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아트코리아방송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운동본부 총재
[서울= 아트코리아방송] = 당번병을 영어로 배트맨(batman)이라고 한다. 전쟁 중 장교의 짐이든 안장(bat)을 말에 씌워 끌고 다니던 사람에서 비롯됐다. 영국군에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모든 장교에게 병사-하인(Soldier-servant)이 딸려 있었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샘이 주인님(Master)이라고 부르는 프로도와의 관계가 작가 존로널드 톨킨이 참전 중 경험한 장교-주인과 병사-하인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이 말이 전간기에 들어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면서 배트맨으로 바뀌었다. 당번병은 장교의 명령을 부하에게 전달하고, 장교의 군복과 장비를 상서 사용한 상태로 관리하고, 장교가 지휘를 하느라 시간이 없어 못 하는 잡무를 처리한다.

 

영국에서 당번병은 더 힘든 임무에서 면제되고 지휘관이 베푸는 특전을 받기 쉽고 지금도 빨리 선호되는 보직이다. 우리나라 군대에 당번병은 공식 편제에 없지만 보통 대대급 부대에서부터 무전병과 1호차 운전병이 세트로 부대장의 당번병 임무를 맡는다.

 

공관 병은 당번병과 달리 장성급 지휘자의 승인 하에 공식적으로 둘 수 있다. 공관 병은 연대급 이상 부대 지휘관의 관사에서 생활하면서 가사를 돌보는 임무를 맡는다.

 

본래 임무와는 달리 자녀들의 학습도우미로 활용돼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그럼에도 힘든 훈련이나 사역에서 제외돼 꽃보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선진국 군대에서는 지휘관이 필요하면 신원조회를 거친 민간인을 고용해 쓴다.

 

우리나라 사병 봉급이 모병제 수준으로 높았다면 공관 병은 진즉 민간 가사도우미로 대체 됐을 것이다. 박 천주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공관 병에 대한 갑질 의혹에 군 경찰에 조사를 받고 있다.

‘군 지휘간의 갑질 횡포’

박 사령관 부부는 공관 병이 호출에 즉각 응하도록 공관 내 두 곳에 있는 호출 벨과 연동된 전자 팔찌를 채우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인 군 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공관에서 근무한 공관 병·조리 병이 2016년 3월부터 올 초까지 정해진 임무가 아닌 다림질과 화장실 청소 등 허드렛일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

 

사령관 부인은 소파와 바닥에 떨어진 발톱과 각질을 치우게 했고, 심지어 군에서 휴가 나온 사령관 아들의 속옷도 빨게 했다고 한다. 병사의 인격을 존중하기는커녕 공사 구분 못하는 군 고위층과 가족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박 사령관은 국방부가 병사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감사에 나서자 전역서를 제출했지만 그것으로 끝 낼 일이 아니다. 육군 내부 규정에 따르면 군 지휘관은 공관에 장병을 배치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휘관들의 식사 준비나 근무시간 이후 업무 편의를 위한 예외적 조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해진 업무 외 다른 일은 시키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박 사령관은 공관 병에 대한 규정이나 장병 표준 일과 규정을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 지휘관과 장병은 전투력 유지라는 국가의 명령을 나눠서 수행할 뿐 인격적으로 동등하다. 아무리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하는 군 조직이라고 해도 이런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국가와 군 전체를 위해 명예롭게 헌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사령관 개인과 가족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장병과 그 부대의 사기가 높을 리 없다. 어느 부모도 제 자식을 남의 집 머슴 노릇하라고 군대에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휘관이 단 한 명의 공관 병이라도 노예처럼 부리는 일이 있는 한 군 생활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사령관 부부의 공관 병 갑질 사건과 관련해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군대 갑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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