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 경인미술관 제 6전시관에서는 2017. 9. 6(수) ▶ 2017. 9. 12(화)까지 한남순 작가의 축제전이 열린다.

한남순 축제


두나미스(dunamis)에서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로의 축제

김병헌(미학박사, 미술 평론가)

한남순 작가의 주요 작업을 바라볼 때, 많은 사람들은 화면 전체에서 우리의 시선을 묶고 있는 이미지에서 작품 감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 이미지는 크고 작은 원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안에는, 마치 물감을 듬뿍 묻힌 붓을 화면에 뿌린 것처럼, 수많은 색의 파편들이 퍼지면서 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밤하늘에 터트려져 세상을 밝히는 폭죽을 연상케 하는 각각의 원들뿐만이 아니다. 그것들과 더불어 화면을 채우고 있는 나무, 들판 등 모든 형태의 이미지들 역시 원에서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한남순 축제

그의 이와 같은 작업에 있어서 최초의 모티브가 된 것은 민들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들레 홀씨라고 부르는 열매였다. 민들레 열매는 약한 바람에도 떨어져 나와 창공을 떠다니며 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다다르면 씨앗을 내리며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그리고 그 씨앗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며 다시 태어나고 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생성, 성장, 소멸로 이루어지는 민들레의 삶의 여정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의 축소판과 닮아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가. 이 질문 역시 사람들이 민들레의 삶을 바라보며 던질 수 있는 많은 생각들 중 하나일 것이다. 탄생과 소멸, 시작과 끝, 존재와 무 등등. 생명과 삶에 관한 수많은 본질적인 물음들이 유사 이래로 있어왔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서도 의미 있는 질문이 되었을 것이다.

한남순 축제

일반적으로 삶의 이러한 생생한 모습에 관심을 두는 경향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생철학적 경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경향을 쫓는, 즉 생철학자들은 ‘생동하는’ 삶이란 지적인 사유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이들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고는 이성적 논리보다는 감성적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우리의 모든 현실을 생성과 관련시켜서 말하면서, 만물의 근원을 생성, 행위, 행동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마치 민들레처럼 모험적이고 자유분방한 보다 완전한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생의 발전이라고 본다. 이 점에 있어서 필자는 한남순 작가와의 어떤 일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역시 민들레를 통해 만물의 근저에 놓여 있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남순 축제


이 문제에 좀 더 접근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가 사용했던 ‘가능태(potentiality)’와 ‘현실태(actuality)’라는 용어를 말하고자 한다. ‘가능태’는 라틴어 ‘포텐티아(potentia)’에서 온 말로 그리스어로는 ‘두나미스(dunamis)’에 해당하며 ‘현실태’는 그리스어로 활동, 작용, 행위를 뜻하는 ‘에네르게이아(energeia)’나 일종의 완성을 뜻하는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에 해당한다. 여기서 ‘가능태’를 아직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어떤 상태라고 한다면, ‘현실태’란 무엇인가가 이루어진 완성된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드리쉬(Hans Driesch, 1867-1941)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려 머리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헤쳐 나가는 힘을 ‘엔텔레케이아’라고 불렀다.

한남순 축제

민들레의 씨앗은 민들레라는 꽃을 탄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능태’로서 세상의 오묘한 이치에 따라 이리 저리 떠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다다른다. 온갖 자연현상의 덕택으로 씨앗은 발아하여 잎과 줄기를 형성하고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꽃과 열매를 맺는 현실태, 즉 엔텔레케이아가 된다. 그리고 이 민들레는 더 이상 민들레로서만 머무르지 않고서 작가의 심상에 자리 잡은 채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게로 확장되어 퍼져나갔을 것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생명의 탄생은 작가의 마음속에서 기쁨의 감정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며 작가로 하여금 예술적 창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한남순 축제

랭거(Susan K. Langer, 1895-1985)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은 감각이나 상상력을 통해서 창조된 하나의 표현 형식이며 이것이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일 것이다. 한남순 작가가 민들레를 통해서 본 모든 생명의 신비는 축제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고귀하고 오묘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여기서 작가가 느끼는 ‘감정의 삶(life of feeling)’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살아 있는 형식(living form)’으로 표현되며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 한남순은 다수의 개인전과 10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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