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영운곡이여, 모습을 드러내소서! 

문총련 위원장 및 아트코리아방송 칼럼니스트
1. 한국얼 말살

일제강점기 한국얼 말살정책의 효과는 2017년 오늘에야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사, 외교, 일반영역의 징후는 명쾌하다. 주지하다시피, 일본패망과 대한민국 해방의 궤적이 의미하듯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 범주는 거뜬히 자주권을 회복했다. 물론 지고한 노력과 민족 얼의 열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오늘,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결과물은 무엇일까! 우리의 해방공간 여정은 경제개발시대, 사회개발시대 즉, 세계 10대 선진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담론과 철학이 도사리고 있다. 문화정책개발시대의 도래를 명제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전제한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도그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문화혼의 오명이다.

 

독도, 위안부 명제는 쉽고 명확해 보인다. 침략국의 오만과 만행이 단죄 받지 않고 있기에 의제는 2017년 오늘까지도 진행된다. 홀로 아리랑의 독도요, 소녀상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우리는 2017년 9월 1일 오늘,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치유와 함의를 담은 창조의 철학을 선언한다.

 

한국얼 말살정책의 대응은 대동아경영을 입안한 거대담론의 구성과 텍스트를 명제함으로서 방향성을 읽게 된다. 또한 경외적인 콤플렉스를 지속적으로 안고 있는 동화족, 왜족을 일본인으로 재탄생시키며 부합시켜야했던 의도적 역사왜곡의 성격을 규명한다. 즉, 한, 일간에 지속되어야할 경쟁협력의 성격을 읽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명치유신의 정의와 일본인 속에 재탄생시키려는 천황의 자손을 대동아공영 지배이데올로기에 융합시키는 문화줄기세포를 단백질 화학기호로 분별해본다. 아지노모도의 미각처럼 고농도 첨예한 문화 분자식의 생산과 전파경로를 추적하는 우리 스스로의 계몽이요, 자각이다.

이러한 논제와 규명과정을 읽다보면 치열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 깊이와 양에 절망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왜곡 장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의 오마주 to Korea 갈라쇼를 감상하며 야릇한 도취감에 빠진다. 이 암담한 왜곡 장에 빠질지라도 우리의 후손과 후학들이 명쾌하게 이 버거운 논쟁을 매듭지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 스스로의 치유과정이 요구되었음을 전제한다.

 

돌이켜보면 중앙청, 조선총독부 본청건물을 철거해야 하는지, 아니면 존치시켜야 하는지 사회여론에 결정을 물어본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의 광화문 자리요, 경복궁 복원프로그램이 시작점을 맞이할 때였다. 한 논쟁이 이처럼 사유방향을 전환하게 했다. 중앙청철거의 의제가 아니라 경복궁 복원관점에서 살펴보자는 시각이다. 여론은 51대49, 팽팽한 줄달음의 균형을 허무는 사유였다. 오늘날 경복궁, 광화문광장, 세종로광장, 청계천광장, 서울광장, 숭례문광장의 얼개를 통찰하는 원형질이 눈을 뜨게 된다. 사실 이 참담한 과정과 여론의 왜곡 장은 우리의 삶속에 왕성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치 독감바이러스의 생식번성의 알고리즘처럼 고요하고 섬세하여 개념화하기 조차 어려운 체계다.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교본은 조선얼 말살정책이다. 말살정책의 본질은 단절과 분열이다. 조선이전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게 한다. 또한 스스로의 존재를 계층, 지역, 신분, 연령층으로 분화, 반목시킨다. 전형적인 18C~19C 제국주의 분리전략이다. 한편으론 천손동화책도 유화적 소프트웨어로 작동시켰다. 얼리고, 뺨때리는 어린아이 달래기요, 가지고 놀기다. 혼과 얼을 동시에 윤색시켰다.

