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용골이여!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한국불교의 선 맥은 도도한 별빛과도 같아서, 찬란함이 내려앉아 팔만대장경판으로 환원하였다. 너툼이 여여하였기에, 불국사 가람의 풍경소리와 함께 화엄사 선방의 아궁이불이 도도하다. 무릇 묘향산 보현사의 아스라함을 빗대어, 일만 이천 봉우리의 산천의 불 국토임을 선언하였으니, 상악당, 중악당, 하악당의 명혈(名穴)은 익히 금수강산의 마침표와 같다.

 

나라의 기둥이 세워지고 서까래가 올려질 때에 도선 국사의 비보사찰만큼은 아스라하게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늘날 돌이켜 아로새기기를, 나옹, 무학, 지공 삼학국사의 버금은 한국불교의 비보 승찰이 여정임을 밝힌다. 한, 중, 일의 요요한 승찰의 기운은 동양문명의 암흑기를 관통하고 서서히 제 모습을 지키어 내는 것이어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비추어 살펴보지 않을 수 있으려나. 버금은 문명(文明)의 더툼이요, 문화(文化)의 너툼이요 정신문명의 고찰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무학대사의 천일기도 서원을 통하여 완성되어진 수도서울의 녹녹한 지층을 향하여 등불을 올리려한다. 한, 중, 일 정신문명의 고찰은 곧 오늘 우리의 중대한 과제중 하나이기에 지층의 울림을 통하여 우리의 제 과제를 풀어본다.

우리는 고려 말 겪어야 했던 부침의 고난을 어떻게 갈무리하였을까! 달무리 아우라 만큼이나 아련한 슬기의 빛은 살아 숨 쉬고 있었을까! 다시 말하자면 인류역사상 최대, 최고의 군대와 주권을 놓고 겨뤄야 했던 몽골침략 앞에, 우리는 어떤 각오로 임하였나! 호국불교의 전신은 이처럼 가혹한 시련 앞에서 타오르는 법. 고려 팔만대장경 경판의 성업은 몽고침략에 직면한 아우 라였다. 강화도에서 각자된 고려 팔만대장경판은 민초들에 의하여 해인사까지 연등 불사를 거행한다. 해인(海印)의 연등이요! 고려의 영혼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격동의 조짐이, 오늘 직면한 한, 중, 일의 문화충돌과 융합 과제로 보인다. 고려의 호국불교정신, 숭엄한 승려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이를테면 천일기도를 결자하려는 무학대사의 심금이다. 오늘, 이러한 질문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후삼국의 회오리 복판 속에 홀연히 도선 국사의 비보 론을 일컫다보면 왕건의 십훈조와 정도전의 건국대전의 여여한 통찰을 살펴보게 된다. 시공을 뛰어넘는 사유의 강(江)이라 할지라도 오늘 무학대사의 천일기도, 호국도량, 인왕사를 살피는 마음가짐은 이처럼 호흡이 멀고 현란할 뿐이다.

 

해방공간은 치열하였어도 우구업의 정수를 체득 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극명한 사실 즉, 일본제국주의 우리 얼 말살정책의 지층을 온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 현대화를 거치며 퇴적층처럼 사라진 일제 강점기 공간은 이제 근, 현대화에 덧대어 지층 저 밑에 도사리고 있다. 현명한 직시만이 이 올무를 분별할 수 있다. 대한민국 인왕산 인왕사의 존유는, 고려왕건의 심푼조, 태조 이성계의 경국대전의 정식적 무게를 관통하여야한다. 또한 일제 탁란 계략, 근, 현대화의 올무를 현찰함이 온당해 보인다.

 

한, 중, 일의 융합과 존재성은 인류문명 역사 자체다. 생존, 번영, 공유와 대결의 장에서 펼쳐지는 진검 승부다. 그 진검의 존재가 유, 불, 선, 도교의 함축성을 포괄한다. 격과 내재율로 읽는다면 단연코 불교문명 카르텔이 우선적이라 볼 수 있다. 우선 건축미에서 빚어진 내용, 불경에서 파생된 학문적 얼게, 의상과 색채에서 빚어진 예술적 독창세계는 극적인 우주관, 인류관, 생활관 철학기반을 응변한다. 유교국가와 불교국가의 치열한 대칭점을 수렴한 존재가 우리다.

