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1962년 8월 17일 동독의 18살 청년 페터 페히터가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다. 페히터는 장벽 인근의 목공소 건물 속에 숨어 있다가 창문을 통해 죽음의 띠(동독이 만들어 놓은 무인지대)로 뛰어 내렸다.

 

페히터가 ‘죽음의 띠’ 구역을 가로질러 청조망이 설치된 2m 벽을 넘어설 찰나였다. 뒤늦게 알아차린 동독 경비병들이 마구 총을 쏘아댔다. 페히터는 그만 마지막 순간 엉덩이에 총을 맞고 말았다.

 

서베를린 국민들은 탈출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페히터는 동독의 ‘죽음의 띠’ 구역으로 떨어져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동독 경비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독 경찰이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페히터에게 붕대를 던졌다.

 

1시간여 동안 아무런 구호조치를 받지 못한 채 피를 흘려야 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서독 국민들은 시위대를 형성하여 동독 경비병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이 살인마들아!” 훗날 동독의 경비대장은 “페히터의 탈출 사흘 전 동독 병사가 서독연방경찰의 총격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장벽을 지키던 미군도 섣불리 대응할 수 없었다. 무력충돌의 위험 때문이었다. 결국 소년티를 벗지 못한 18살 벽돌공 청년은 국민들의 보는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죽어갔다.

 

1962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페히터의 죽음을 계기로 베를린 장벽을 ‘치욕의 벽’으로 표현했다. 공개된 북한군 병사의 탈출 영상은 55년 전 베를린 장벽에서 총격을 받아 쓰러진 페히터의 사진ㅇ르 연상시킨다.

 

죽을 각오로 뛰는 탈북병사를 향해 바로 뒤에서 수십 발의 총격을 가하고 군사분계선을 살짝 침범하고는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북한군의 모습... 그리고 그 찰나의 장면을 영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무력감...

 

어쩌면 그렇게 55년 전 베를린 장벽 사건과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피를 흘리며 쓰러진 페히터의 사진 한 장은 수십 년 동안 베를린 장벽이 초래한 충격을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귀순병이 탈출해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영화도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탈출 이후 우리 사회에선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귀순병을 살린 이국종 아주대 교수를 향해 ‘인격 테러’라며 비난했다.

 

이교수가 귀순병의 몸 안에서 엄청난 양의 기생충이 발견됐고, 먹은 것이라곤 옥수수 조금 뿐이었다고 공개한 것을 프라이버시 침해이자 의료법 위반이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정의당은 인간 지옥과 같은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북한인권법도 반대했다. 그런 당의 의원이 귀순병 몸 상태를 통해 북의 참혹한 실상이 다시 한 번 드러나자 인권을 말하며 반발했다. 민주사회엔 온갖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말문이 막힌다.

 

지금 귀순병에게 최대 인권은 북한 탈출 성공과 생명을 보존한 것이다. 이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비난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귀순병 치료과정에서 북의 실상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 전체 문제이자 통일 후엔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된다.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숨길 문제가 아니다 귀순 병사는 북한 체제를 허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제시한 ‘소프트파워’는 최근 “한국의 걸 그룹 노래를 좋아하더라.”는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전언에서 그 필요성이 확인됐다.

 

그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귀순 병사의 발언은 실효성이 있다는 데 힘을 실어준다. 더 많은 남쪽의 소식을 북한 내부로 유입시켜 체제 변화의 여망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북한 인권법과 미군의 북한 인권법도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은 구멍 뚫린 배다.

 

2017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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