 

우리는 이러한 난맥상의 모든 범주를 40여 년간 화두처럼 침하시키며 관찰하였다. 이러한 논제의 개념은 논고, 논문의 형식으로는 정립되기 어렵다. 단지 문화적이며 단선적인 성과물에 만족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얼 말살정책의 백신프로그램의 정의를 조심스럽게 정립하려고 하였다. 물론 2017년 9월 1일 오늘, 정의하는 명제, 「문화」라는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삶이었기에 그 흔적의 퇴적층을 갈파하기엔 버겁다. 타자와 타자간의 간극처럼 차안과 피안의 세계만큼이나 스스로의 그림자는 어두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성처럼 ‘어둠은 결코 빛의 그림자 보다 어둡지 않다.’는 직언을 돌이켜 본다.

 

열등감과 치기에 가득 찬 민족이 일본 족이다. 일본이라는 국가탄생의 기초는 치기로 가득한 열등감의 희화화에서 탄탄한 배경을 알 수 있다. ‘국화의 칼’의 보고서는 유익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오해를 담고 있다. ‘국화와 칼’ 속에는 한반도 문화제국 여명의 줄기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맥아더장군 또는 미국의 인식 한계를 분별한다. 일본의 대동아경영, 명치유신, 팔굉일우의 식민지배 이념의 첫 시발점은 우리 대한민국의 침략이다. 당연히 온갖 전략, 정책, 전술, 지고한 지혜의 산물을 남겼음이 자명하다.

 

만주사변과 괴뢰만주국은 부산에서 신의주를 관통하는 철도개설과 궤를 같이 하는 프로젝트다. 병참의 이유이지만 실로 방대한 준비와 열정이 담겨져 있다. 이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명치유신 지도자들의 철학적 테제가 무엇이었을까! 오늘 2017년 9월 1일 패전국 일본의 융성과 궤를 같이하는 미션이 또렷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본문화, 일본문화제국의 얼과 혼은 원색되었을 뿐이다.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스스로의 고토회복론 즉, 임나일본부를 되찾겠다는 도식적 운명을 일본민족 얼과 혼에 살아 번식시켰다.

 

수도 서울의 모습 속에 중앙청, 시청, 한국은행, 서울역, 제1한강교 모두가 일제가 남긴 걸작이다. 유럽문명과 일본국의 혼을 담은 염력체이다. 즉, 그들의 상징 기념물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무관해 보인다. 역사는 이미 퇴적층 저 밑에서 존재하고 융합하는 5차원의 카르텔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의 백미는 백만 수도 서울 프로그램 속에 청계천 복계프로그램이 존재했다. 청계천을 복개한 백만 주거 한양 도시를 식민지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70년대 경제개발정책의 시대, 우리는 무심코 청계천 복계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일본식민지 주술 덫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여하튼 우리는 청계천복원을 결정했다. 수도 서울의 개천이 다시 우리 앞에 마주하게 된다. 그 정황의 풍경은 어눌했던 청계천 판자촌으로 곱씹으려한다. 덩그러니 콘크리트 오브제는 구석 조형물로 남겨두었다. 다슬기 모습처럼 오롯함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러면 이 전제의 명제를 돌이켜 본다.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효과는 어떻게 왕성한 바이러스를 작동시키는가! 라는 엄혹한 직시다.

 

 

탁란 계략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은 명치유신, 천손 명제와 궤를 같이한다. 치기어린 일본국의 영웅들, 쇼군과 막부의 대부, 오다 노부 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천축정벌론이다. 정한론과 고토회복론은 일본 족의 얼이자 영혼이 되는 시나리오다. 아놀드 토인비의 문명이동론을 팔굉일우의 음양오행설로 정립한 다음 대동아공영을 마땅히 하여야 할 민족 즉, 천손의 후예로 둔갑된다. 그 중심에 문명과 문화의 훼절프로그램이 작동된다. 대한민국 강토와 산하, 민족의 얼과 정신에 체득의 훈육이자 왁진 작업이다.