오늘날 수도서울의 밑뿌리를 그토록 지우려고 했던 일제 강점기의 의지 또는 근, 현대화를 통하여 치부되었던 유, 불, 선, 도교의 존재는 성장 통 그 자체다. 우리를 포함한 그 모든 인류가 직시하는 이념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즉, 인왕산 인왕사 천일기도 무학대사의 신화를 공유, 음미, 만남의 얼개를 기다린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는가?’라는 영화 한편이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동편제의 굵고 힘 있는 아주까리가 아니라 아련미의 애잔함을 담은 남도의 서편제가 또한 우리마당에 잦아들었다. 또는 대장금 가락만큼은 독창적이어서 소재, 연결, 빛깔, 맛깔까지 아련함으로 작품성을 완결하였더니 온 인류가 공유한다. 유식세계의 차원에서는 하나의 현상이다. 대한민국 불교 선 맥의 등뼈를 살펴야 할 이유다. 왜, 이러한 증좌의 에너지가 소요스러운가를 직관하는 통로다.

 

홍위병의 난동은 재앙이다. 스스로가 모멸감에 침몰되었다. 21C 중국문명을 돌이켜보더라도 성장 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좀처럼 설득되어지지 않는 현상, 구태여 버금 는다면 스탈린 전체주의 문화 단면과 비교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위병 난동은 질환 적이자 자기파멸이다. 명치의 대의명분은 막부의 시대를 단절하고 이른바 천황 지배이념을 설정하였다. 전체주의 패턴이 엉성하게 읽혀진다. 홍위병의 난동이나 천황현상이나 스탈린 모습은 분명해 보인다. 질병이다. 악성종양 덩어리이기에 약물치료로는 한계가 있다. 집도를 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인왕산 인왕사 가람의 응변은 서슬 퍼런 교훈을 발견한다. 홍위병 난동, 스탈린, 천황 우상주의와 비견할 테제가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화 화두다. 좀처럼 헤아리기조차 까마득한 우리존재의 행마는 60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오른다. 조선개국의 정황이다.

브란트총리가 무릎을 조아리며 유대인학살에 용서를 구하며 민족, 문화, 문명을 대신하여 행한 퍼포먼스와 같은 승화 점은 우리 곁에 좀처럼 잦아들지 않기에 홍위병증후군은 계속된다. 600년 전 과연 우리는 무엇을 쫓고 있었나!

오늘 우리 모두를 보듬고 지탱하고 있는 지층의 낱낱이자 본원세계다. 이른바 탁란계락으로 원형질을 읽고 본다면 우리의 내성은 오히려 강건해 보인다. 이지러진 처마의 모습처럼 아스라할지언정 대한불교 선 맥의 풍경은 잔잔한 풍경소리는 아득할 뿐이다. 선 맥의 뼈대는 전혀 다른 범주에서 흐르는 물결이자 강줄기다.

 

쓰나 미가 몰려올 때쯤 진공상태가 유지된다. 고요와 수평 평원이다. 오히려 수평선은 평화롭다. 마치 태풍 눈 중앙에 유지되는 고요다. 600년의 광풍은 이와 흡사해 보인다. 나비의 날개 짓이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오듯, 부연의 지층처럼 사라지고 춤을 추는 연기 행동원인을 오히려 카오스라 일컫듯 우리 모두는 중폭의 중심에 서있다. 다만, 지탱되어온, 되어 지켜진 뼈대에 대한 관점 정립을 위하여 시작했다. 문장의 귀재였다 일컫는 육당 최남선의 3.1 독립선언문의 구절에는 오히려 짙은 연민의 마음을 담아 읽게 된다. 지성의 고해와 나약함을 엿듣는 듯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사의 부침은 오히려 고려 말 몽고침략에 맞서 삼별초군의 정의로운 깃발을 떠올린다. 이러한 지평의 넋이 우리 내재율처럼 흐르고 있다.

 

가끔, 또는 지극히 협소한 공간에서 치닫다가 개신교 복음주의 새벽마당을 읽다보면 데쟈뷰를 직면하게 된다. 파동처럼 분절된 ‘종교적 감수성’의 잉여이다. 차고도 넘치는 한문화, 백의민족의 생명력이다. 대종교, 증산교 사이로 실타래가 꾸려져 꽃무늬 결 잡아내듯 아득한 소요는 한국불교 정신성의 도도한 범람이자 성격 대다.

