 시작했고 올 연 초엔 92개 후보국을 뽑아 자료 요구까지 했다는데 정부가 한 게 뭔가. 부뤼셀의 EU 대표부엔 기재부, 통상교섭본부를 포함해 약 30여 명의 외교관이 파견돼 있다.

 

국민이 세금 내 정부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가! 얼마나 나태하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멀쩡한 나라를 조세 피난처로 만들고 국민에게 이런 오명을 뒤집어씌우는가!

2017년 12얼 15일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