 

우리는 청계천 복원프로그램의 미숙함과 불완전성, 주제왜곡의 깊은 늪을 관통하고 있다. 사람과 자연 또는 계층 간의 반목 처로서 도심재개발, 재생환원의 중간지대를 거듭한다. 청계천복원이 아니라 환경재생 작업의 철학이 도구가 되어 진통을 보여준다. 중학당, 종친부, 소격소, 삼청전, 국사당, 인왕사, 성균관, 의정부, 종묘, 사직단, 이렇게 나열하면 역사지식 편람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이 얼개가 궁과 연결된 문명 인프라이자 조선국 문명의 정수다. 말하자면 삼각산, 백악, 인왕, 목멱, 낙산의 응거지가 곧 청계천과 피돌기를 하며 유교, 불교, 도교, 선교가 오케스트라 교향악 음결처럼 도시가 숨 쉰다. 대한민국 문명 퇴적층의 원형질이다. 이처럼 웅대한 비전을 듬뿍 담아놓은 프로그램이 청계천복원의 시작점이다. 참으로 아스라한 여명의 담론이 물꼬를 트는 첫발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청계천 원형질의 방향성은 산과 도시와 사람의 파노라마를 정립한다. 곧, 자연, 문명, 사람의 연결이 된다. 또한 우리 고유의 문화의 정수와 연결함으로서 수도 서울 600년의 아스라한 문명 빛을 오늘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2017 9월 1일의 단상이다. 우리는 일찍이 고려의 하늘-백악, 삼청전, 조선의 아침-인왕, 인왕사, 용의 눈물-낙산, 성균관, 안양암, 봉황의 꿈-국사당, 목멱산, 은하수의 전설-한강뚝섬법당의 개념을 정집하고 17개 명절, 24절기 환원복원프로그램을 정립했다. 아흥다흥드리 24절기와 국사당원형복원 입법청원 프로그램이다. 40여년의 지나한 문화운동 실험현장이다.

 

삼청동 삼청전의 도도한 문명궤적은 큰 울림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이념 훈요 십훈조의 얼개다. 훈요 6조의 소격소, 팔관회, 연등회의 철학이다. 목멱대왕의 초제는 조선 건국 태조 이성계의 건국이념의 초석이 된다. 백두산의 백(白)은 우리 민족정신의 불문율 같은 상징기호다. 백악산을 북악산으로, 목멱산을 남산으로 명칭을 훼절시킨 일본제국주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삼청전을 일본 왜색불교지로, 국사당을 인왕사에 옮겨놓고 한양신도 즉, 일본신사를 세운 남산 팔각정공원은 무엇일까!

 

우리는 청계천 복원의 방향성을 청계천 시원지의 원형질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삼청동은 삼청전의 존재에서 유래하였다. 하늘에 천제를 올리되 국왕이 아닌 황제의 주관으로 제를 올리는 형식이다. 고려 황제국의 초제예법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은 유교학자 조광조의 소격소철폐 상소문에 적신하고 있다. 어찌 상국 황제의 도를 하국 조선의 왕이 삼청초제를 올릴 수 있나, 속히 삼청초제를 주관하는 소격소를 철폐함이 마땅하다의 내용이다. 돌이켜보면 사대주의에 찌든 조선선비의 우물 안 개구리를 보는 듯하다. 문명궤적은 삼청전-국사당으로 고조선, 고구려와 맞닿아 있음이다.

 

여하튼, 청계천 원형복원의 시작점이자 시원지에 대한 사유는 깊고도 오묘할 뿐이다. 삼청천시원지 자락에 움터를 트고 있는 칠보사 모형은 우리 모두의 관점을 일깨우고 있다. 스님은 반드시 결혼한 대처승으로 한다. 이 지침은 한국불교의 모든 정신을 도륙하였다. 엉뚱하게도 삼청전 자리에 일본사원을 개찰하여 우리가 무엇을 도모하여야하는지를 모르게 하였음은 당연해 보인다. 국사당을 그냥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왕사 성지에 옮겨놓은 것과 같은 책략이다. 이른바 탁란의 계략이자 문명 암세포바이러스를 심어놓게 된다. 물론 2017년 9월 1일 오늘도 암세포바이러스는 더욱 왕성하여 뿌리를 깊게 내릴 뿐이다.

