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역사문화마라톤 제3루트 용의 눈물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제 3 루트 용의눈물

 

며칠 동안 수수께끼처럼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각기관을 의심했던 길목이었다. 마당, 마당마다 깃든 소재의 맛깔이 첫걸음처럼 시작되는 곳, 도망쳐 나오듯 해방공간의 사슬이 시퍼렇게 동여메논 무게에 한 치의 긴장감도 놓을 수 없는 무대 위의 피에로가 되는 곳, 나는 이곳을 ‘용의 눈물’이라고 이야기 한다.

 

1. 흥인지문(興仁之門)

숭례문, 광화문과는 분명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용의 눈물’이다. ‘용의 눈물’은 TV드라마 각색 제목이기도 하지만 월탄 박종화 세종대왕을 원작으로 ‘조선건국사’를 그린 내용이다. ‘용의 눈물’처럼 동쪽, 남성, 용, 파아람이 서울 지세로는 약하다는 풍수에 의하여 디자인되었기에 깊은 성찰의 눈으로 흥인지문을 응시한다. 여성, 호랑이, 하이얌, 가을 그리고 인왕산의 모습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낙산을 <보(補)>하기 위하여 흥인지문의 모습은 숭례문, 광화문의 모습과 다르다. 고려건국 기초를 다진 도선 국사의 비보론(裨補論)이 켜켜이 쌓인 방책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용의 눈물’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흥인지문의 자리매김을 한다.

그러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흥인지문의 풍광에 정감이 든다. 삼태극(三太極)의 모습이 더 없이 정겨울뿐더러 옹성의 모습이 그나마 보존되어 있어, 안옥한 조선 성곽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소음이, 왁자지껄 사람소리가 요란해도, 아침맞이 흥인지문은 종소리, 북소리만큼이나 경건해진다.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서울성곽 복원메뉴얼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우리가 찾아 나설 남쪽 루트는 자동차소음, 왁자지껄 동대문상권 그 자체만큼 웅성이고 있다.

동대문상권과 섬유사업의 바탕은 여성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옛 가파치, 또는 -치의 명인, 명장들이 군락으로 모여 있던 Zone이다. 좀 더 깊게 아우르자면 여성성의 산업기반이 동대문상권 Zone을 아우르는 지경이다. 日本의 경제 Zone과 풍수적으로 비교한다면 이곳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본사가 -가파치, -치 Zone을 이루어야 한다. 용의 눈물 그 과정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다시 한 번 흥인지문의 현판을 살핀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나르는 현판서체 용의 승천을 소망한다.

 

2. 동대문운동장 기념탑, 이구수문, 해태상

갑자기 맞이하는 노점상들의 군상들, 좁다란 인도 길을 헤집고 답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호루라기라도 있어야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번잡할수록 사람의 주의력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 복원다리가 서울성곽의 이미지로 디자인 되었다. 이곳을 관통하고 있다는 일종의 기호가 된다. 아이들의 발걸음 멈추게 하고 성곽의 방향성을 이해시킨다. 이곳에서 흥인지문을 바라보면 삼태극의 모습이 초롱하게 각인된다. 일설에 의하면 통일대한민국의 국기 이미지로 자리매김 된다고 한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태 극이다. 아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삼색이 내재하고 있는 화려함, 그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꿈은 하나 더 해질 것이니까.

동대문운동장 기념탑이 되어 버린 조명탑, 섬섬히 조성한 소나무 몇 그루와 황실생일잔치 뒤풀이로 건립되었다는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조선총독부 중앙청철거 담론의 옛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픈 역사, 치욕스러움일수록 사려 깊게 살펴, 보존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기념사진속에 무수히 많은 사유가 흐르게 될 것이고 아이들의 정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의 역사 속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애환이 있었던가! 용기 있게 동대문 역사문화관으로 개칭할 만큼 적극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이구수문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을 뿐더러 유구, 하나하나를 원형 보존하였다. 용기 있는 선택일뿐더러 기념관 하나하나가 정성으로 가득할뿐더러, 유선형으로 흐르고 있는 동선처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이구수문의 원형보존은 전통문화 보존프로그램의 모범답안처럼 우뚝 서있다. 이 색감, 이 체온, 화강암 빛깔이 맛을 흠뻑 적시게 한다. 빛이 스며들어 놓을 때마다 이구수문에서 걷는 답사는 신비감마저 감돈다. 성벽의 줄기는 깊은 땅속에서 돋아났다. 아지랑이 쑥내음 만큼 봄볕의 역사를 품고 돋아났다는 표현이 옳다. 동대문구장의 멍에를 딛고 돋아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동대문 문화역사Zone을 벗어날 즈음 해치상, 해태상의 풍자스러운 조형물이 있다. 서울시가 특화하려는 상징물의 노력이 엿보인다. 가깝게 아이들의 높이 속에 잠재되기를 소망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기념사진을 유도한다. 흥인지문에서 해태 상까지 일종의 긴장이 풀린다. 조금은 벅찬 통과의례가 아니었을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사유가 온몸을 관통하고는 침잠의 문을 여는 심정이다. 초롱초롱한 우리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스스로의 사유의 밭에 대답을 요구한다. 한 발짝 한 발짝, 성실한 준비와 학습을 약속하는 눈빛의 대화만이 전부가 된다.