 

여하튼 600여 년 전 극심한 변혁기의 명분은 공자 가라사대 라고 시작된 명분이요, 염치요, 분별력의 세계다. 건국의 세력은 타도 고려불교요 대륙문화에 대한 환멸이었다. 오히려 중화문화권 편재를 주창하는 관점이다. 위화도 회군과 속국치세 론은 위험성이 사라진 나라다. 나라이름마저 중국에 읍소하고 받아낼 지경이니 이들의 사고는 꿰뚫어 볼 이유다. 굴기의 대척점에 서야했던 한국불교의 선 맥은 어찌되었던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설파하려면 원효, 의상대사의 앙상블을 늘 떠올렸다. 음, 양의 보합만큼이나 절묘한 법맥 탑은 수려하다. 신라 불교선 맥의 절정을 이루지만,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대척점을 뜬금없이 비유하다보면 불교, 유교의 성지가 구별 점을 모호하게 하는 이유가 생긴다.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층의 넓이다. 고려의 도선 국사가 태조 왕건을 맨토하며 이룩한 숙성성은 유효해 보인다. 훈요 십훈조, 6조의 미학이다. 서양국가 토대의 진화요소를 읽다보면 성문법의 분수령이 입헌 군주제도 또는 공화정의 토대로 진화해온다. 불교, 유교의 정신적 답 둘레 속에 꽃핀 문화다. 훈요 6조의 얼게는 연등회, 팔관회로 함축된다. 상징 기호는 단군이자 목멱대왕이요, 금강반야바라밀의 연등보살을 일컫고 있다. 석가모니 수기의 파노라마요, 고조선의 얼개를 삼고 심어냈던 고구려의 정신 목멱대왕의 수기다.

 

600년 전의 개국정신의 마당은 어머니 품안에서 이루어지는 잉태와 같다. 최영-이성계, 정도전-정몽주 사이에 목은 선생과 무학대사의 궤적은 도도한 조선건국의 전신적 깊이와 난맥상을 쌓아가는 첨예한 성격규명이다. 그 증좌의 증표가 600년 전 서울 설계도다. 즉, 정신문명의 극치를 응변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불교의 선 맥은 오늘의 부침을 예비하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마치 예수그리스도의 이스라엘 입성과 십자가형이다.

 

느티나무 범종소리는 은은했다. 강석주스님의 칠보사 범종이다. 600년 전의 웅지샘터를 읽으려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 삼청동 영운곡 골짜기와 맷돌바위 신화를 읽을 수 없으면 단 한 줄도 섭렵할 수 없다. 일제 한국불교 말살의 일환으로 느닷없이 삼청전자리에 일본 불교암자를 세운다. 이 기점으로부터 소급하여 600년 전의 우리를 읽고 다시 지평의 지층을 삼청천 물길처럼 ‘아, 영운곡’을 감흥하며 서울을 읽어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선학원의 치열한 조계종 원목심기는 우리의 부름켜다. 일제강점기 경허스님의 응태가 심어놓은 몸짓이자. 한국불교 선 맥의 응어리다. 그 범종소리에 아우라처럼 존유한 야석 박희선 선사의 행로는 안행 그 자체였다. 이른바 기천석 자욱의 세련된 연마의 경지를 제시했다. 석(石) 강(康) 당(當), 일(日), 월(月), 천(天) 극명하게 유교, 불교, 도교, 천제를 일갈하며 함축했다. 600년 전의 서울이다.

이미 증좌는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지경에서 수도 서울 대한민국 불교선 맥은 우화하고 있다. 오늘 강석주 스님, 인왕스님, 일당스님의 여여함을 논하며, 우리가 하야야 할 테제를 논한다. 테제의 이유는 연결에서 출발한다. 시공초월, 시대연결, 사유공간의 함축적 가치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유라카!’라고 일갈한 사유 자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명량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절절함의 상징성은 이른바 동양문명 얼개의 화두처럼 통용되는 기호다. 신(神)은 죽었다, 라는 전제는 프로이트적 자아분열과 초자아의 정립을 완성하는 준비운동과 같다. 우리는 분명하고도 명백한 유희의 잔치를 읽고 있다. 변증법의 증좌의 정반합의 유희 속에 치명하고도 이질적인 정의, 즉 유물사관의 테제는 궁극의 정의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미숙함, 순수함의 고독이다, 라고 일갈해본다.

 

가끔씩 선방의 수행자가 세속의 만행 따위를 일컬어 커피 향 마주하며 읊조리는 니체의 숲은, 결코 빛의 어둡고 질퍽한 만찬의 우주 속에 티끌처럼 빛날지언정, 소망스러운 우주의 숨결에는 미치지 아니하였다. 라고 귀품하고 싶지만 어찌 이상의 날개 짓으로 낙화하고만 ‘의지의 세계로부터 표상’의 고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치 600여 년 전의 조선 개국 파들이 안고 있었던 개혁과 지성의 지평은 유물사관적 한계를 염치와 관점으로 뭉퉁거려서 유교적 행위 관형 속에 갇히고 말았다. 전우주의 행각이 음양오행 전체에 갇혀버린 직관처럼 유물사관 전제는 진보거나, 우월한 합리적 도출이라는 명백함을 주창하게 된다.

