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야생화전문위원 및 칼럼니스트
(서울 아트코리아방송) = KBS TV는 지난 15일 ‘천상의 컬렉션’을 통해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되었다.


1962년 문화재청이 국보 제86호로 지정한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1348년 고려 충목왕 4년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에 세워져 있었던 석탑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석탑들은 대부분 석질이 화강암이나 이 탑은 유일하게 대리석으로 축조되었다. 탑은 일본의 조선강제 점령시기인 1907년 조선의 대사로 와있던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즈아키(田中光顯)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반출 되었다가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비판에 밀려 1918년 조선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석탑은 당시 복원기술부족으로 조립되지 못하고 경복궁에 보관하기에 이른다.1960년 국립중앙박물관이 훼손된 곳을 보수하여 경복궁에 세워졌으나 용산에 서게 될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자문이었던 이탈리아 로마대 벨란카 교수의 “풍화작용으로 석재표면의 균열현상이 심해 실내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1995년 해체하여 10년 간 보존처리를 마친 후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이전에 맞춰 실내에 세워지게 된다.

 

문화재연구소 김동열 학예연구사가 보내온 자료를 통해 ‘개성경천사지 10층 석탑’은 10층 석탑이 아니라 13층 석탑이었던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新增東國輿地勝覽 : 부소산에 경천사 소재하고, 13층 석탑이 있다는 기록 제 13권, 豊德 佛宇條 敬天寺 在扶蘇山寺 有石塔十三層刻十二佛會相 人物聳動形容森 其制作精巧 天下無雙諺傳元 脫脫丞相 以爲창敎晉寧君姜融 募元朝工匠造 此塔至今有脫脫姜融畵像又寺之東岡産怪石俗謂之沈香石...’,

폐 사찰 된 시기의 질의에서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된 조선 초기 존재 기록과 1907년 4월 23일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大阪 朝日新聞) 기사로 미루어 폐사 시기는 조선중기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경천사 터에 복원하지 않고 경복궁에 세워진 이유에 대하여는 “관련 기록이 없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만, 궁내에 있었던 이왕직박물관의 야외전시물로 활용하려 원래 위치에 복원하지 않고 경복궁에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풍화작용으로 실내보존이 불가피 하였다면 그 탑보다 훨씬 이전에 세워진 삼국시대의 석가탑이나 다보탑 그리고 익산의 ‘미륵사지 5층 석탑’ 등 우리나라 석탑들 모두 실내로 들어가야 맞는 논리다. 한 학자의 견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이제 개성의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경천사는 남아있지 않지만 원래 있었던 자리에 복원하는 것이 남북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길이 아닐까. 또 비록 감성이 없는 석물이라 하더라도 조상들의 얼이 배어있는 ‘개성 경천사13층 석탑’으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야생화 사진가 정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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