 

3. 가파치 마을

가파치 마을은 사라졌다. 면면히 공방소품들을 가게가 드믄 드믄 있을 뿐 찾기 힘들다. 건널목 행렬너머 아이스크림 또는 음료수를 마시던 휴게소가 있다. 아이스크림 휴게소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보니, 학습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냥 지나치자니 아이들의 체력안배가 다소 힘들지 않을까 조바하지만, 휴게소 앞에서 성곽틈새 자취를 보여주는 정도로 답사는 계속된다. 흔적을 찾고 주의력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눈빛은 광채가 살아난다. 사물을 관찰하는 현의 넓이가 성숙해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광희문 자락은 혜화문의 이정표처럼 성곽보존의 신호탄처럼 존재한다. 남쪽루트로 시작되는 광희문성곽의 출발은 남산자락에 이르도록 마을 숲에 오히려 숨어 있다고 하는 표현이 옳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흥인지문에서 이구수문 -동대문 문화역사Zone -그리고 광희문이정표, 벌써 세 번이나 단절과 계속을 반복하며 답사 루트를 소화하고 있다.

 

4. 나무전보산대, 똘레랑스, 장충단 골목길

광희문을 시작으로 성곽이 이어지다, 뚝 잘려나가듯 자취가 없다. 오리무중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혜화문의 자취로 성곽을 온전히 유지하다가 성벽 찾기 프로그램을 유지하며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작은 언덕바지를 오르면 뚝 잘려나가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심스럽게 좁다란 골목여행을 유도하며 나무전보산대 밑둥이 있는 곳에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성곽과 나무전보산대의 비유는 어렵지만 ‘똘레랑스’ 개념을 불쑥 꺼내어 ‘조선의 아침’ 달동네, ‘고려의 하늘’ 달동네 그리고, ‘용의 눈물’ 장충단자락 달동네, 흔적 위에서 찾은 나무전보산대가 의미를 함축한다.

근·현대의 자그마한 흔적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가치를 다듬어 보는 의식을 교감하다. 보잘것없지만 마음으로 꾸려내는 문화소쿠리의 성숙 ‘똘레랑스’의 사유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또다시 만나는 일본식축대모형을 만나게 된다. 그 사이에 무작위로 박혀있는 이름 모를 우리 돌 모양의 모자이크는 다름 아닌 우리의 근·현대 문화지형이자 호소가 된다. 자취 없이 붕괴되었으나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역사의 장막을 열어 제치듯 우리 아이들의 여행은 진지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장충동 언덕바지를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름길을 거닐며 섬섬히 달동네의 흔적을 뒤지며 성곽위의 집들을 발견한다. 좁다란 골목안짝위에 좀처럼 찾기 힘든 곳에 관심을 갖지 아니하면 살펴볼 수 없는 곳에 옹이처럼 박혀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탄성을 자아낸다. 오히려 흥분의 모습이 연출되지만 차분하게 기념사진을 남긴다, 골목을 나와 연립주택 뒤 주차장 아른거리는 옹벽 뒤로 모자이크작품처럼 성성한 성벽옹이를 발견한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서울성곽의 현주소이며 질문이 시작될 것이다. 반짝이는 우리 아이들의 눈빛을 살펴보며 장충단골목길 오름과 내림의 골목여행을 시작한다. 침묵과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음악이 찾아온다. 문화소쿠리를 엮는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골목의 정경은 너무도 새롭고 만족할 뿐이다.