 

우리는 용산 재개발을 서두르며 아스라한 근, 현대의 병참역사를 읽고 있다. 서둘러 평화, 자연, 우리 자존의 밑그림을 그리며 용산의 뼈아픈 역사를 치유한다. 인식과 의식의 담론은 오히려 명제된다. 탁란의 계략은 개념조차 모호해진다. 이를테면 광화문복원 시, 일제가 남기고간 광화문 실측설계도다. 중앙청을 설계하며 광화문 존치에 대한 논쟁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에 이전 조치키로 결정했다. 과정에 남긴 실측 광화문설계도다.

복원을 책임진 신응수 목장의 석가래 지름논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일제가 남기고간 설계도의 석가래 지름은 여염집 석가래 규모다. 숭례문복원에서부터 여록을 쌓은 대목장의 안목 처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설계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 담당관은 설계도의 밑그림을 칙령처럼 믿고 있다. 결국 대목장은 두 종류의 석가래를 제작하여 걸어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2017년 9월 1일 오늘 광화문 석가래는 탁란의 계략을 이겨낸 작품이다. 비애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신응수 대목장의 얼결이 없었다면 광화문은 또 수십, 수백 년 일제 한국얼 말살정책의 주술에 걸렸을 터이다.

 

삼청동 칠보사 큰 법당의 현액이 한글로 쓰인 것은 신응수 대목장의 얼결이다. 선학원, 즉 청정비구의 한국불교 정통을 세운 조계종의 효시인 강석주 스님이 주석하신 곳이다. 불교학자 야석 박희선 선사의 마당 돌 즉, 조경석 하나하나는 금수강산의 강돌마다 스민 조선 얼의 회복을 기원한다. 칠보사 앞마당 격인 말일성도그리스도 교회(종로구 삼청동 5번지)는 용산에 치열했던 병참문화의 퇴적층이다. 문화침탈의 시작점이다. 이 마당에는 기천석, 운용대, 옥포동, 고암회, 운용천, 영운곡, 맷돌바위, 삼청동문의 성성한 문명의 실개천이 솔밭을 웅대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의 참뜻이 오롯하게 숨 쉬고 있다. 삼청동을 삼청공원으로, 목멱산을 한양공원, 명동으로, 장충단을 장충단공원으로 훼절한 것을 연결하는 관점의 정립이다. 종묘, 사직을 공원으로 훼절하는 일차원적인 것을 넘어선 과제가 2017년 9월 1일 직면한 과제다.

 

말일성도그리스도교회(종로구 삼청동 5번지)에 흐르는 물길은 영운곡, 운용천, 삼청천, 중학천, 청계천을 흐르는 대한민국 문명의 시원지이자 영혼이다. 청계천이 복개되듯, 영운곡이 칠보사가 시주를 하여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더니 운용천 성지도 콘크리트로 훼절시킨다. 삼청궁 솔밭정경을 청와대시설이 콘크리트 벽으로 훼절시킴으로서 삼청동 솔밭의 풍치는 스스로 생명을 끊어 놓게 된다. 이곳의 54개 집 각각의 숨통을 끊어놓은 형국이다. 시유지의 형태를 고립, 황폐화시킴으로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 중심의 삼청동 마을에 달동네 촌락지대가 섬처럼 부유한다.

 

말일성도그리스도교회(종로구 삼청동 5번지)를 관통하는 개천은 옥포동의 혈이다. 영운곡과 만나 아우라지를 이루는 직하폭포다. 칠보사개천, 영운곡개천, 세 줄기 직하폭포가 이곳에서 하나가 된다. 삼청천 지류의 시원지다. 맷돌바위 샘터에서 시작한 삼청천 지류는 영운곡, 옥포동, 칠보사(기천석) 이 하나가 되며 이른바 솟대, 소도의 형상을 보여준다.