거침없는 이 개혁의 낱낱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현상적 현실세계의 이념 토대다. ‘신(神)은 죽었다.’, ‘불교의 이념은 사라져야 한다.’ 라든가 ‘호위병 병정놀이’의 파고가 지독히 미세먼지를 몰고 온다. 우리는 극히 개인적인 문학도의 관찰자로써 살펴본 이상의「날개」,「오감도」의 난해시가 궁극의 니체증후군의 얼개와 만나고 있다는 방향성을 읽게 되었다. 마치 원효, 의상의 화엄 법맥의 궁극은 시대적 모더니즘의 열정이자 진화의 탑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대한민국 인왕산 인왕사, 용골의 솔밭은 이처럼 무수히 쌓인 내적 진통을 털고서야 시작해 봄직하다. 마치 서릿발처럼 쌓인 600년의 농해를 마주하고서야 마땅히 서원해야 할 명제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벽암 론의 객체는 택리지의 낱낱을 헤아리고도 일연의 삼국유사의 얼개를 완연히 소화하기에는 독립, 자주의 성격을 넘지 못하였다. 동학 천도교 또는 증산도에 이르고 있는 강줄기 현상은 민족얼 차원에서의 자산이자 정체성일 것이다. 숱한 번민을 관통하고서야 우리 선조의 결을 마주하는 마음자락이다. 성소피아 성당의 융합과 질곡의 파고는 비잔틴 문명의 파고로부터 르네상스의 정신까지 일관되게 연결시키고 있다. 오히려 고산자 김정호 선사의 투철한 질박함, 토정 이지함 선사의 고결함으로부터 모악산 금산사 미륵불 서원을 읽다보면 인왕산 인왕사의 응태는 극히 아련할 뿐이다.

 

한국 불교의 선 맥은 도도한 별빛과도 같아서 찬란함이 내려앉아 팔만대장경판으로 환원하였다. 너툼이 여여하였기에 불국사 가람의 풍경소리와 함께 화엄사 선방의 아궁이불이 도도하다. 무릇 묘향산 보현사의 아스라함을 빗대어 일만 이천 봉우리의 금강산천의 불국 토임을 선언하였으니 황룡사, 미륵사, 사라진 탑의 빛을 쫓는 인왕산 인왕사, 호국 불 국토 사상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성계는 어찌하여 왕사금당을 세웠는가! 인왕사 금당을 중심으로 삼각산-승가사, 진관사, 불암산-불암사, 관악산-삼막사을 세워 내원당 법회를 호국 금강바라밀경을 법주로 세워 무학대사에게 주관케 하였다. 마치 성리학의 혁명세력 즉, 정도전의 의정부-성균관을 원형으로 하는 숭례, 흥인, 숙정, 돈의, 종각의 상징기호를 인의예지용으로 설계한 것과 같다. 내밀한 것인가 도도한 법맥일 뿐인가! 이성계는 고려의 충신이자 신하다. 그러기에 훈요6조의 팔관회, 연등회의 온전한 법맥을 오롯하게 내습된 자로 살핀다. 이러하였음이 확인된다.

 

월탄 박종화, 벽촌 홍명희, 한국인의 귀속, 이규태, 이병주의 담론 속에 꽃피는 조선 얼의 미학은 시대유물로 사라졌다. 다만 임꺽정, 용의 눈물, 박경리의 토지와 임권택의 서편제 얼개들은 드문드문 호사가들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우리 얼, 얼개가 되었다. 치열함은 그런 넋두리가 아닐 것이다. 태백산맥에서 시작되어진 노동, 사상문학의 지평은 진보라는 명제 위에 시대사조의 주제어가 되어버렸으니 아랫방 선 맥의 맛은 오히려 아스라하겠지만 하여야 할 명제는 오히려 머금을 뿐이다.

 

왜, 한국불교 선 맥의 도도함의 춤사위가 요구되는가! 또는 인왕산 자락, 대한불교 인왕종 선 맥의 선엄은 이처럼 장대한 서설 잡변이 요구되는가! 말문을 열기에 숨 턱 높이만큼 이지러지고 여밀 고 마는가! 오히려 멍에처럼 잦아들고 있지만 경복궁 근정전 뜨락에서 인왕산자락 솔밭, 화강암의 소요를 너트다 보면 왠지 저것이 산이요, 산자락이라 할까! 우리 선조의 얼결 품새 앞에 용기를 다시 새기고 말 뿐이다.