 

5. 옥수수 알처럼 성성한 서울성곽

골목 끝자락이 보이며 8차선 찻길이 보이며 건널목 너머에 성곽은 시작된다. 이구수문의 위용처럼 힘 있는 성벽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학습효과를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은 찻길너머의 성벽을 확인하고 손짓을 하며 서울성곽 아니예요! 세 번이나 지속된 단절과 이어짐으로 성곽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기에 아이들의 눈빛은 대답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서울시발표대로 지금부터 연출되는 서울성곽의 모습은 정성이 깃들어 있다. 정작 테라스처럼 꾸며진 산책로는 올레길, 둘렛길보다 앞선 차림표다.

성곽의 돌 내음이 정겹고 오히려 갤러리컬렉션 매뉴얼만큼이나 다양한 조형기법으로 맘껏 꾸미어낸 마티에르의 변주 같다. 아이들은 성 밑 바짝 걷고 있는 상징물처럼 따라오고 있다. 조금 거친 숨소리도 들리고 재잘거림의 속삭임도 들린다, 몇몇 학부형의 모습에서 진지함의 무게를 안고 역사기행이 연장선성처럼 살펴보는 모습이다. 이 모퉁이를 돌면 5분 휴식이 기다리는 작은 단풍나무숲 휴식 터가 있다.

간식을 들며 한숨 돌이키고 쉴 시간을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 그것뿐이랴 쉼터의 성벽 마티에르는 오히려 작품이다. 옥수수 앞의 찰랑거림의 생명력만큼이나 축성의 밑돌이 정감마저 감돌만큼 아름답다. 학습의 극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 광희문에서 작은 단풍나무 휴게소까지의 턱오름의 학습을 정리한다,

 

6. 작은 단풍나무숲 테라스

왼쪽 켠으로 달동네와 A·P·T 마천루가 즐비하다. 성벽을 따라 오름 내림이 반복되며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시선방향을 유도하지 않지만 성곽을 끼고 남아있는 달동네의 모습을 유도하여야 한다. 침묵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5분여를 답사하다보면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마련한 것처럼 비밀의 문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또다시 비밀의 문으로 나갈 것이다. 아이들의 눈빛에선 술렁임의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 조금 고된 일정소화에 대한 기대치가 될 것이다.

태조이성계 -세종대왕 -숙종 시절의 성곽 축성형태 밑그림 도표가 세워져 있다. 이제야 역사라는 이름의 도표를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다. 여러분들이 조금씩 만나게 되었던 마티에르의 변주는 세 임금의 시대변천을 제시할 뿐이다. 교육효과가 배가되기를 기대하면서 비밀의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비밀의 문 너머에 맞이할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7. 비밀의 문과 장충단, 호암정과 박정희

비밀의 문을 나와 맞이할 곳은 장충단 즉, 장충단공원이다. 삼청전을 삼청공원으로,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변질시킨 것처럼 우리는 아직도 장충단공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민비시해 참사 때 순절했던 충신들 조선말 덧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황제가 직접 대문과 비문을 쓴 장충단의 정신이 얼마나 비장하였던가. 비장하였던 만큼 주요한 역사의 질문이 서려있는 것일까!

마라톤 TEXT를 준비하며 장충단 자호 앞에 나마저도, 얼마나 침통하게 스스로 분절한 마음을 토로하였던가. ‘용의 눈물’의 주제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아픔, 다만 박정희대통령시절 나름 껏 꾸려놓은 장충단공원의 매뉴얼은, 유관순 -이준 -사명대사 -유림사적비, 그 밑을 잇고 추모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 깊은 상처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의 방향성은 있다. 위험한 찻길을 횡단하면서 장충단공원 초입에 유관순열사 기념비 앞에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용의 눈물’이 조선말의 순국열사의 동상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지쳐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흥미의 시간을 넘어, 체력의 한계선상에 놓여있다. 가파른 허덕임으로 표현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용의 눈물은 이처럼 어렵고 퍼득거림으로도 우리의 숙제가 되는 것을 장충단비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며 망루의 비각이 보인다.

아, 저곳을 이곳을, 호암정, 고 이병철 삼성그룹을 일으킨 근대산업 역군의 이름표라도 새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근대사의 반격을 보여줄 상징물이 요구된다. 여러분, 우리 이곳을 ‘호암정’으로 이름 짓고, 박정희대통령시절의 절절함의 민족정신을 교감해보면 어떨까요. 조금 생뚱맞고 생소한 줄거리이지만, 서울성곽역사문화마라톤의 엄혹한 주제가 된다. 용의 눈물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만큼이나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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