백악산의 계곡은 300~400여개의 달한다. 그야말로 금수강산 절경의 함축 상징이다. 말 바위로 불리고 있는 범 바위에서 시작된 와룡 동을 감싸는 산맥은 인사동 자락에서 혈(穴)을 곧추세우고 있다. 서울 중심지석의 혈(穴)이다. 감사원 능선에서 정독도서관 자락, 즉 소격소 자리를 관통하며 병풍바위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곳에서부터 금줄을 치고 삼청전초제의 성역으로 삼았다. 소격소의 삼청전초제는 불교의 금당과 같은 사유다. 삼청동문의 얼게는 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 암벽에 새겨져 있다. 격조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얼 말살정책의 방향성은 이곳 자락에 일본군영, 장교 촌을 설계한다. 장충단자락의 일본인 취락집중지구와 같은 격이다. 삼청공원은 고위직 위락지로서 운영된다. 물론 벚꽃 길 조형은 당연해 보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삼청동의 퇴적층이다.

마땅함

 

국사편찬위원회와 정신문화연구원 그리고 농해 되어 익어가고 있는 우리의 정신 얼 곧추세우기의 치열함은 논지의 여지가 없다. 굴곡과 파랑, 격정과 열정의 도가니가 창연하게 우리시대를 관통한다. 어슴푸레하게 잦아든 문화시대의 움직임과 궤적을 같이하여 줄달음친다. 경제개발시대에 맞추어 민속촌 모형으로 존치 치부되었던 우리의 열정은 건축, 음악, 옷, 말, 음식에 이르도록 또박 또박 회복하여 창조하고 있다. 대장금, 서편제와 같은 걸출한 열매가 성큼, 온 인류 마당에 결을 선보인다. 싸이의 말춤 역시, 그 뿌리의 DNA는 기마민족의 웅대한 살풀이 결이 분명해 보인다. 심장박동과 말의 호흡소리에서 빚어지는 중독증이다. 온 인류가 우리의 호흡 맥동에 북소리를 같이하는 현상으로도 살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점은 명백하게 불완전함을 확인한다.

 

남산의 한옥마을 또는 삼청동의 삼청각의 모습과 형편은 온기가 없다. 마치 꽃의 향기처럼 그윽한 울림이 없다. 한국얼 말살정책의 결과물이 2017년 9월 1일 엄혹하게 잦아들고 있다.

 

삼청동 영운곡 프로젝트는 청계천 원형복원 차원에서 출발했다. 백악, 인왕, 낙산, 남산, 한강의 테제를 연결하는 일이다. 청계천의 영혼과 숨 쉬게 하는 차원이다. 청계천 시원지, 삼청동 영운곡이다. 2017년 9월 1일 마땅한 정의를 규정하기로 하였다.

 

1. 종로구 삼청동 5번지-마당에 흐르는 옥포동 물길은 원형 복원됨이 마땅하다. 

2. 종로구 삼청동 5번지-마당에 세워질 건축군은 우리의 정통 한옥의 숨결을 담은 건축물이어야 마땅하다. 

3. 종로구 삼청동 5번지-마당의 콘텐츠는 삼청동 54촌락의 보존 복원의 궤적과 같이 하여야 마땅하다.

4. 종로구 삼청동 5번지의 지하공간은 삼청동 공용주차장의 공간으로 쓰임이 마땅하다.

5. 영운곡, 옥포동, 기천석 물줄기가 아우라지를 이루는 삼청천시원지의 물길 복원됨이 마땅하다. 종로구 삼청동 5번지는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함께 함이 마땅하다. 

6. 종로구 삼청동 5번지-진입로의 확장은 영운곡 복원프로그램과 같이 함으로서 대한민국 문화마당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이 마땅하다.

 

궁, 루, 각, 대, 원, 정, 사는 동양문명의 건축이름표다. 지금은 하잘것없는 역사유물로 치장되어 버린 개념이다. 17명절, 24절기, 우리의 축제, 잔치문화는 화석이 되었다. 백악, 인왕, 낙산, 남산의 달동네는 한국얼 말살정책의 숙주가 되었다. 국사당, 인왕사, 삼청전, 성균관의 모습이다. 이 모든 논제의 중심에 종로구 삼청동 5번지 마당이 존재한다.

 

아 영운곡이여 모습을 드러내소서.

 

 

2017년 9월

 

 

삼청천영운곡복원운동본부 위원장 박동(朴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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