 

이성계의 석가래 꿈 해몽 덕분에 왕에 등극하게 되었다는 무학대사와의 인연은 어느 덧 조선 수도 궁터에 설화로 자리 잡는다. 미천한 집안 족보의 속아 리를 하던 이성계의 일성, ‘이제 근심을 놓았으니.’ 이른바 망우리 이야기다. 조상의 미망함을 풍수지복에 의존했던 이유다. 여하튼 이성계는 삼청전에서 최종적으로 서울 천도를 읍하고 결행하였다. 목멱대왕, 삼청전, 소격소, 국사당, 인왕사의 기조는 의정부, 성균관 대칭적 관계설정을 완성한다. 이 관계설정을 조직적이고도 은밀하게 말살, 획책한 집단이 일제다. 탁란의 계략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늪이다. 망각이자 질병이다. 치료제는 없다. 우리 모두 성찰만이 답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한 법문의 중심 사상 밭이다. 깨달으신바 사바세계를 위하여 사십여 성상을 설하신 법문이다. 설법행간의 중심 철학으로 삼는다. 반야심경으로 함축되어 널리 설교된바 ‘석가모니’ ‘수니’ ‘연등보살’의 실제가 아스라하게 담겨져 있다. 전륜성왕 연등보살 석가모니의 장엄법문 얼게는 신묘하다.

 

우리는 「사람」, 「자연」, 또는 「시대」의 염원 속에서도 수기를 받고 세우는 존재에 대하여 사뭇 돌이켜본다. 인왕산 인왕사의 「수기」다. 북한산성 복원에 투신한지 40여 년 전이고 인사동 문화거리에 투신한지 30여 년 전이요, 우물복원에 투신한지 20여년의 얼개가 완성되었다. 「수기」라는 존재에 대하여 어슴푸레하게나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준비는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연등보살께 받은 「수기」의 성성함이다.

 

「수기」는 세례요한이 행한 주 그리스도의 마중을 하늘, 땅, 인간에게 알리고 표식 하는 일이다. 종교적 해석력의 깊이를 읽는 창문과도 같다. 인왕산 인왕사 「수기」에 대한 관점은 여래종정, 인왕스님의 수행 법찰을 살펴보면 만날 수 있는 샘물이다.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용골-용골 샘을 세워, 산의 온기 정령을 다스려야함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인왕스님이 법화 집을 손수 가져오셔서 수기의 현묘함을 보이시게 된다. 또한 낙산의 삼선골, 일당 스님의 낱낱 또한 해방공간 한국불교의 정황을 읽는 아득함을 갖게 된다.

 

‘아, 영운곡’, ‘용골이여’, ‘삼선골’, ‘남산골’, ‘한강골’의 여여한 부재들이 「수기」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음은 조선의 마지막 스님이라는 화두에서 일갈된다.

 

야석 박희선 님의 해방공간, 투철함으로 엮어져있다. 식민사관, 사상쟁탈전 또는 허수아비 홍위병의 틈바구니에서 사유를 지탱하기란 여간한 내재율 없이는 생각을 숨결에 올려놓을 수 없다. 이러함은 오히려 우리민족이 직면한 모든 체계에서 시작되고 갈무리된다. 야석 박희선, 강석주스님과의 각별한 만남은 해방공간 속의 민족 문화 기초 석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가! 하는 심오한 결단이다.

선학원, 호서문학의 존재는 전혀 다른 맥락을 공유한다. 그 흐름은 오늘 우리 모두의 정체성에서 발현된다. 시대의 발현이다. 오늘 지탱되어진 21세기 문화사상의 석가래로 이해하면 된다. 빙산의 일각처럼 무수히 흐르고 있는 진면목의 무게다.

 

「수기」의 연줄과 관조는 이러한 사유의 강(江)을 헤아리고 서야 맞이하는 창문이다. 여래종 종정, 인왕스님의 유언이자 말씀은 인왕사 자락의 용골에서 마무리된다. 일주문 옆 자락에 흐르는 용골의 생명 소리가 가득하여야 한다. 용골의 환원은 인왕산자락 솔밭의 기운을 되살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인왕산 수기를 받은 수도승으로서 이 곳에 비보 움터 즉, 샘터를 모이게 하여야 한다. 인왕산 인왕사 가람 터의 여의주를 웅비하는 유언이다.

 

한국불교 선 맥의 아스라한 부침의 증표이자 우리 후학들이 걸어야할 조그마한 나침판이기를 소망한다. 아, 용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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