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가나 인사 아트 센터에서는 2017. 11. 8(수) ▶ 2017. 11. 13(월)까지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전이 열린다.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時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그림은 어떠한 경우에도 환상이다. 설령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옮겨 놓는 극사실의 작품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현실공간과 회화적인 공간은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림에서 보고 있는 사실은 모두가 평면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공의 세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나면 별안간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차라리 철저히 인위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이승환의 작업이 그렇다. 현실풍경을 사실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현실과는 완연히 다른 회화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를 표현한다. 다시 말해 철저히 그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에 의탁함으로써 현실을 벗어난 회화적인 이상미와 손잡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현실과는 다른 유토피아를 발견할 수 있다. 분명히 우리들의 시각에 익숙한 풍경이건만 거기에는 차가운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꿈과 환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그의 그림이 지지하고 있는 회화적인 세계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으로서의 환상을 의미한다. 어차피 그림이란 아무리 현실을 근거로 한다고 할지라도 가공의 세계일 수 밖에 없다면 실제와는 분명히 다른 회화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것 보다 이상적일 수도 있다. 전적으로 현실에 매이면 작가의 상상력은 무디어지고 만다. 실제의 재현에는 작가의 회화적인 상상력이 작동할 여지가 없는 까닭이다. 그는 일찍이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독자적인 조형공간을 실현하려는 의지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주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이 제시하는 아름다움을 무턱대고 찬미하는 입장은 아니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그 자신의 감정에 여과시켜 정감이 넘치는 따스한 풍경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객관적인 현실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차갑기 마련이다. 그 차가움을 그 자신의 미적 감정에 여과시킴으로써 정서적으로 따스하게 느껴지는 정감어린 이미지를 얻고자 한다. 이처럼 정감어린 이미지는 형태의 단순화 또는 생략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적인 함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령 숲을 그릴 때 가까이 있는 몇 그루의 나무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안개에 가린 듯이 희미하게 처리한다. 안개처럼 모호하게 처리된 생략적인 부분에 심도가 형성되고 시심이 들어오게 된다. 생략된 부분은 일종의 여운으로 작용한다.  바꾸어 말해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그의 그림은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의 세계만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의 풍경을 통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실제의 풍경을 통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그는 여느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생을 나가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실제의 자연풍경을 취재하여 스케치하고 현장에서 작업한다. 여기에서 현장감을 살리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즉,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세계가 아님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분명히 실제의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하는데도 마치 꿈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실제의 자연을 보고 작업하면서도 정작 캔버스에는 아주 단출한 이미지만을 남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보이는 현실에 현혹되지 않으려 한다. 무엇을 보든지 간에 그는 주관적으로 느끼고 해석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객관적인 현실을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로 변환하는 내적인 장치를 가지ㅏ고 있다는 말이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에 동의하면서도 거기에 결코 동조하는 일은 없다. 무엇인가 다른 시각으로 자연과 마주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보이는 사실보다는 그로부터 느끼는 그 자신의 감정 및 의식세계를 담으려는데 기인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그는 문학적인 감수성을 개입시킨다. 시적인 여운을 담으려는 것이다. 단순히 보이는 사실의 재현이라면 거기에 작가로서의 세상에 대한 인식 및 사유의 세계를 담기 어렵다. 반면에 보이는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감각적인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림을 통해 사유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여기에서 그 자신의 개별적인 세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풍경화는 찬찬히 뜯어보면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에서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그림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인물이 등장한다. 대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인물의 등장은 현실적인 감각은 실제의 상황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물이 등장함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는 더욱 환상적이 된다. 어쩌면 모순 같기도 한데 이러한 시각적인 느낌은 인물이 구체적인 형태가 아닌, 점경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거대함, 장중함, 장엄함은 인물이 아주 자그맣게 대비됨으로써 더욱 증폭된다.

물론 이때 인물과 자연의 대비에서는 부분적으로 과장된다. 대자연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인물의 존재를 상대적으로 작세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물을 기준으로 할때 대자연의 이미지는 현실적인 공간감을 훨씬 뛰어넘는다. 바로 이부분에서 환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자연에 비해 인물은 하잘것 없는 존재로 비치면서 현실적인 공간감을 차단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 하잘것없는 존재인 인간이 풍경에 개입됨으로써 문득 아련한 서정적인 정취가 만들어진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인간의 모습은 확실히 각박한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자연의 일부로서 아름다운 풍경을 거드는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는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가까운 북한산을 즐겨 찾는다. 변화무쌍한 모양의 바위로 이루어진 북한산의 몇줄기 굵직한 연봉을 거느리면서 사방으로 그 줄기를 뻗어나간다. 한마디로 산의 형세가 장관이다. 북한산의 다양한 모습은 그의 미적 감수성을 부단히 자극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는 물론이요, 수시로 북한산을 찾아 그 수려함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의 산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는 보다 산의 아름다움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산 그림이 심도가 깊은 것도 산에 가까이 접근하여 실제적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따른 결과이다.

이승환 展-제25회 詩적인 함축으로 꾸며지는 아름다운 자연

최근의 작업은 더욱 간결해지고 있다. 보이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투다. 이미 현실적인 공간감을 떠나 그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조형공간에 한층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보이는 것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시적인 함축의 첫째 요건이 아닐까.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사유의 세계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자연연령에 비례하는 한층 깊이가 느겨지는 그림세계로 가는 그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신 항 섭 (미술평론가)


이승환은 2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고문, 영등포 예총 미협 일감전 여명회 고문, 신미술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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